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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집단 실종’, 환경 재앙 불러올 것

[오대천 따라 걷기 4-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봉평에 살면서 나는 노년에 귀촌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사업을 하여 많은 돈을 번 사람도 여럿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 돈 버는 일에서 완전히 손을 뗀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 “이제는 사업을 접고서 노년을 즐겨야지”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사업에서 손을 뗀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아직도 “어디에 싼 땅이 나왔다”라는 정보를 들으면 반드시 가서 보고 온다. “돈을 더 벌어 자식에게 더 많이 물려주면 그것도 좋지 않겠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술 마실 때 하는 건배사에 ‘쓰죽’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어가 아니고 ‘쓰고 죽자’의 준말이다. 내가 술자리에서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답니다. 자 건배사를 하겠습니다. 쓰~죽~”이라고 하면 모두 쓰~죽~이라고 외친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기회만 생기면 돈을 더 벌려고 애쓴다. 어떤 사람은 틀림없이 돈이 되는 사업이 자꾸만 눈에 보인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 하루는 정확히 24시간이고, 한해는 365일이다. 돈을 버는 데 사용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돈을 쓰는 시간은 적어질 것이다. 아주 간단한 뺄셈인데도 욕심에 눈이 어두워 깨닫지를 못한다.

 

박 사장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들의 로망이었다. 우선 박 사장 집이 주부들의 로망이라고 정선댁이 말한다. 거실에서 바라보면 대형 유리창 너머로 화단이 보이고 소나무가 자라는 산자락이 보인다. 특히 여자들의 꿈인 황토 찜질방이 별채로 만들어져 있다. 집 뒤편에는 남자들의 로망인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가 있었다. 박 사장은 혼자서 오토바이를 타고 제주도까지 가서 섬을 일주했다고 한다. 다음 주에는 화천군에 있는 파로호를 다녀올 계획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부러운 사람의 기준이 바뀌었다. 재산 많은 부동산 부자가 부러운 것이 아니고 집은 한 채뿐이지만 현금을 잘 쓰는 사람이 부럽다. 화려하고 복잡한 대도시에서 사는 사람보다 시골에서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는 사람이 부럽다. 백화점에 자주 가는 사람보다 자연 바라보기를 자주 하는 사람이 부럽다. 우리는 시골생활에 관한 경험담을 들으면서 1시간이나 박 사장 집에서 머물다가 3시 15분에 출발하였다.

 

 

박 사장 집 앞의 오대천 구간은 매년 겨울에 송어축제가 열리는 바로 그 장소다. 코로나 때문에 2년 연속 송어축제가 열리지 않았는데, 아마도 내년 1월에는 송어축제가 열릴 것이다. 그때 박 사장 집을 방문하면 거실에 앉아서 송어 축제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박 사장은 경북의 김천고를 나왔는데, 이날 답사에 빠진 석영이 김천고 출신이다. 따져 보니 석영이 1년 선배가 될 것이라고 한다. 나중에 석영과 함께 박 사장 집을 방문해야겠다.

 

박 사장 집에서 나와 조금 내려가니 왼쪽에 하얀 페인트를 칠한 커다란 이층 건물이 나온다. 여기가 엘림 커피숍이다. 엘림 입구에는 ‘바리스타 아카데미’라는 간판이 있다.

 

 

엘림은 커피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이다. 평창군에 사는 사람 중에서 유난히도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집에 와서 교육받는다. 이 집은 커피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봉평에 사는 사람들도 가끔 이 집에 와서 커피를 마신다. 나도 두어 번 와 본 적이 있다. 빵도 맛있는데, 값은 조금 비싼 편이다.

 

엘림을 지나면서 우리는 진부 시가지를 벗어나고 있다. 조금 내려가자 왼쪽에 큰 회사 건물이 나온다. 간판에는 ‘우수한약재 유통센터’라고 쓰여 있다. 평창에서 37년이나 사는 은곡에게 물어보니 한약재 파는 곳이다. 진부면은 해발고도가 높아서 좋은 한약재가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조금 더 내려가자 송정교가 나오고 다리 옆에 ‘쌀면리’라고 쓴 돌비석이 서 있다. 송정리의 옛날 이름이 쌀면리이다. 쌀면리에 관해서는 조금 앞에서 설명하였다.

 

 

둑길 따라서 계속 내려갔다. 하천물이 소곤소곤 소리 내며 흐르는 곳은 여울이다. 여울은 경사진 곳에 발달하여 있다. 경사진 면을 흐르는 물은 물소리를 낸다. 하천이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흐르는 곳은 수심이 깊어 소(沼)를 만든다. 하천을 따라 내려가면 하천 바닥의 경사도에 따라 소와 여울이 반복하여 나타난다. 하천 폭이 넓어지며 물이 꽉 차 있는 곳은 저수지라고 말할 수 있다. 저수지의 맨 아래쪽에는 보가 있다. 그러니까 보의 상류에 저수지가 만들어진다.

 

둑길의 왼편 쪽에는 먼 산이 보이고 오른쪽 아래로는 오대천이 흐른다. 오대천은 사림 손을 타지 않은 곳이 많이 남아 있어서 대체로 자연 하천을 이루면서 흐른다. 조금 내려가다 보니 왼편에 아스콘 회사가 나온다. 이 회사의 담이 특이하다. 담의 외벽에 커다란 벽화를 그려 놓았다. 산과 나무를 그려놓은 벽화가 있으니 밋밋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난다. 좋은 시도다. 공장에 담이 있는 회사 사장님은 따라 해볼 만 하다고 생각된다.

 

 

2주 전에 오대천을 걸을 때는 아까시꽃이 만발했는데, 이제 아까시꽃은 다 지고 밤꽃이 피었다. 걸어오면서 보니 여기저기 밤나무에 밤꽃이 피었고 비릿한 밤꽃 향내가 진하게 풍겨온다. 밤꽃 냄새는 정액 냄새와 비슷하다. 과부들은 조심해야 할 때다.

 

 

왼쪽에 꿀벌 농가가 나타났다. 담은 없고, 마당 한쪽으로 벌통들이 놓여 있었다. 호기심 많은 가양이 들어가 주인에게 물었다. 올해 꿀 작황이 어떠냐고. 농부는 농약 때문에 꿀 수확이 예년 같지 않다고 말했다. 아까시꽃은 다 지고 지금부터는 벌들이 밤꿀을 모은다고 한다.

 

2022년 6월 13일 자 한겨레21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겨울 전국에서 꿀벌 약 80억 마리(벌통 41만 7,556개)가 죽었다. 전국 벌통의 15%가 피해를 본 셈이다. 농진청에서는 이상기후와 함께 밀원수(꿀벌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나무) 감소, 꿀벌응애와 말벌 등에 의한 피해 등을 꿀벌 폐사 원인으로 지적하지만, 벌을 키우는 농부는 농약을 제일 원인으로 들고 있다. 농약에 직접 접촉하거나 농약 섞인 물을 마신 벌은 행동이 이상해지며 주둥이를 길게 내빼고 죽는다고 한다.

 

2006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꿀벌 집단 실종 사건’이 확인된 뒤 지구촌 곳곳에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22년 1월에 처음으로 전남 해남에서 꿀벌 떼죽음 사건이 보고되었다. 농촌진흥청은 꿀벌 실종 사태를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단순한 벌꿀 생산량 감소를 뛰어넘는 커다란 ‘환경 재앙’이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염려하고 있다.

 

대학교에서 교양과목으로 환경과학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필자는 꿀벌의 가장 큰 적은 농약임을 잘 알고 있다. 꿀벌의 정상적인 행동을 교란하는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가 전 세계적인 ‘꿀벌 떼죽음’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 살충제는 10억분의 1로 희석해도 꿀벌의 산란과 비행 등을 방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유럽연합은 실외에서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 사용을 전면 금지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 살충제를 규제하지 않고 있다.

 

꿀벌이 사라지면 과일나무의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지 않아 과일 생산이 줄어들게 된다. 2022년 5월 20일 ‘세계 벌의 날’에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펴낸 자료를 보면 벌은 세계 주요 농작물 124개 가운데 87개의 꽃가루받이를 맡고 있다. 꽃가루받이가 안 되면 열매도 씨앗도 생기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꿀벌의 공익적 가치는 5조 9,000억 원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왜 이런 꿀벌 수난 현상이 나타났을까? 꿀벌을 살리면서 농사를 짓는 방법은 없을까? 전국쌀생산자협회의 김정룡 사무총장은 “소농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살충제 대신 돼지감자를 삶아다가 처리하는 등 벌과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은 많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정부가 농사 규모를 키우도록 유도하면서 농약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돼버렸다.”라고 지적했다. 환경주의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표현이 생각난다.

 

오대천의 왼쪽 둑길을 따라서 계속해서 걸어갔다. 삼거리가 나타나고 오른쪽으로 신기교가 나타난다. 신기교 동쪽에 있는 마을이 신기리이다. 신기리는 진부면의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거문리 동쪽에 새로 일군 땅이라는 뜻으로 ‘새터’라고 불렀다.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신기리(新基里)라고 한자 이름으로 바꾸었다.

 

 

신기교를 건너 오대천을 횡단했다. 신기교 중간에서 오대천 사진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