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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마지막은 없다니까요

2021년 12월 1일의 일기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24]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오늘로 12월로 접어들었다. 올해의 마지막 달인 것이다. 바로 하루 전에 우리는 11월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제 마지막 달로 접어들었으니 바야흐로 모든 것이 마지막이다. 올해의 마지막 주말, 마지막 휴일, 마지막 금요일, 마지막 밤 등등

 

이런 달력의 흐름에 맞춰 자연도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다. 그나마 남아있던 나뭇잎들이 저마다 갈 곳이 있다는 듯 땅에 떨어져 어디론가 날아가고, 가기 싫은 나뭇잎들은 청소부의 빗자루에 쓸려가고, 이제 길거리에는 이우성도 없는 공허만이 남아있다. 정말로 이 해의 마지막이 다 이달에 몰려 있다.

 

이때 우리가 즐겨 부르거나 듣는 노래가 두 개가 있으니 그 하나가 배호의 노래 ‘마지막 잎새’다.

 

그 시절 푸르던 잎 어느덧 낙엽 지고

달빛만 싸늘히 허전한 가지

바람도 살며시 비켜가건만

그 얼마나 참았던 사무친 상처길래

흐느끼며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 줄 이 노래의 노랫말은 포항출신의 정문(본명은 정귀문) 씨가 만들었다는 사연도 이제는 새삼스럽지는 않다. 학창시절 교장선생님의 딸을 좋아했는데, 교정에서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낙엽을 보며 이런 시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모든 것의 마지막이라 할 12월에 1절에 이어 2절도 간절하고 애절하다.​

 

싸늘히 부는 바람 가슴을 파고들어

오가는 발길도 끊어진 거리

애타게 부르며 서로 찾을걸

어~이해 보내고 참았던 눈물인데

흐느끼며 길 떠나는 마지막 잎새

 

다른 노래 하나는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인데 우리가 다 알다시피

 

찬 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 뺨이 몹시도 그리웁구나...​

 

로 이어진다. 차중락이 먼저 부르고 그 뒤를 차도균이 불러 인기를 얻은 곡이다. 이 노래는 미국의 엘비스 프레슬리가 1962년에 처음 부른 노래, “Anything that's part of you"를 번안한 것인데, 원 가사는​

 

당신이 보낸 편지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우리가 함께 갔던 곳도 모두 가보고

온종일 찾아 헤맨 것 같네요

당신의 것 어떤 것이라도 찾으려고요

이런 식으로 연인의 흔적, 남긴 것, 냄새 등등 모든 것을 찾아보고 다닌다는, 곧 사랑을 잃고 허전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고 가사에는 가을 또는 낙엽이란 말 한 자도 안 나오지만, 그것을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라고 번안한 것이 아주 멋져서 뭔가 자꾸 떠나가고 사라져서 허전하고 애달프기만 한 이 계절의 마음을 딱 대변한 것이기에, 우리들의 애창곡으로 오래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낙엽이니, 떨어지니, 가버리니 등등의 가사들은 사실 애절한 마음을 대변한 것이기는 하지만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노래를 부른 가수들이 정말로 먼저 가버린 경우가 많은 것은 참으로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슬픈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대부분 일찍 타계하더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최초의 가수 윤심덕은 ‘사의 찬미’를 불렀다가 그만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60년대 말, 산장의 여인을 부른 가수 권혜경은 가사처럼 자궁과 위장이 암에 걸렸고 요양을 하며 산장에서 수도승처럼 쓸쓸히 재생의 걸어야 했다. 이난영은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슬픈 인생을 살다가 가슴앓이 병으로 49살에 세상을 떴다. 가수 양미란은 '흑점'이란 노래를 남기고 골수암으로 숨졌다. 가수 박경애는 '곡예사의 첫사랑'이란 노래 가사에 "울어봐도 소용없고 후회해도 소용없다"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는데, 나이 50에 폐암으로 세상을 떴다.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를 부른 박경희도 그 노래처럼 53살에 패혈증과 신장질환으로 별세했다. 천재 작곡가라고 알려진 장덕은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를 부르고 요절했다. 남인수는 41살의 한창나이에 '눈감아 드리오니'란 자신의 노랫말처럼 일찍 눈을 감고 말았다. 0시의 이별을 부른 가수 배호는 0시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마지막 잎새를 부르면서 마지막 잎새가 되었다. 심지어는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의 차중락도 29살의 청춘에 낙엽처럼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그 외에도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 , '이름 모를 소녀'를 열창하던 젊은 가수 김정호는 20대 중반에 암으로 요절, 노래 가사처럼 진짜로 가 버렸고 '이별의 종착역', '떠나가 버렸네', '내 사랑 내 곁에'를 불렸던 가수 김현식도 젊은 나이에 우리 곁을 영영 떠나 버렸다 하수영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고 세상을 떠났다. 가수 김광석은 '서른 즈음에'를 부르고 나서 바로 그즈음에 세상을 떠났다.

 

이와는 반대로 만나고 일어서고 달려가는 내용의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그들의 인생에 재연 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어느 가요연구가가 열심히 통계를 낸 것이 있다. 이것은 과연 우연일까? 누구는 말한다. 가수가 노래 한 곡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는, 같은 노래를 보통 몇백, 몇천 번을 부른다고 하는데, 이렇게 몰입하다 보면, 동화현상이 생기면서, 그의 운명도 이와 비슷하게 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쓸쓸한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을 다듬어보자. 계절이 바뀐다고 하지만 사실은 시간은 매일 그대로이다. 일 초, 일 초, 일 분, 일 분 이렇게 계속 무심히 가고 있을 뿐이다. 해도 지구를 돌면서 늘 그대로 수천, 수만, 수십만 년 동안 자기의 길을 간다. 지구가 기울어져 있으니 그 때문에 날이 길었다가 짧아졌다가 할 뿐이고 그 영향으로 기온이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할 뿐이다. 그러므로 시간이란 것에는 마지막이 없다. 자연에도 마지막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멋대로 시간을 자르고 이름을 붙이면서 맨날 마지막이라고 요란을 떨고 무언가 큰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야단법석을 떠는 것은 아닌가?

 

물론 이렇게 말하면 너무나 뻔뻔한 일이다. 해가 나오지 않고 구름이 끼면 우울해지고 해가 나면 명랑해지는 게 사람이자 동물들, 곧 피조물의 숙명이다. 여름이 가고 가을 지나서 겨울이 오면 그 우울은 극도로 높아지고 자칫 잘못하면 큰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자연이 마지막이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나고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데 다시 냉철하게 보면 자연은, 우주는 늘 그대로 운행하고 있을 뿐이고 그 속에서 우리 생명들, 인간들이 살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그런 자연은 태어나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니고 늘 그대로 운행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순간순간 때때로 철마다 마음 졸이고 걱정하고 우울해지지 말고 이 늘 그대로의 자연, 묵묵히 순환만 하는 자연이란 존재를 본다는 것, 우리라는 존재도 어디로 가버린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연 속에서 묵묵히 순환의 길을 간다고 인식하게 되면 좀 더 차분하고 의젓해지지 않겠는가? 초조하고 막막하고 불안하지 않고 항심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가슴이 철렁해지는 계절이긴 하지만 자연에는 마지막이란 것이 없다, 모든 것은 돌고 돌아 다시 온다는 생각, 낙엽이 가면 흙이 되어 다른 생명으로 다시 돌아가 태어난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 우리네 이 눈앞의 힘든 삶이 좀 더 느긋해지고 거시적으로 긴 숨을 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오늘 올해의 마지막 달을 맞았지만 이제 마지막은 없다는 위대하면서도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시간이라도 가져보자. 우리 삶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니깐. 그리고 기왕이면 떠나는 이야기보다는 만나는 이야기, 슬픈 마음보다는 밝은 마음, 끝이라고 하기보다는 시작을 이야기하는 12월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