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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균의 《말뚝이 가라사대》와 함께하기

3. ‘만신의 피’ 허종복

[이달균 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와 함께하기 10]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소가야 벌안으로 달빛도 푸르른 날

생과부 속심지 울음 울며 타는 밤에

저만치, 껑충 멀대 같은 허연 귀신 몸짓보아

 

오오매 엉덩짝 둥실, 풍만한 달무리

손톱으로 퉁겼다가 품 안에도 품었다가 아아, 메구패 따라 남정네도 집 나간 텅 빈 마당 위로 바람은 건들 밤꽃 내음만 흩뿌리고 떠나는데 귀신아, 왜 달 밝은 밤이면 논둑에 나와 애써 다독인 마음 이리 아리게 흔들어 쌓노. 굿거리 굿거리장단에 덩실 달은 구름 속에 숨고, 어느새 한 마리 백학 되어 학춤으로 노닐다가, 머언 절간 세속의 연 못내 끊지 못한 비구니 속내 들추이는 승무도 펼칠 즈음, 설핏 꿈결엔듯 거류산 소롯길로 희뿌염 아침은 와, 한 농부 다랑논엔 피 반 나락 반인 게으름만 지천이라. 웃논에 물 대고 오는 실한 농부 탓하기를,

 

“에라이, 온 만신의 피! 피나 뽑고 춤이나 추지.”

 

※ ‘만신의 피’: 허종복(1930-1995)의 별호. 조용배와 함께 고성오광대를 이끌던 예인.

 

 

 

<해설>

이를테면 ‘만신의 피’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먼저 온몸에 피투성이가 된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 시에선 벼 심은 들판에 피를 뽑지 않아 ‘피 반 나락 반’인 논을 말한다. 한 마디로 한없이 게으른 농부의 논을 ‘만신의 피’로 표현했다.

 

소가야는 가야 시대 고성을 일컫는다. 기름진 남도 땅 고성 어느 달 밝은 날. 농사 걱정하는 부인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휘적휘적 춤사위에만 골몰해 있는 사내의 이야기다. 밤낮 춤에 미쳐 있는 사람이니 부인은 생과부 신세가 아니고 무엇이랴. 멀리서 보면 꼭 흰옷 입은 귀신만 같다.

 

둥글고 풍만한 달무리는 감각적이다. 달밤에 춤추는 저 훤칠한 남정네는 뉘집 서방인가. 애써 다독인 과부 마음, 담장 너머로 어른대는 현란한 몸짓, 아! 밤꽃 내음만 지천인데 속절없는 저 사내 한밤 내 춤사위가 가관이다. 굳이 ‘밤꽃 내음’이란 시어를 차용해 온 이유는 생과부 신세인 한 여인이 남정네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날 밝자 마누라 지청구에 못 이겨 피 뽑으러 갔다가 피는커녕 춤만 추는 사내 향해 지나던 한 농부 이르기를 “에라이, 온 만신의 피! 피나 뽑고 춤이나 추지.”라고 했다나 어쨌다나. 이 정도는 되어야 고성오광대 춤판 주름 잡는 춤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