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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거리와 꾸미개

중국 연길시 민원실 공무원, 한복 입고 근무

“연변예미민족복장유한회사” 류송옥 사장 대담기 지난 7월 초 나는 “07다중언어 정보처리 국제학술대회” 취재차 중국 연길에 간 적이 있었다. 이 때 학술회의장과 숙소를 겸한 국제호텔에 들어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호텔 계산대(프런트) 직원과 짐을 들어주는 종업원들이 모두 한복을 입고 있지 않은가? 여기가 중국이 맞은 지 헷갈리는 순간이었다. ▲ 연길시 민원실(행정대청) 공무원들이 한복을 입고 근무하고 있다. ⓒ 김영조 ▲ 연길 국제호텔의 종업원들이 한복을 입고 근무하고 있다. ⓒ 김영조 하지만, 그곳은 분명 중국이었다. 한복을 입는 것은 호텔 종업원만이 아니라 시청 민원실(행정대청: 行政大廳)의 공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한복을 입을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이 연변조선족자치주였고, 연길 시장의 의지 때문이었다. 연길 조철학 시장은 도로표지판은 물론 모든 간판에 한글을 먼저 쓰고 한자를 그 아래 쓰도록 했으며, 한복을 입는 대상을 늘려나가고 조선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최근엔 일부 조선족이 자녀들을 한족학교에 보내자 조선족은 조선족학교에만 보내도록 하기도 했다. 나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신식산업국(信息産業局, 주정부의 정보통신을 담당하는 부서) 김창률 처장의 도움으로 연변 한복의 진원지인 “연변예미민족복장유한회사”를 찾아 공장을 둘러보고, 류송옥(52) 사장을 만나볼 수 있었다. ▲ “연변예미민족복장유한회사”가 들어있는 연길한국중소기업공업원 정문 ⓒ 김영조 공장과 같이 있는 회사는 아파트형 공장처럼 보이는 일종의 공업단지인 연길한국중소기업공업원 안에 있었다. 예미가 입주해 있는 건물의 출입문 앞에 서니 “개발구공업단지‘라는 이름과 함께 ”어서오세요’라는 한글이 쓰여 있어 친근감을 주었다. 공장을 돌아다니며 늘 작업지도를 하고 있는 류송옥 사장은 한참을 기다린 뒤에 만날 수 있었다.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류 사장은 마치 오랜 벗을 만난 듯 친근하다. 만나자마자 그는 “조선족이 멋있게 잘 살고 있음과 아름다움을 한복으로 표시해야 한다.”라고 입을 뗀다. 그의 말에서 민족적 자부심이 묻어나고 있었다. ▲ 대담을 하는 “연변예미민족복장유한회사” 류송옥 사장 ⓒ 김영조 “젊었을 때 몸이 약해 공부를 계속할 수 없어 복장업을 택하고 평생직업으로 삼았다. 처음엔 혼자 취미로 한 벌씩 만들어 팔았는데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 잘 팔리니 모방하는 사람들 때문에 어려웠다. 이불로 바꿔봤지만 역시 안 되었다. 그러다 1989년 한복에 자수를 놓기 시작했는데 이게 적중했고, 이후 한국에 다니면서 앞선 한복 기술을 받아들였다. 2003년 프랑스에 중국을 알리는 행사가 있어 조선족 대표로 한복 패션쇼를 했다. 모두 250벌의 중국 전통옷들이 출품된 자리에서 한복은 16번의 박수 그리고 더하여 기립박수를 받으면서 나는 무대에서 울 수밖에 없었다. 그 뒤 중국정부 민족사무위원회에서 영예증서(표창장)를 받았고, <소수민족 지정상품>이 되는 영광을 안았다."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류 사장은 감회에 젖은 듯했다. 연길의 호텔종업원과 행정대청 공무원들이 한복을 입게 된 계기를 물었다. “지난해에 텔레비전 방송국 공개홀 패션쇼가 있었는데 이 때 나는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고 협찬했다. 입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패션쇼를 본 연길 조철학 시장이 시정부에서 모든 비용을 대주도록 했고, 100여 명의 행정대청 직원들이 입도록 했으며, 중점학교 학생들이 교복으로 입도록 해주었다. 또 연길의 활동하는 노인들 대부분도 입게 되었다.“ ▲ “연변예미민족복장유한회사” 공장의 디자인실 ⓒ 김영조 ▲ "연변예미민족복장유한회사" 공장의 작업 모습1 ⓒ 김영조 ▲ "연변예미민족복장유한회사" 공장의 작업 모습2 ⓒ 김영조 ▲ "연변예미민족복장유한회사" 공장의 작업 모습3 ⓒ 김영조 연길 조선족들의 민족 정체성, 그리고 시장의 자주적인 사고를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예미는 중국 내 50여 곳의 대리점이 있을 정도로 인정받고 발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류 사장은 더 발전해야 한다며, 편한 옷감의 사용과 더 세련된 디자인의 개발 등에 힘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기자에게도 도움을 달라며 부탁하기도 했다. 그는 할 말이 많았다. 자주 걸려오는 전화와 직원들의 문의에 답을 해가며,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고 있었다. “일부를 빼고는 아직 한복을 결혼식에만 입는 옷으로 여긴다. 그런 의식을 깨고, 한복은 정말 좋은 옷임을 알려내야 한다. 조선족은 중국에 살면서도 민족정신을 간직한 채 자랑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앞으론 조선족 모두가 한복을 입는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나는 이 일을 하는 것이 정말 보람있고, 값어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류 사장은 그런 얘기를 하면서 눈이 반짝인다. 그는 민족적인 철학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친근하게 느꼈던지 친구로 지내잔다. 알고 보니 나보다 5살이 아래였지만 그게 뭐 대수일까? 객지 벗은 10년만 넘지 않으면 된다고 하지 않는가? 멀리 남의 나라 땅에서 민족의 얼을 살리는 최선을 다하는 류 사장에게 마음속으로 큰 손뼉을 치고 있었다. ▲ “연변예미민족복장유한회사” 사장실 유리에 붙어있는 글 "내가 만일 주인이라면" ⓒ 김영조 ▲ 조선민족박물관에 있는 예미의 전시장 ⓒ 김영조 작지만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공장을 둘러보고, 조선족민족박물관 안에 있는 전시장도 가보았다. 그리고 행정대청에도 들러 공무원들이 한복을 입고 민원인을 대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나는 한복의 본 고장 한국에서도 보지 못한 것을 멀리 중국 연길시에서 보았다.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먼 남의 나라 땅에서 어렵게 지탱해온 우리 동포들도 하는 일을 조국인 한국은 왜 못할까? 조철학 시장, 류송옥 사장 같은 정체성을 갖춘 사람이 한국의 정치인과 사업가 중엔 정말 없는가? 겨레문화를 지키고 발전하는 것이 진정 나라를 살리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