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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태풍은 지나가고

한가위만큼은 모두에게 알찬 명절이 될 수 있기를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6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틀 전 늘 가던 둘레길 산책을 마치고 내려오던 중 입구에 흰 테이프가 처져 있었고 등산로를 폐쇄한다는 표시가 있었다. 태풍 피해를 막기 위함이렸다. 그러고 오후 내내 안내방송이 이어졌다. 밤새 걱정도 했다. 얼마나 엄청난 태풍이 오는 것일까? 새벽 4시에 얼른 창밖을 보았다. 어! 바람도 비도 잦아졌네?

 

그리고 다시 보니까 부산과 경남, 그리고 울산과 포항을 지나면서 400밀리가 넘는 엄청난 비로 곳곳이 물에 잠기고 정전이 되고 길이 끊기고 했는데 초기에는 인명피해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하 주차장에서 주민들이 대거 실종되는 등 안타까운 인명피해도 많이 났다. 역사상 유례가 없이 강한 태풍이라고 해서 다들 긴장하고 조심했지만, 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은 다시 무력한 존재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산에 올랐다. 역시 상처가 꽤 있구나. 등산로 입구부터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과 제법 굵은 가지들, 빗물에 쓸려 내려온 길 모래와 작은 자갈들이 길 위에 올라와 있다. 조금만 땅이 낮은 곳에는 빗물들이 졸졸 흐르다가 아래쪽으로 가서는 굵은 물줄기가 되어 평지 근처에서는 폭포처럼 쏟아진다. 그런 가운데도 누가 쌓았는지 모르는 작은 돌탑들은 비비람을 이기고 서 있었다.

 

비가 너무 안 오다가 갑자기 엄청난 비가 와서 피해가 난 남부지방에는 미안한 일이지만 우리 소시민으로서는 올여름 이 둘레길에서 정말 원 없이 맑은 물소리를 들은 것이 가장 고마운 일이다. 한동안 남부지방에 비가 안 와 가뭄이 심각한 상황인데도 이 북한산 북서쪽 일대는 7월과 8월, 그리고 9월 초까지 툭하면 비가 오는데, 그것도 제법 많이 와, 그 빗물들이 골짜기를 타고 내리면서 일대에 시원한 폭포소리를 들려주고 있었다. 동네 이름이 속칭 폭포동인데 폭포의 물소리가 늘 들리니 이름에 걸맞은 경험을 한 셈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여름이 가고, 이제 9월 초, 이번 주말은 한가위니 여름이 다 가고 가을이 오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은 때가 되었다. 그렇게 자주 내린 비로 주민인 우리는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미안한 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송충이 등 나뭇잎을 먹고 사는 벌레들이나 모기 같은 날벌레가 예전에 견줘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적어져서 다니기에 좋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매미들이 충분히 울어보지도 못하고 이 세상을 하직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대개는 8월 한 달 실컷 울어야 7년 동안 땅 속에서 애벌래로 있던 시기의 각고의 노력이 보람을 얻는 것인데, 자주 비가 오다 보니 미쳐 마음껏 울어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 안타깝다.

 

모든 생명은, 그것이 인간에게 해가 될 수도 있고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다 생명이라는 우주의 섭리에 따라 태어나고 죽는 것이고, 태어나는 것은 또 나름대로 다 의미가 있으며, 그러기에 자기의 일생을 나름대로 잘 살고 가는 것이 좋은데, 올여름 북한산 이 일대의 둘레길에서는 아쉽게 생을 끝내는 미물들이 많이 있더라는 것이다.

 

아무튼 오늘 아침 같이 길을 가는 부인의 말씀 "우리가 다 자연을 배우는 것이지요", "네 뭐라고 자연을 배운다고요?", " 자연의 이치, 자연의 섭리, 생명의 의미를 배우고 깨우치는 것이지요. 이 아침의 둘레길 산책을 통해서..."

 

맞구나. 아침마다 둘레길 산책을 어언 10년 가까이 하다 보니 우리도 모르게 깨닫고 얻는 것이 있구나. 그것이 자연을 가까이하고 있는 보람이구나. 둘레길 옆에 서 있는 문인석에 근처 길에서 주운 밤알을 하나 공양으로 올려놓았다. 기뻐하는 표정이 너무 좋다. 이런 좋은 웃음이 이곳을 찾는 산책객들만이 아니라 저 아랫동네, 나아가서 시끄러운 도시 한복판에서 매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사는 분들에게도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절로 생긴다.

 

 

 

걱정스러운 태풍이 지나가면서 이 정도로 큰 위기를 넘기게 된 것도 고마운 일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그 뜻이 있는 것이기에, 태풍만 해도 다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 하겠다. 멀리 열대지방에서부터 헝클어진 대기가 나름대로 기운을 따라 흩어졌다가 다시 뭉쳐서 어떤 기운이 되고 그 기운이 바다와 땅과 산과 강과 만나서 각기 다른 기운으로 변해 공기와 대지의 청소를 한다.

 

우리는 자라면서 시골에서 보고 배웠다. 시냇물이나 강에도 큰비로 물들이 내려가면 하류에서 물고기들이 막 올라오지 않던가? 태풍이나 큰비도 이처럼 대지의 여러 요소에 온갖 청소를 하고 영양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니, 이런 좋은 측면이 있지만 때로는 큰 피해도 주고 있어서 우리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미리미리 잘 대비해야 할 일이기는 하다. ​

 

어쨌든 해가 나는구나. 푸른 하늘이 돌아오는구나. 마치 우리가 병으로 앓다가 다 나아서 상쾌해지듯, 사람들이 푸른 하늘을 보며 다들 기운을 차린다.

 

 

이제 내일모레면 한가위인데 그 사이에야 또 비가 오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한가위를 잘 지낼 일만 남았다. 한가위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분들이 많아, 그 분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멀리 가 있거나 가까이 사는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 가족의 기쁨을 함께 나눌 시간이 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새로 들어서고 여러가지 변화를 꾀하는 것이 아직 안정이 안 돼 정치권은 연일 뭔가 으르렁거리는 것이 일이 되었지만, 태풍이 지나고 맑은 날이 오는데 한가위를 지나는 다음 주 중반까지라도 모든 정쟁을 멈추고 서로 복을 주는 언사와 행동으로 이번 한가위만큼은 모두에게 포근하고 알찬 명절이 될 수 있기를 푸른 하늘에 소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