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외국어로 쓰는 아파트 이름, 우리말 짓밟는 정부

한글날, 한글만이 아니라 우리말을 사랑해야
[쓴소리 단소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발행인]  제576돌 한글날을 맞아 언론에는 “시어머니도 못 찾는 이상한 '아파트 작명법'”, ““00000 트리플에듀 삽니다”…너무 긴 신축 아파트 이름”, “기억하기도 어려운 아파트 영어이름” 같은 기사들이 보인다. 실제 어느 곳이나 새로 지은 아파트 이름들을 보면 참으로 이상하고 그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이름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아파트 이름에는 영어뿐만이 아니라 프랑스어ㆍ이태리어ㆍ라틴어ㆍ스페인어까지 등장하거나 영어 몇 개를 합성하여 이상한 이름을 짓기도 한다. 예를 들면 포스코건설이 요즘 내놓은 이름 '오티에르(HAUTERRE')는 프랑스어 '오티'(HAUTE)'와 '테르(TERRE)'가 붙은 합성어로 “고귀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 뜻이라는데 설명을 듣지 않으면 도저히 짐작하기가 어렵다.

 

그뿐이 아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는 '래미안 원페를라'라는 이름이 보인다. 하나를 뜻하는 영어 '원'(One)과 스페인어로 진주를 뜻하는 '페를라'(Perla)를 합쳐진 이름으로 하나밖에 없는 보석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서울 서초구의 재건축 단지에는 '래미안 원펜타스'라는 이름도 등장했다. 역시 하나를 의미하는 영어 '원'과 숫자 5를 뜻하는 라틴어 '펜타스'(Pentas)의 합성어라고 한다. 곧 1과 5를 더해 숫자 15라는 뜻과 펜타스라는 꽃이름을 따왔고 펜타스는 ‘삶의 기쁨’이라는 꽃말을 가진 꽃이름이라는데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이름을 지었는지 납득할 수가 없다. 특히 이런 이름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발음하기도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도 ‘퍼스트’, 저기도 ‘퍼스트’ 차별화된 이름이 아냐

 

또 아파트 이름에 보면 “DMC 롯데캐슬 더퍼스트”, “래미안 장위 퍼스트하이”, “평촌 어바인퍼스트”, “송도 더샵 퍼스트파크”, “구월 퍼스트시티”, “세종 중흥 S클래스 에듀퍼스트”처럼 ‘퍼스트’가 붙은 것들이 있다. 영어 퍼스트를 한글로 써놓았는데 ‘퍼스트’는 그 지역에서 처음 짓는다는 뜻으로 쓰인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이름을 죽 같이 써놓고 보니까 차별성이 있거나 돋보인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거기에 더하여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동탄시범다은마을월드메르디앙반도유보라’라는 아파트 이름은 악! 소리가 날 만큼 길다. 물론 월드건설산업과 반도건설이 함께 지어 그 상표를 붙여놓은 것이겠지만, 무려 19자나 될 정도로 긴 이름은 누구나 한 번에 완전하게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건설사들은 입주민들이 그런 이름을 원한다고 주장한다. 입주민들이야 아파트 이름이 어려운 외국어 이름으로 됐을 때 세련돼 보이고 아파트값이 올라갈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런 생각은 그저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시어머니가 찾아오지 못하게 일부러 어려운 이름을?

 

그런 어려운 이름에 우리는 오래전부터 고부갈등에 빗대어 “시어머니가 찾아올 수 없게 어려운 이름을 짓는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우리문화신문 2016년 5월 22일에 “‘藝家’, ‘BOHAE EVE’보다 ‘꿈에그린’이란 이름으로 기사를 올린 적이 있었다. 아파트 이름 가운데는 ‘꿈에그린’, ‘하늘채’, 어울림‘, ’사랑으로‘ 같은 예쁜 우리말로 된 것들도 있는데, 그렇게 쓰자는 얘기였다. 우리 신문뿐 아니라 많은 언론이 아파트 이름에 관해 다루는 기사를 종종 올리곤 했다. 하지만 그런 외침은 그때뿐 오히려 점점 더 어려운 외국어 이름이 대세가 되는 추세다.

 

 

 

 

그런데 이런 추세에 어쩌면 정부가 나서서 부추기고 있는 것 아닌지 모른다. 한글문화연대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8월까지 중앙정부기관에서 낸 보도자료 1만 1,918건 가운데 거의 반에 가까운 5, 501건에서 외국어 표현ㆍ표기 남용이 확인됐다. 우리나라 법 가운데는 2005년에 제정된 <국어기본법>이란 것이 있다. 이 법 제14조 제1호에 보면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도 <국어기본법>에 벌칙 규정이 없음을 틈타 정부기관이 외국어 표현ㆍ표기 남용에 앞장서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지경이다.

 

우리의 한글은 세종의 백성사랑이 빚은 위대한 글자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세종은 한문에 능통한 사람이었지만 글자를 모르는 백성을 안타깝게 여겨 자기 기득권을 내려놓고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이다. 그런데도 잘난 체를 하려고 외국어를 남발하는 것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무조건 외국어 ’first‘를 한글로 바꿔 ’퍼스트‘로 써서 끝날 일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우리말을 사랑하는 대한민국 사람이길 576돌 한글날을 맞아 비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