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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늦더위 속의 창덕궁 공부하기

문화재 관람도 아는 만큼 더 재미있게 보이는 시대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65]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 6월 말 회사 후배들과 함께 아침 일찍 창덕궁과 후원을 관람한 적이 있는데 마침 약 석 달쯤 지난 지난주 토요일에 우리 집안 화수회 회원들과 함께 창덕궁을 답사하는 기회가 있었다. 계절은 9월 중순인데도 덥다 늦여름 날씨 같다. 간간이 해가 나면 등이 뜨겁다. 그렇지만 다시 보는 창덕궁과 후원, 다시 보는 만큼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었다.

 

 

 

 

인정전 등 큰 전각이 즐비하지만, 대부분은 보았던 것이어서 대충 보고는, 이번에는 집안 아지매 누님들도 있고 해서 왕비의 거주공간인 대조전 구역으로 같이 들어가니 뒤편에 아름다운 계단식 정원과 함께 괴석이 두 개가 보인다. 그 가운데 하나에는 소영주(小瀛洲)라 쓰여 있다. 작은 영주산이란 뜻이다.

 

 

중국에서는 그들의 땅의 동쪽 끝에 봉래산(蓬萊山)ㆍ방장산(方丈山)ㆍ영주산(瀛洲山) 등 세 산이 있어 이를 삼신산이라고 부르는데, 진시황과 한무제가 불로장생의 영약을 구하기 위하여 이곳으로 동남동녀 수천 명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산을 지리산, 금강산, 한라산으로 생각한다. 소영주라 했으니 이 괴석을 작은 영주산으로 이름 지어 보았다는 뜻이다. ​

 

여성 회원들이 관심이 있을 낙선재로 안내를 했더니 민가의 살림집 같으면서도 아기자기 장식이 돋보이는데, 정면 건물인 낙선재의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단정한 글씨가 마음에 들어서였을 것이다.

 

 

낙선재 현판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와 깊이 교유했던 청나라 사람 섭지선(葉志詵)의 글씨다. 대청 앞 주련은 김정희의 스승인 옹방강(翁方綱)의 글씨라 한다.​

 

낙선재는 1847년(헌종 13)에 조영되어 약 2년 동안 사용되다가 이후 30년 이상 방치되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이후 왕실 주요 인물들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1910년(융희 4) 8월 일본에 국권을 넘겨준 순종은 창덕궁에서 생애를 보내는데, 1912년부터 1919년까지 낙선재와 창덕궁의 여타 전각을 오가며 거처를 옮겨 지냈다.

 

1926년 순종이 대조전(大造殿)에서 생애를 마감하자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윤씨(尹氏)가 낙선재에 머물러 살았다. 이후 낙선재가 좁아 불편하다고 하여 1929년 3월 증축하였다 순정효황후는 1966년 낙선재에서 승하하였다. 그리고 1963년 귀국하여 순정효황후와 함께 거처하던 이방자(李方子) 여사가 1989년, 1962년 귀국한 덕혜옹주(德惠翁主)가 1989년 낙선재에서 영면하였다.

 

사실 지난번에 갔을 때는 이 낙선재라는 현판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더니 이번에 보니 의미가 있고 재미있다. 다시 귀와 눈이 열리는 것 같다. ​

 

후원으로 들어가서 상징적인 건물인 주합루를 다시 본다.

 

2층으로 된 당당한 다락으로 여기에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했다고 한다. 저 건물의 현판은 물론 정조의 글씨다. 그런데 우리가 늘 자주 보면서도 그 뜻을 잘 모르는 이 주합(宙合)이란 글자를 가지고 내가 좀 잘난 척을 했다. 사실 올 때마다 해설사님들의 설명에는 없는 것이어서 그렇다.

 

주합(宙合)의 주(宙)는 우주(宇宙)의 ‘주(宙)’인데, 옥편을 보면 우도 주도 모두 집이라는 훈, 곧 집 우, 집 주라고 읽는다. 즉 우도 집이요, 주도 집이다. 그게 무슨 뜻인가? 우주가 큰 집이라고 본 것 같은데 그게 우주를 제대로 설명하는 것인가?

 

이 부분을 내가 전에 공부한 바로는 우(宇)는 공간 개념의 집을 뜻하고 주(宙)는 시간 개념의 집을 뜻한단다. 이런 뜻을 고려하면 우주는 곧 끝없는 공간과 아득한 옛날부터 앞으로 영원히 이어질 시간을 합한 시공간 개념인 것이다.

 

그러므로 끝없는 공간과 시간의 집합체인 우주에서 시간의 의미만 따로 뗀 것이 주(宙)이고, 그것이 합해졌다는 것은 곧 이 우주의 과거로부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이 여기 이 집에서 모두 만나 합쳐진다는 뜻이 된다. 곧 규장각이라는 것은 단순히 말하면 왕실의 책과 어필 등을 보관하는 곳이지만 속뜻은 그러한 시간의 지혜가 다 모여지는 공간이란 뜻이 되니, 정조가 이 ‘주합’이란 이름을 쓴 것은 참으로 의미가 깊다고 하겠다.

 

 

 

정조 즉위년(1776)에 지은 2층 건물인 주합루로 들어가는 문은 어수문으로, 왕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신하들은 어수문 양옆 협문으로 드나들었다. 주합루 아래층에는 조선왕실의 족보ㆍ서책을 보관하고, 경전과 역사를 토론하던 규장각이 있었다. 2층은 열람실 기능을 하였다. 어수문(魚水門)은 말 그대로 ‘물고기와 물의 문’이라는 뜻으로 임금을 물에, 신하들을 물고기에 비유하여, 군신(君臣)은 서로 융화하는 관계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일주문 형태의 작은 문이지만 팔작지붕에 용 조각을 치장하는 등 화려한 단청 장식이 돋보인다.​

 

한편 뒤편의 연경당 구역으로 들어가는 불로문 안에는 어수당(魚水堂)과 천향각(天香閣)이 있다. 모두 효종(孝宗)이 송시열(宋時烈)을 독대(獨對)하기 위하여 창건한 건물이다. 효종은 촉한(蜀漢)의 소열제(昭烈帝)가 제갈량(諸葛亮)을 대하듯 송시열을 우대하려고 ‘어수(魚水)’라는 두 글자로써 이름을 따서 의미를 부여하였다. 어수에는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주합루 뒤편 돌로 된 불로문을 지나서 사대부가 형식의 건물인 연경당 구역으로 가는 길 오른쪽에는 큰 사각 연못인 애련지가 있다. 연경당으로 가는 길 왼쪽에 오래된 나무등걸에 이끼가 끼어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아무도 없다. 호젓한 시간을 혼자 누린다. 시간이 우리에게 말하는 방식이 이끼 아닌가?

 

 

연경당은 순조 말에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와 어머니 순원왕후의 존호를 올리는 의식을 치르면서 잔치를 하기 위해 후원 내 진장각(珍藏閣) 옛터에 세운 연회장이란다.

 

조금 더 가니 멋진 경치가 여기 있다는 정자 관람정(觀纜亭)이 있다. 현판 글씨의 뜻이 그것이란다.

 

 

길쭉한 모양의 연못이 있다. 관람지(觀纜池)다. 여기서 '관람'은 보고 즐긴다는 관람이 아니라 '뱃놀이(纜)을 바라본다(觀)'는 뜻이다. 원래 '람(纜)'은 닻줄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뱃놀이란 의미로 썼다고 한다. 이 연못은 한반도 모양이라 반도지(半島池)로도 부른다는데 우리가 반도라는 말을 예전에 썼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조금 이상하다.

 

실제로 창덕궁의 옛 모습을 그린 <동궐도>를 보면, 사각형 연못 2개와 원형 연못 1개가 나누어져 있었고, 순종 때 제작한 〈동궐도형〉을 보면 저 연못을 합쳐 호리병 모양으로 만들고 그 위에 다리를 놓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기에 일부터 연못을 한반도 모양으로 바꾸어놓고 이름도 그런 반도지라는 것을 붙여놓은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러니 이 후원 안에 반도 모양의 연못이 있다고 선전할 일은 아닌 것 같다. ​

 

 

후원 가장 깊숙한 곳, 옥류가 흐르는 곳이다. 맑고 깨끗한 샘물이 흘러나온다. 그 뒤에 초가로 된 청의정(淸漪亭) 앞 논에 지난 5월에 심은 벼가 어느새 다 자라서 노란 알갱이를 머금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태풍이니 장마니, 코로나니 하는 자연의 다툼 속에 어느새 이들은 자신의 할 도리를 다했다는 듯 다소곳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말할 것도 없이 이 궁에 사는 임금들이 계절에 따라 밖의 농사가 어떻게 되는지 미리 알아보는 곳이 아니던가? 도시에 살면서 잘 보지 못하던 벼농사 상황을 여기에서 나도 잠시나마 엿본다. 아마도 올해도 쌀농사는 풍년일 것 같다.

 

 

 


약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후원관람... 예약하고 안내해주시는 해설사님 설명을 들으며 관람하니 공부가 잘된다. 창덕궁과 후원은 다들 자주 처음 오시는 분들이 많아서 대표적인 것만을 듣고 보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나중엔 조금 피곤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고 두세 번 듣고, 요즈음 발달한 인터넷을 통해 사전이나 사후에 관련 지식 공부를 하면 더 재미있구나. 이제 고궁의 문화재 관람도 아는 만큼 더 재미있게 보이는 시대라 하겠다. 영어에도 있듯이 "THE MORE, THE BETTER!" 고궁은 더 자주 올수록 공부가 되어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