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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삶은 동그란 길로 돌아 나오는 것을

《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느린걸음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95]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박노해 시인이 12년 만에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를 냈습니다. 박 시인은 저번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낸 이후 써온 시 가운데 301편의 시를 고르고 골라 온통 짙은 파란색의 두툼한 양장 케이스에 담아 세상에 내놓았네요. 표지에서는 푸른색의 남자가 파란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별들 사이로 두 줄기의 별똥별이 파란 궤적을 그리며 내려오고 있군요. 파란색의 디자인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면서도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 저쪽의 그리움으로 나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나눔문화에서 저에게 시집을 보내왔는데, 나눔문화 연구원들이 내가 좋아할 만한 시가 수록된 쪽 3군데에 붙임쪽지(포스트잇)를 붙여서 보내왔습니다. 시집을 받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시에 붙임쪽지를 붙여 보내는 연구원들의 정성에 이번에도 감동을 먹습니다.^^ 붙임쪽지를 붙인 세 시 가운데 하나는 시집 제목과 같은 ‘너의 하늘을 보아’입니다. 역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에 붙임쪽지를 붙여놓았네요.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이 이 시를 좋아할 것입니다. 이 시에 위로를 받았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동안에도 나눔문화에서 가끔 박 시인의 시를 번개글(이메일)로 보내주어 기쁘게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보석 같은 시들을 한데 모아 감상하노라니, 먼저 박노해가 시인을 넘어서 영성(靈性) 철학자로 느껴집니다. 전에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읽으면서 또 하나의 복음서로 느껴졌었는데, 《너의 하늘을 보아》에서도 그런 걸 느끼게 하는 시들이 많거든요. 그중에 ‘동그란 길로 가다’를 인용해보겠습니다.

 

누구도 산정에 오래 서 있을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환희의 날들은 짧다

고난의 날들도 짧다

 

돌아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힘든 때도 순간인 것을​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진실된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삶은 동그란 길로 돌아 나오는 것을

 

삶은 동그란 길로 돌아 나오는 것이다... 몇 번씩 음미하게 하는 철학적 시어(詩語)이네요. 박 시인이 사노맹 사건으로 1991년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98년 8.15 특사로 풀려나오지 않았습니까? 저는 박 시인이 수사받는 동안 모진 고문을 당하였을 것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박 시인은 지금까지도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었군요.

 

이에 관해 쓴 시가 여러 편 있는데, 고문의 고통에 대해 ‘내 몸의 문신’에서는 “고문 후유증은 밖으로 표명할 수 없는/ 나만의 공포, 나만의 치욕, 절망, 추락, 비명,/ 은근하게 기습하여 악랄하게 몰아대는/ 생생한 심신의 고통이었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니, 박 시인에게 연민과 미안함을 느끼면서, 한편으로 인간의 심신을 파괴하는 고문기술자들에게 분노감이 치솟습니다. 고문에 관한 시 가운데 《고문 후유증이 기습한 밤에》라는 시를 인용해봅니다.

 

(앞에 줄임)

너희는 그토록 나를 죽이려 했으나

끝내 나를 죽이지 못한다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니

죽이는 방법도 알 수가 없으리라​

 

나는 실패했지만

너희가 원하는 방식으로는

실패하지 않았으니​

 

나에게 기적이 있다면

죽지 않고 미치지 않고

아직 살아있다는 것​

 

나에게 부끄러움이 있다면

죽지 않고 미치지 않고

아직 살아간다는 것

 

비관의 밤안개가 몰려오는

이런 세계의 한 모퉁이에서도

제정신을 갖고 견디고 맞서고

몸부림침으로 살아가야 하리라

그래야 하리라 나는

 

사랑 때문에

의무 때문에​

 

오직 나 자신만이 증인인

나의 사랑 나의 투쟁이 있으니

 

시인은 그렇게 고문의 후유증에 고생하면서도 결코 시에서 그들에 대한 분노, 원망을 표현하지 않는군요. 고문의 날카로운 가시가 아직도 몸속에 박혀있는데도 훌쩍 고문 그 너머로 나아간 박 시인! 역시 시인은 위대합니다. 그런데 박 시인은 7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이런 박 시인의 시 세계에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가 없을 수 없겠지요. 박 시인의 시 세계에 등장하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보면 참 훌륭한 분이시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박 시인은 ‘넌 아주 특별한 아이란다’ 시에서 어머니의 말씀을 이렇게 전합니다.

 

(앞에 줄임)

너에게는 하늘 같은 맑은 눈빛과

햇살 같은 다정한 마음이 있단다

너에겐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을

좋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단다

 

아무도 널 보아주지 않는 듯한

그런 싸늘한 마음이 드는 날에도

하늘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널 지켜보고 계시단다​

 

힘들고 억울하고 원망이 생길 때마다

고귀한 뜻을 품은 깨끗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기도하거라

네 마음만은 누구도 어찌하지 못한단다.

(아래 줄임)

 

이런 어머니는 아들 박 시인이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미움으로 살지 말거라’라는 시에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앞에 줄임)

이승만 죽고 박정희 죽을 때도 나는 기도했다

전두환 노태우 감옥 갈 때도 나는 기도했다

잊지는 말아라 용서도 말거라

그래도 미움으로 살지 말거라

 

죽은 내 어머니는 그랬다

사람은, 미움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인생은, 사랑으로 살아내야 한다고

곧고 선한 마음으로 끝내 이겨내야 한다고​

 

미움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어머니! 제가 위에서 시인은 위대하다고 하였던가요? 어머니는 더 위대하십니다! 어머님이 이럴진대, 할머니는 어떠실까요? 박 시인은 ‘눈을 씻고 가자’라는 시에서 할머니의 말씀을 이렇게 전합니다.

 

아가 눈을 씻고 가자​

 

장에 다녀오는 길에 할머니는

동네 입구 샘터에서 눈을 씻겨 주시네

좋지 않은 모습이나 험한 것을 볼 때마다​

 

아가 눈을 씻고 가자​

 

바라보는 건 눈으로 어루만지는 것이어서

그걸 자기 마음속으로 끌어오는 것이니

사람은 눈을 잘 보호해야 하니라​

 

아가 눈을 씻고 가자

 

늘 시선을 바르게 유지하거라

그래야 맑은 눈빛에 마음이 빛나고

언행이 바로 서는 법이란다

 

아가 눈을 씻고 가자

 

박 시인의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 자애로운 미소로 어린 박 시인의 눈을 씻겨주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는 박 시인을 만날 때마다 호수 같은 맑고 깊은 눈빛에 저 자신이 빠져드는 느낌이 들곤 하였는데, 그러한 박 시인의 눈빛에는 할머니의 눈 씻김이 있었군요. 아! 인용하고 싶은 시는 많은데, 처음 출발하여 벌써 많이 흘러내려 왔네요. 계속 흘러갈 수 없어, 시 한 수만 더 인용하겠습니다.​

 

박 시인에게는 일상이 모두 시의 소재입니다. 지금 박 시인은 백두대간 아래 어느 산간마을에 단칸방을 얻어놓고 감옥에서부터 30년 동안 써온 한 권의 책, 우주에서의 인간의 길을 담은 사상서를 집필 중입니다. 그러면서 집 주위를 산책하면서 만나는 자연과 순박한 이웃, 심지어는 만년필과 같은 자신의 집필 도구도 시에 담습니다.

 

그 가운데 시 ‘선물은 신중히’를 인용해봅니다. 어느 날 박 시인은 어떤 여자에게 비누를 선물 받았나 봅니다. 시에서 박 시인은 이런 향기 좋은 비누를 선물하면 어떡하냐고 여자를 나쁜 여자라고 타박합니다. 항상 삶을 생각하게 하는 진중한 시를 보다가 이 시를 감상하니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네요.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면서 박 시인의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를 본 저의 소감을 마칩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요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침향 내음 조금

시가 여운 조금

야한 향기 조금요​

 

그녀가 수줍게 건네준 비누로

몸을 씻는다

잠자리에 누우니 묘하다

야한 향기 조금이라더니

사향 내음이 뭉글 풍기는데

어쩌라고, 나쁜 여자​

 

꿈에 푸른 숲과

햇살 가득한 풀꽃 초원과

보드라운 녹색 이끼 위에

벌거벗은 몸으로 뒹굴며

사슴과 노루를 쫓다가

깨어난 아침​

 

몸에서는 여태 묘한 향이 풍기고

거울 속엔 얼굴 붉어진 은발의 소년이

부끄러워 미소 짓다가

선물은 신중해야지, 나쁜 여자​

 

너, 대책 없이 야한 비누야

외로운 밤마다 마구마구 써 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