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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영국인의 오만이 붙인 이름 에베레스트

산사람들과 부담 없이 나누는 《산정한담》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99]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번 책은 산악계 원로이신 이용대 전 코오롱등산학교 교장님이 쓰신 수필집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산정한담(山頂閑談)》은 산악계 원로가 지나온 산악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쓴 글들입니다. 그래서 책 표지의 부제에는 ‘산 위에 올라 인생을 돌아본다’라고 되어 있네요. 선생은 책을 여는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등산을 시작한 지 어느덧 반세기가 흘렀다. 혈기 넘치던 젊은 날 나의 산은 위험한 짓거리와 마주하는 치기로 가득했다. 여러 차례의 추락으로 죽지 않을 정도의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 내면에서 솟구치는 산을 향한 열정을 꺾지 못한 채 오늘도 산에 오르고 있다.

 

(가운데 줄임)

 

이번 글의 내용 대부분은 산과 사람의 이야기와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 알피니즘의 정체성, 산악인들의 사사로운 일상과 그들의 등산 활동이 배경이며, 이전 저서에서 못다 한 이야기이다.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은 주변 산사람들과 부담 없이 나누는 산정한담(山頂閑談)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삶의 터전마저 산기슭으로 옮겨와 둥지를 마련한 지 40년, 아직도 강북에 사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지만, 산의 품에서 떠날 수 없는 것이 내 고집이다. 그렇게 오늘날까지 북한산을 마주하며 살고 있지만, 산은 늘 내게 새로운 화두를 던져준다.

 

서재의 북창으로 조망되는 인수봉을 바라보며 오늘도 나는 산에 오른다.”

 

 

80대의 나이에도 산의 품을 떠나지 못하고 여전히 오늘도 산에 오르는 이용대 선생은 진정한 산사나이시군요. 책에는 선생이 펼치시는 33꼭지의 산정한담이 ‘사람들은 왜 산에 오르는가 / 정상을 향한 도전의 역사들 / 알피니스트, 자신만의 길을 만들다 / 등산 장비의 변천사’의 4장으로 나누어 펼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몇 가지 제 눈에 띄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알파인 클럽이란 무엇인가’의 글을 보니, 산악회라는 이름이 역사의 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1857년 12월 22일 영국에서 처음 창립된 알파인 클럽이네요. 그런 자부심 때문인지 다른 나라에서는 ‘알파인 클럽’ 앞에 자기 나라 이름을 붙이는데, 영국은 지금도 그냥 알파인 클럽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자부심이 세계 최고봉의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선생은 ‘에베레스트를 향한 세계의 집념’이란 글에서 이에 대해 말합니다. 1852년 히말라야 산들의 높이를 측량하던 영국 측량대가 에베레스트가 세계 최고봉임을 확인합니다. 그러자 영국 왕립지리학회는 세계 최고봉 발견을 기념하여 1865년에 산의 이름에 측량작업에 공이 큰 전임 측량국장 조지 에베레스트의 이름을 붙입니다.

 

그렇지만 당시 산 이름에는 사람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이 관례였고, 지명은 현지에서 부르는 이름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세계 지리학계의 공식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당시 이미 유럽에는 ‘초모롱마’라는 이 산의 이름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에베레스트라고 이름을 붙이다니요? 영국의 오만이 이런 것에서 드러났군요. 지금이라도 ‘초모롱마’라는 원래 이름을 되찾아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더구나 단순히 사람 이름보다는 ‘성스러운 어머니’라는 뜻의 ‘초모롱마’가 훨씬 더 낫지 않습니까? 결자해지라고 영국이 앞장서서 ‘초모롱마’ 원이름 찾아주기 운동을 벌여주었으면 좋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선생은 초모롱마(저는 지금부터 에베레스트 대신 초모롱마로 부르겠습니다)가 해마다 3~6mm 정도 북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얘기도 하십니다. 아주 오래전 인도 대륙이 아시아 대륙과 충돌하면서 초모롱마를 바다 밑에서부터 밀어 올렸고, 지금도 계속 북동쪽으로 밀어붙이고 있기에 초모롱마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이지요.

 

초모롱마는 북동쪽으로 이동할 뿐 아니라, 키도 조금씩 계속 자라고 있습니다. 예전에 히말라야 등산 갔을 때 상인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바다 생물 화석을 팔던 생각이 납니다. 예전에 바다였던 곳이 대륙이 충돌하면서 히말라야가 생겨난 것이기에, 지금도 관광객들에게 팔 정도로 바다 생물 화석이 많은 것이지요.

 

‘여성 산악인, 규방을 넘어 에베레스트까지’라는 글도 재미있습니다. 세계 처음 몽블랑에 오른 여성은 1808년에 오른 프랑스의 마리 파라디(Marie Paradis)라는데, 당시 마리는 긴 외투에 발끝까지 내려오는 통치마를 입고 몽블랑에 올랐다고 하네요. 아니? 어떻게 그런 복장으로 눈과 빙하의 그 높은 몽블랑(4,807m)을 오를 수 있었던 것이지요? 당시 가이드들이 마리를 끌고 당기고 때로는 등에 업고 등정을 했다는데, 그때 그녀와 동행했던 사람들의 절반은 몽블랑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하는군요. 그야말로 고난과 죽음의 등정이었네요.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1930년대 북한산 백운대를 오르던 한 여성이 바람에 날리는 치맛자락을 잡으려다 몸의 중심을 잃고 추락한 일이 있었다는군요. 요즘 치마를 입고 산에 오르는 여성은 거의 볼 수 없지만, 그때만 하여도 여성이 바지를 입고 산에 오르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을 때이니, 그런 사고도 있었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영국의 앨리슨 하그리브스는 1995년 여성 처음으로 초로롱마를 올랐고, K2를 오를 때에는 가이드 도움 없이 무산소로 단독 등정을 하였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하산 과정에서 시속 100km의 강풍에 휩쓸려 실종되었다는군요. 실종 당시 앨리슨은 두 아이의 엄마였다는데, 1988년에는 임신 6개월의 몸으로 그 험악한 아이거 북벽을 올랐답니다. 출산 후에는 등반이 어려울 거라는 생각에 그러했다는데, 임신 6개월에 아이거 북벽을 오르다니! 아마 그 태중의 아기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엄마 뱃속에서 아이거 북벽을 오른 기록을 세운 것이겠네요.

 

또한 미국의 린 힐은 1994년에 1,000m 수직의 벽 엘캐피탄의 등반 루트 중 수직벽(노즈)를 자유등반으로 올랐답니다. 자유등반이란 자일도 없이 그저 맨몸으로 오르는 것인데, 그러다가 아차 잘못하면? 아이구! 생각만 하여도 끔찍합니다. 당시 남자들도 감히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할 때 여성이 1,000m의 수직 벽을 맨몸으로 올랐다니,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생은 이 글에서 이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난 후배 산악인 3명과 등반 중 추락하여 지금도 끈질긴 투병생활을 하는 후배 산악인 김기섭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1998년 탈레이사가르 북벽에서 정상 100여 미터를 앞두고 1,300미터를 추락해 불꽃처럼 산화한 신상만, 2008년 설악산 염주골에서 홍콩 경찰청구조대를 교육하던 중 눈사태에 묻혀 이승을 하직한 김형주, 히말라야 8,000미터 고봉 14개 레이스 중 2009년 낭가파르바트에서 하산 중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 고미영이 선생이 안타까이 부르는 떠나간 산악후배들입니다.

 

선생은 김형주를 얘기하면서는 원정기간 중 턱수염을 기르고 파키스탄 특유의 양털 모자를 쓴 모습을 떠올리고, 고미영을 얘기하면서는 교육현장에서 수강생들에게 자상한 누이였고, 학생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인기강사 고미영을 떠올리네요.

 

김기섭은 1989년 외설악 노적봉에 새로운 길을 열면서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답니다. 아하! 저도 예전에 이 이름을 듣고 ‘누가 바윗길에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하며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김기섭씨가 붙인 이름이군요. 김기섭씨는 이외에도 백운대에 ‘시인 신동엽길’, ‘녹두장군길’, ‘김개남 장군길’을, 설악산 토왕골에 ‘별을 따는 소년들’을, 도봉산 자운봉에 ‘배추흰나비의 추억’을, 북한산 노적봉에 ‘즐거운 편지’를, 홍천강 암벽에 ‘별과 바람과 시가 있는 풍경’길을 개척하였답니다. 이런 시심이 담긴 멋진 이름을 붙였던 산악인이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니, 안타깝군요. 그 끈질긴 의지로 꼭 일어서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