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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의 문화 톺아보기

예술전공 하면 뭐하며 살 수 있어요?

문화예술기획자로 사는 삶과 그 값어치
[이진경의 문화 톺아보기 1]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문화예술기획자’란 직업을 아는가? 많은 사람에겐 생소한 직업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문화를 외면하고 살지 않았다면 문화예술기획자와 알게 모르게 접하고 있었을 것이다. 문화예술기획자가 있어야만 문화와 관련된 행사를 열 수가 있다. 거문고를 공부하고, 지금 문화예술기획자로 살아가는 이화여대 이진경 교수의 글을 통해 앞으로 공연과 문화행사를 톺아보고, 그 뒤에 서린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이 교수가 어떻게 문화예술기획자가 되었고, 어떤 생각으로 문화예술기획자의 일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향후 이어지는 연재를 통해 '문화예술기획'이란 작업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하는 시간을 갖고자한다.  (편집자말)

 

문화예술기획자가 된 지 10년이 넘어간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예술전공으로 뭐하며 살 수 있어요?”다. 그럼 나는 내가 어떻게 예술을 전공하게 되었고 지금의 일을 하게 되었는지 과정과 그 과정에서 만난 여러 가지 직업들을 이야기해주곤 한다. 처음부터 문화예술기획자가 목표는 아니었다. 나의 부모님은 나를 보면서 곧잘 공부하니 의사가 되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중학교 과학 시간 때 붕어와 개구리 해부를 하다가 혼비백산하여 그 길로 의사의 꿈을 접어버렸다.

 

취미로 배운 바이올린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거문고를 만나,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대학까지 줄곧 전통음악을 공부했었다. 막상 사회에 나가 직업을 구하려니 마땅한 길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민간에서 하는 공연기획을 배우고 뮤지컬제작회사에서 공연에 관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무대 뒤에 있는 일을 하려고 지난 몇 년을 전통음악을 배웠나 싶은 자괴감이 들었다. 또 몇 개월씩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영 내 적성은 아니었다.

 

고심 끝에 모교 대학원에 들어가 석사 과정을 거치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유치원 교사 친구의 권유로 유치원에서 국악특강을 하게 되었다.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거문고 하나 들고 가서 악기 소리 들려주고, 만질 수 있게 하는 게 다였다. 원장님들의 소개로 몇몇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열심히 거문고를 소개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참 아쉬웠다. 무엇인가 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중등교원자격증이 있었지만, 유아를 대상으로 교육을 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그래서 보육교사자격증을 취득하고 국악강사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이 있으니, 강사풀제 속에서 일해도 좋으련만 왜 그때 나는 미취학 아동에게 꽂혔는지 꽤 오랫동안 유아 국악강사로 일을 하였다. 덕분에 교육기업에서 들으면 ‘아’ 하는 곳에서 다양한 프로그램기획도 하면서 나름 만족하면 살았고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한 거문고 주법지도 방안”이란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렇다고 거문고를 놓은 것은 아니었다. 일찍이 거문고를 놓고 국악이론ㆍ작곡으로 전공을 바꿔 학부 졸업을 하였으나, 몇몇 마음에 맞는 선후배, 동기들과 연주 활동을 하였다. 종교가 기독교이다 보니, 제일 많은 연주 의뢰가 들어온 곳은 당연지사 교회였다. 교회에서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우리팀을 불러주었고, 어엿한 음반을 내기도 하였다.

 

 

그 음반이 꽤 여러 사람 손에 들어갔는지, 어느 선교사님이 내게 중국 두만강에서 하는 축제를 도와줄 수 있냐고 하시는 것이었다. 전공도 아닌 내가 반 취미로 했던 연주 활동으로 중국지역축제에 가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 공연기획보다 조금 더 범위가 큰 문화예술기획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중국은 모든 것이 국가에서 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그에 적법한 절차를 통해 행사를 열고 진행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 축제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참여할 수 없게 되었으나, 문화예술기획이란 무엇인지를 알고 내 일의 범위를 넓히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 까닭에 우리나라 공공기관에서 하는 문화기획분야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여 맨몸으로 도전하게 되었고, 도시재생부터 축제, 예술교육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하면서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과 범위를 넓히게 되었다. 지금은 대학교에서 문화예술기획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때론 그 이름이 문화콘텐츠, 융복합콘텐츠 등 다양한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내가 하는 이름은 문화예술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운영에 관한 것이다.

 

계원예술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특강을 한 적 있다. 특강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나를 붙들고 이런 질문을 한 적 있다. “제가 예술로 먹고살 수 있을까요?”

 

왜 우리는 예술을 전공하게 되었을까? 더 정확히 묻자면 ‘예술 가운데 실기를 전공하게 되었을까’일 것이다. 누군가는 예술 자체가 너무 좋아서, 혹자는 엄마가 시켜서, 어쩌다가 하다 보니 등 다양한 답변이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예술고등학교 출신만 해도 몇천 명이 넘을 것이다. 이 모든 학생이 독주자로, 관현악단원으로 취업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기획자로, 내 친구는 학원 원장으로, 내 후배는 국악강사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실기를 하고 있지 않는 우리는 예술가가 아닐까? 우리는 전혀 예술적 기질이 없는데 동네 음악학원 선생님 꼬임으로 예술을 한 것인가? 우리는 실패자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분명 예술적 재능이 없었다면 우리는 예술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집어치우면 되는 것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던 예술의 끝자락에서 어떠한 형태든 예술을 하고 있다면 내 안의 예술적 기질은 분명히 있는 것이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쟁에 낙오되어 1%의 연주가 되지 못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노력을 했다. 치열하게 몇 년을 혹은 몇십 년을 악기를 붙들고 살았다. 안정적으로 한 단체 소속의 연주자 길이 열린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연주가 아닌 다른 관심사가 생겨 연주자의 길을 가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어찌 되었든 간에 아직도 내가 예술의 어느 한 자락을 붙들고 서 있다면 우리는 예술가다. 예술을 한다고 해서 생계가 안정적이거나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닐 테다. 그러나 그 예술을 하면서 때론 너무 좋고, 때론 너무 힘들고, 때론 웃고, 때론 울면서 아직 그 자리에 서 있다면 우리는 예술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예술가, 예술인이다. 그러니 예술전공 하면 뭐 하며 살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길이 열리는 대로 가다 보면 그 길이 바로 내 길이다. 모든 시작과 그 바탕이 예술이라면 이미 충분히 예술전공을 선택한 값어치는 충분히 발휘된 것이니 가던 길, 더 즐겁게 가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