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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작은 돌탑을 쌓는 마음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28]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매일 아침 산책을 하는 북한산 둘레길 8구간은 구름정원길이란 별칭이 있을 정도로 산자락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구름 속을 걸어가는 착각을 하게 하는 멋진 구간인데 이 가운데 뉴타운 폭포동 아파트 쪽에는 물길이 모이는 작은 계곡이 있다.

 

 

향로봉 서쪽 암반에 난 길을 타고 폭포를 이루며 쏟아져 내려와 평지를 흐르는데 큰비가 오면 물은 콸콸콸 멋지게 흐르지만 동시에 모래도 깎여 내려가며 계곡을 메우는 것이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지난봄에 구청에서 대대적인 사방공사를 하는 바람에 전에 보던 자연적인 계곡은 판석이 깔린 물길로 바뀌었다.

 

 

 

당연히 예전 자연스러운 골짜기를 즐기던 우리들에게 아쉬움이 없을 수 없었다. 그 전에 사람들은 물길 옆에 하나둘씩 작은 돌탑들을 많이 쌓아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어 즐기곤 했는데 공사 이후에는 다 없어지고 만 것이다.

 

 

그러다가 두 달쯤 전에 작은 돌탑 하나가 생겼다. 돌탑이라고 해야 작은 돌들을 위로 쌓아 무릎에 찰까 말까 하는 정도인데, 무미건조한 판석의 물길로 바뀐 것을 약간이나마 보완해주는 효과가 있어 어느새 사람들은 쳐다보면서 좋아하곤 했다. 예전의 돌탑만큼은 아니지만 아슬아슬하게 쌓은 돌탑은 험한 세상의 비바람을 이기는 우리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이 아늑한 골짜기에 평안이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소망도 담긴 듯했다.

 

문제는 이 돌탑이 며칠 뒤에 무너져 있더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밤에 와서 돌탑을 허문 것이다. 위로 쌓아 올라갔던 돌들이 바닥에 다 떨어져 흩어져 있었다. 그러자 원래 돌탑을 쌓은 사람이 다시 쌓으면서 무너트리지 말아 달라고 종이쪽지에 써 붙였다. 그렇지만 곧 이틀쯤 지나서 가보면 다시 무너져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그러다 보니 돌탑을 다시 쌓은 사람이 종이에 써서 돌 사이에 놓아두는 호소문도 짜증이 섞인 글로 변하였다. 말하자면 감정싸움의 양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무너졌다가 12월 중순쯤에는 돌탑이 하나 더 늘어 두 개가 되었다. 크기는 차이가 있고 한쪽이 좀 작아서 형제처럼 보이지만 탑이 두 개가 있어서 덜 외롭다고 생각되었고 그것이 며칠 무너지지 않고 있기에 조금 변화가 있을까 기대해 보기도 했다.
 

얼마 전 큰 눈이 올 때도 탑이 그대로 서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역시 이틀 후에 역시 다시 무너졌다.

 

이런 신경전을 보는 우리 같은 산책객의 마음은 좀 착잡하다. 원래 전부터 돌탑이 있을 때는 그런 일이 없다가 이번에 공사 뒤에 생긴 것을 쓰러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는 잘 있다가 왜 이번에는 굳이 세우지 못 하게 할까? 이러한 작은 계곡에 돌탑을 쌓는 일은 여기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도처에 있는 일인데 혹 이것을 불교의 탑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싫어서 무너트리는 것인가? 하는 추측도 해보게 된다.

 

우리나라의 물이 흐르는 골짜기나 냇물 곁에는 자연스레 돌을 위로 쌓아놓는 사례가 많다. 그것이 백담사라던가 마이산 같은 곳이 절 근처에 있는 경우에는 불교적 신앙심과 관련성이 아주 없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우이동의 우이령길 입구에는 그런 돌탑이 수십 개가 쌓여 있어 산책하는 시민들이 일부러 보러 가서 사진에도 담곤 한다. 말하자면 일종의 기념물 역할을 하는 것이고 거기에는 불교와 아무 상관이 없다. 거기는 그렇게 몇 년째 마을의 명물로서 주민과 산책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여기 폭포동 근처 이 골짜기 옆의 작은 돌탑도 우이동 계곡처럼 특별히 종교적인 것을 연상할 아무것도 없이 그냥 다소곳이 서 있는데, 어느 분이 왜 그것을 싫어하셔서 매번 쌓은 것을 무너트리려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성황당이란 것이 마을 입구에 있어, 거기에는 주위의 돌들을 모아서 약간 높게 쌓아놓는 것이 전통적인 민속이라고 하고 이것은 종교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이러한 풍습은 몽고에 가도 ‘오보’라는 이름으로 있다. 그것은 길을 알리는 표지판의 역할도 하면서 길을 가는 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작은 소망탑의 역할도 해왔다. 그러한 작은 소망이 담긴 돌무더기, 돌탑 이런 것은 동아시아 사람들의 소박한 삶의 지혜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이것을 굳이 용납하기 어려워하시는 그분의 속마음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만일에 그 돌탑에 卍과 같은 절 표시를 넣었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눈에 거슬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겠지만 그냥 돌만을 쌓아 올린 것이니 굳이 거기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할 이유는 없다고 하겠다. 만약에 거기에다가 십자가를 같이 세워놓았다고 하면 거기에 대해서도 신경 쓰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돌탑은 그런저런 아무것도 없기에 종교와 상관이 없는 우리들의 소박한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이다.

 

북한산의 이 돌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그보다 한 달 전쯤 엎어져 있던 문인석을 누가 바로 세워, 그것이 이 길가의 마스코트로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환한 얼굴이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이다. 이 돌탑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며칠 있으면 이 해가 다 간다. 곧 새해가 된다. 지난해에 쌓였던 불편해하는 마음을 뒤로 하고 새해에는 이런 돌탑 정도는, 굳이 해로운 것도 아니니, 용납하고 인정하고 그대로 두면 얼마나 훈훈할까 하는, 작은 소망의 촛불을 다시 켜 본다. 돌탑을 쌓는 사람의 마음이 굳이 누구에게 뭘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조금 불편한 마음을 걷어버리고, 이 길목에 서서 산책객이나 등산객들을 맞는 이 작은 돌탑이나 문인석과 함께 새해에 다 함께 평안과 행운을 기원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