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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철인들의 철 이야기

쇠를 다룬 철인(鐵人), 시대를 내다 본 철인(哲人)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61]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최근 우리에게 전해진 희소식 가운데 하나는 우리나라 방위산업 분야에서의 수출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일 거다. 연초에 이집트와 호주에 우리가 생산하는 K-9자주포를 수출하는 계약이 성사된 데 이어 최근에는 폴란드에 K2 전차 천 대와 K-9자주포 600대의 공급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다. 이어 현대자동차그룹이 올해 상반기에 사상 처음으로 세계 자동차 판매량 3위에 올랐다는 소식도 있다. 우리나라 선박 건조가 세계 1위가 된 지는 상당히 오래전의 일이다.

 

이렇게 자동차, 선박, 방위산업 분야에서 잇따라 들려오는 좋은 소식은 우리나라가 품질 좋은 철강제품을 생산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이 깔려 있다. 우리나라가 철강제품의 강국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1970년대에 포항제철이 우리 기술로 철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춘 것이 발판이 되었고, 그것을 성사시킨 것은 고 박태준 포항제철 전 회장의 지대한 공임을 우리는 안다. ​

 

그렇지만 이 제철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가 전 세계 중요 선진국에 읍소를 했을 때 어느 나라도 거들떠보지 않았는데, 오로지 이웃나라 일본이 이 기술을 우리에게 제공하면서 건설비용도 청구권 자금으로 제공한 것이 핵심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다만 일본도 사실은 우리에게 그 기술을 주지 않으려 했는데, 일본의 한국식민지 지배를 반성하던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각별한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는데, 그 점을 이제 우리가 거의 잊고 있는 것 같다. 당대 일본 최고의 사상가로 존경받던 양명학자(陽明學者) 야스오카 마사히로(安岡正篤 1898~1983) 와 한ㆍ일 외교 뒷무대에서 활약했던 세지마 류조(瀨島龍三· 1911~2007) 전 이토추 상사 회장 두 사람이 결정적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특명으로 도쿄로 간 박태준 회장은 가장 먼저 야스오카 마사히로를 찾았는데, 야스오카는 ‘과거를 반성하고 한국을 돕는 것이 일본의 국익(國益)’이라는 한국관(觀)을 갖고 있었고,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는 방파제라고 생각을 해서 먼저 기술 협력의 열쇠를 쥐고 있던 이나야마 요시히로(稲山嘉寛 1904~1987) 일본철강연맹 회장에게 박태준을 보냈으며,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 등 정계 거물과의 연쇄 만남도 주선했다.

 

세지마 류조 회장도 정관계 경제계 인사들에게 한국을 도와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주었다. 박태준 회장은 이들을 만나 한국이 제철기술로 자립하지 않으면 일본의 안보가 위험하다는 논리로 설득함으로써 마침내 일본 정부와 기업이 우리나라에 제철기술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반세기 뒤 우리는 그 철강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려 가장 값싸고 튼튼한 철강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세계적인 중공업 중심으로 일어선 것이다.

 

야스오카는 양명학자였다. 양명학은 깨달음을 넘어선 실천을 중요시한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등불 하나를 걸어 한쪽 구석을 밝힌다. 그리고 열성과 성의를 갖고 걸음을 계속한다. 그러면 언젠가 꼭 공감할 사람이 나타나 줄 것이다. 등 하나가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면 언젠가 만 개의 등이 되어 나라를 훨씬 더 밝게 해 줄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자신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잘 쓰지 않지만, 한때 일본에서는 ‘골력(骨力)’이란 말이 유행했었다. 원래의 골력은 서화(書畵)에서 글씨의 획에 드러난 굳센 힘을 의미하는데, 일본에서는 이를 개인의 창조력으로 풀었다. 야스오카는 인격이라던가 창조력이라던가 그런 것에서의 원기(元氣)를 골력이라고 한다고 풀이하고는 ​

 

“골력이 있어야 이런저런 것들이 생겨 나올 수 있다. 우선은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 중요하다. 그것이 곧 지(志)이며, 이 지(志)에 기골(氣骨)의 기(氣)가 더해지면 지기(志氣)가 되어, 기골이 왕성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라고 하면서 사람은 기골이 왕성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그리고는 일본사회에 바로 그러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

 

“몸도 조직도 국가도 잘 생각해보면 마음이고 결국은 사람이다. 최후에는 사람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이 지금 기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사람은 많지만 진정한 사람이 부족하다. 있어야 할 곳에 인재를 배치해야 한다. 이는 동서고금을 통해 변하지 않는 진리다”​

 

야스오카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패전의 수렁에서 패배감과 운명론적 허무주의에 사로잡혔던 일본 국민에게 '운명은 개척할 수 있다'라고 가르쳐 그들을 정신적으로 일으켜 세우고, 정계와 재계 인사들을 계몽하여 국민적인 존경을 받은 인물이다. 20대 초반에 이미 양명학(陽明學)과 동양철학으로 이름을 떨친 그는 전후의 일본에 희망을 심어주고, 기능주의로 치닫는 일본인들에게 인간화를 역설하고, 젊은이들이 스스로 깨닫고 노력해서 자기 운명을 개척해 가도록 많은 강연을 하고 글을 썼다.​

 

우리는 일본의 현대 인물들로부터 배우자는 말을 하면서 흔히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1894~1989)의 경영철학은 많이 언급하였지만, 이 야스오카의 사상과 철학에 대해서는 사실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일찍 학문을 통해 깨달은 인간의 심성과 의지의 중요성을 자국민들에게 알리고, 또 이웃 한국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본 조야에 큰 힘을 발휘한 것을 우리는 지나칠 수 없다.

 

 

어찌 보면 야스오카나 세지마가 우리에게 전해주도록 한 제철기술은 아득한 옛날 한반도 남부의 가야인들이 일본열도에 제철 기술을 가르쳐 준 이후 근 1,800년 만의 보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제철기술을 얻어와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박태준 회장은 평소 '제철보국'을 외쳤다. 거기에 우리 국민이 합심했다. 우리나라가 최근 꼭 방위산업만이 아니라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의 첨단 산업으로 계속 발전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박태준 회장의 신념이 옳았음을 인정하게 되며, 동시에 반세기 전에 이웃 나라를 살리는 것이 자국을 살리는 것이라며 제철기술을 한국을 도운 야스오카 마사히로라는 한 대단한 사상가를 같이 떠올린다.

 

그는 말 그대로 시대를 앞서간 철인(哲人)이었다. 박태준은 쇠를 다룬 철인(鐵人)이었고 그도 시대를 내다 본 철인(哲人)이었다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세지마 류조도 철인이었다. 역사는 언제나 시대를 내다보는 철인을 필요로 한다. 야스오카는 한 나라의 미래를 최소 5년 이상 10년을 내다볼 수 있는 큰 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는데, 야스오카나 박태준, 혹은 다른 철인들을 통해서, 그 지도자는 바로 지금 이 시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