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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 은행 씨앗 선물로 주고받는 토종 연인의 날

배달겨레 세시풍속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의 셋째 '경칩(驚蟄)'이다. 경칩은 놀란다는 ‘경(驚)’과 겨울잠 자는 벌레라는 뜻의 ‘칩(蟄)’이 어울린 말로 겨울잠 자는 벌레나 동물이 깨어나 꿈틀거린다는 뜻이다. 원래 ‘계칩(啓蟄)’으로 불렀으나 기원전 2세기 중국 전한의 6대 황제였던 경제(景帝)의 이름이 유계(劉啓)여서, 황제 이름에 쓰인 글자를 피해서 계'자를 '경(驚)'자로 바꾸어 '경칩'이 되었다. 중국의 전통의학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 기원전 475~221)》에 계절의 변화와 인간의 삶에 대해 언급된 이래, 당나라의 역사서인 《구당서(舊唐書)》(945),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1281) 등 여러 문헌에 경칩 기간을 5일 단위로 3후로 나누고 있다.

 

 

이들 기록에 따르면 초후(初候)에는 “복숭아꽃이 피기 시작하고, 중후(中候)에는 꾀꼬리가 짝을 찾아 울며, 말후(末候)에는 매가 보이지 않고 비둘기가 활발하게 날아다니기 시작한다.”라고 한다. 경칩 기간에 대한 이런 묘사가 조선 초 이순지(李純之) 등이 펴낸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 1444)》 등 한국의 여러 문헌에도 인용되고 있는데, 중국 문헌의 절기는 주(周)나라 때 화북(華北, 지금의 화베이 지방 곧 베이징과 텐진이 있는 지역) 지방의 기후가 바탕이 된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기후와는 다를 수 있다.

 

만물이 움트는 이 날은 예부터 젊은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은행씨앗을 선물로 주고받고 날이 어두워지면 동구 밖에 있는 수나무 암나무를 도는 사랑놀이로 정을 다졌다. 그래서 경칩은 토종 연인의 날이라고 얘기한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임금이 농사의 본을 보이는 ‘적전(籍田)’을 경칩이 지난 뒤의 ‘돼지날 (해일, 亥日)’에 선농제(先農祭)와 함께하도록 했으며, 경칩 이후에는 갓 나온 벌레 또는 갓 자라는 풀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불을 놓지 말라는 금령(禁令)을 내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이기도 했다. 중국 고대 유가의 경전 《예기(禮記)》 「월령(月令)」에도 “이월에는 식물의 싹을 보호하고 어린 동물을 기르며 고아들을 보살펴 기른다.”라고 되어 있다.

 

민간에서는 경칩에 개구리알이나 도룡뇽알을 먹으면 몸에 좋다고 하였으나 어린 생명을 그르치는 지나친 몸보신은 금해야만 한다. 또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에서 나오는 즙을 마시면 위장병이나 속병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먹기도 했다. 전남 순천의 송광사나 선암사 일대에서 채취한 고로쇠 수액은 유명하다. 보통의 나무들은 절기상 춘분(春分)이 되어야만 물이 오르지만, 남부지방 나무는 조금 일찍 경칩 때 물이 오르므로, 첫 수액을 통해 한 해의 새 기운을 받고자 하는 생각이다.

 

 

그런가 하면 이날 흙일을 하면 탈이 없고 빈대가 없어진다고 해서 담벽을 바르거나 담장을 쌓았다. 또 경칩 때는 보리 싹의 자람을 보아 그해 농사를 점치기도 한다. 《성종실록》에 우수에는 삼밭을 갈고 경칩에는 농기구를 정비하며 춘분에는 올벼를 심는다고 했는데 우수와 경칩은 본격적인 농사를 준비하는 중요한 때다.

 

경칩 무렵 양지에서는 쑥이 자란다. 그래서 이때쯤이면 들판에는 아낙들이 쑥을 캐고 있다. 그러다 보면 이때는 쑥밥, 쑥국, 쑥지짐, 쑥인절미, 쑥버무리, 쑥개떡 천지가 된다. 궁궐에서는 수라상에 쇠고기에 데친 쑥을 다져 넣고 완자를 빚어 장국에 끓인 '애탕국'이 올라가기도 했다. 그래서 이 무렵 아이들은 봄 쑥 먹고 쑥쑥 자란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쑥의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쓰다고 했다. 오래된 온갖 병과 부인병에 효과가 있으며, 태아를 안정시키고 복통과 설사를 멎게 하고 호흡기 질병을 물리친다고 했다. 특히 민간에서는 '어머니풀'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모든 부인병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열이 많은 사람이 먹거나 술과 함께 먹는 것은 좋지 않다. 쑥은 단백질과 칼슘, 철분, 비타민 C, A가 풍부하다. 최근에는 쑥의 항산화효과, 카드륨 독성 억제 효과, 항암효과, 항균작용, 간 손상 억제 효과 등이 연구 발표되고 있다.

 

참고로 작가 현덕이 1938년 조선일보에 기고한 소설 <경칩>이 있다. 이 소설은 봄을 맞는 아이들과 어른의 모습을 견줘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 이 소설은 그 시대 풍속사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는데 첫째 소작인의 가난한 삶, 둘째 일제강점기 농민의 소작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그리고 있다. 소작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지주에게 항상 잘 보여야 하는 소작농의 형편을 말해주고 있다.

 

오늘은 경칩, 농부가 농사준비를 하듯 우리는 모두 다가오는 봄맞이 채비를 해야 할 일이다. 다음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이월령으로 이즈음의 정경을 잘 그려주고 있다.

 

이월은 중춘이라 경칩 춘분 절기로다

초육일 좀생이는 풍흉을 안다하며

스무날 음청으로 대강은 짐작나니

반갑다 봄바람에 의구히 문을 여니

말랐던 풀뿌리는 속잎이 맹동한다

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르도다

멧비둘기 소리나니 버들 빛 새로와라

보쟁기 차려 놓고 춘경을 하오리라

 

(가운데 줄임)

 

고들빼기 씀바귀요 조롱장이 물쑥이라

달래김치 냉잇국은 비위를 깨치나니

본초를 상고하여 약재를 캐오리라

창백출 당귀 천궁 시호 방풍 산약 택사

낱낱이 기록하여 때 맞게 캐어 두소

촌가에 기구 없어 값진 약 쓰올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