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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5월 독립운동가, 박원희ㆍ김영순ㆍ조복금

근우회의 창립을 주도하고 항일운동을 펼친 분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29일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민족 통합적 여성단체인 근우회* 창립을 주도하고 민족차별에 맞서 항일운동을 펼친 박원희ㆍ김영순ㆍ조복금 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라고 밝혔다.

* 근우회 : 신간회 자매단체로 민족계와 종교계, 사회주의계의 여성을 통합하여 ‘한국 여성의 단결, 지위향상 및 항일운동’을 위해 조직된 단체로, 일제의 탄압에도 각종 강연회나 토론회를 통해 여성계몽활동, ‘광주학생운동’ 등 여학생운동 지원 및 여성 근로자 임금 차별 철폐 등의 지원활동 펼침

 

 

 박원희 선생은 대전에서 태어나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3년 동안 유학한 뒤 귀국, 1924년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주의 여성단체인 ‘여성동우회’를 조직하고 활동했다. 이후 1926년, 근우회 탄생의 밑거름이 되었던 중앙여자청년동맹을 조직한 뒤, 선생을 포함한 각계각층의 지식 여성 40명이 발기인단이 되어 1927년 4월 26일 열린 근우회 발기총회에서 21명의 준비위원에 뽑혔다.

 

1927년 5월 27일 YMCA 강당에서 회원 150명, 방청인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 근우회 창립총회에서 집행위원(21명)으로 뽑힌 선생은 근우회 집행위원회 교양부원으로 활동했다. 교양부 활동의 핵심은 여성들의 교양을 위한 강연 활동과 계몽운동이었다. 특히, 1927년 10월 ‘특수환경에 처한 조선여성의 사명’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강연에서 일제의 경제 침탈과 조선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던 중 일본 경찰에 의해 중지당하고 경찰서에 연행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 김영순 선생은 서울에서 태어나 정신여학교를 졸업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1919년 결성된 ‘대한민국 애국부인회’에 가입, 서기에 뽑혀 항일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조직 간부가 조선인 경찰에 밀고하여 1919년 11월 일본 경찰의 조사로 실체가 드러나면서 체포되어 1920년 2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박원희 선생과 함께 근우회 발기총회에서 준비위원, 근우회 창립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뽑혔으며, 회원모집 역할을 하여 근우회 전국 60여 개의 지회 설립에 이바지했다. 또한 근우회 집행위원회 교양부원으로 편집부와 학생부 설립 운영, 근우회 선전일의 책자 제작ㆍ보급, 근우회 지회 설치를 위한 강연회 활동 등을 통해 여성의 지위 향상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

 

□ 조복금 선생은 1911년 하동에서 태어나 진주여자잠업강습소를 졸업, 1928년 3월 하동청년동맹여자지부 정기대회에서 서무재정부 역원으로 뽑혔으며, 그해 7월 하동지회 설립을 주도하여 서무재정부를 맡게 되었다. 1929년 3월 제2회 정기대회에서 대의원으로 뽑혀 정치연구부를 맡아 활동했으며, 1930년 4월 근우회 하동지회의 전국 대의원에, 6월에는 하동청년동맹 집행위원 겸 여자부장으로 뽑히는 등 하동지역의 여성운동과 항일운동을 활발히 펼쳤다. 그러나 1931년 일제의 직ㆍ간접적인 탄압으로 중앙 근우회가 해체되면서, 하동지역 근우회도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이후 선생은 부산에 있는 조선방직회사 직공이 되어 노동항일운동에 참여했고, 1931년 6월 ‘노동자(勞動者)’라는 신문과 격문을 인쇄하여 각 공장의 노동자에게 배포했다. 이 사건으로 부산경찰서에 연행되었고, 8월에는 일명 ‘부산적색노동조합협의회’ 사건으로 송치되어 ‘출판법, 보안법,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들 세 명의 선생은 당시 차별적인 여성문제를 인식하고 ‘여성 지위향상’이라는 한국근대여성운동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으며, 일제의 탄압과 민족적 차별에 맞서 투쟁한 대한민국 여성의 상징이었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박원희 선생은 2000년, 김영순 선생은 1990년, 조복금 선생은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