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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나라와 사람의 관계는 부모ㆍ자식 관계

《반쪽의 고향》, 이상금, 샘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07]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제가 어제 제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오랫동안 묵혀두고 있다가, 잠실나루역 앞 ‘서울책보고’에서 드디어 살 수 있었던 책 《잠수복과 나비》에 대해서 말씀드렸었지요? 그때 같이 산 책에 《반쪽의 고향》도 있습니다. 이 책 역시 오랫동안 목록 속에 잠자고 있다가 ‘서울책보고’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 책은 1996년 7월 30일 나왔으니, 26년 만에 돌고 돌아 저에게까지 왔네요.

 

이 책의 저자 이상금은 일본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내다가 15살에 해방을 맞으면서 고국으로 오신 분입니다. 저자는 이대 유아교육과 교수로 오랜 세월 재직하다가 1993년에 일본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반쪽의 고향》이란 제목으로 내셨습니다. 제목이 왜 《반쪽의 고향》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 책은 일본어로 일본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서문을 보니 저자는 일본 청소년의 21%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면서, 저자 가족의 생활사를 통해서 일본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구체적인 역사를 그들에게 읽히고 싶었답니다. 이야기 자체가 일본에서의 성장사(成長史)이고, 저자 또한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일본통이기에 이런 생각을 하실 수 있었겠네요.

 

그리하여 저자의 이런 의도가 일본에서 통하여 이 책은 일본에서 4개의 문학상을 휩쓸었고, 또 책에 나오는 글 가운데 ‘치마저고리’와 ‘고아가 된 어머니’라는 글이 일본 중학교 검인정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 책은 먼저 일본에서 일본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저자가 정년퇴임하고 난 1996년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우리나라에도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이 책을 제가 읽어야 할 책 목록 속에 넣어두게 되었을까요? 저자는 바로 제 고교 동기 김상훈의 어머니이십니다. 저도 상훈이 어머님이 이런 분이신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교 동기 서덕영이 어떻게 이 책을 읽게 되고 감명받아 그 독후감을 고교 밴드에 올렸지요. 저는 덕영이의 독후감을 읽은 뒤, 나도 즉시 이 책을 사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래된 책이라 구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제 살 책 목록 속에서 잠자고 있다가 마침내 ‘서울책보고’에서 이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책을 보면 저자의 어머님은 참 훌륭하신 분입니다. 어머님은 고아가 되어 먼 친척이나, 아는 사람의 집을 전전하다가 13살의 나이 때 누군가의 손에 끌려 일본으로 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을 텐데, 민족의식이 투철하셨습니다. 어머님의 아버님, 그러니까 저자의 할아버지는 3.1만세운동 때 목숨을 잃었기에, 어린 나이에도 민족에 대해 자각을 하신 것입니다.

 

이런 어머님이시기에 소학교 1학년생인 딸(저자) 학교 운동회 때에도 당당하게 한복 치마, 저고리를 입고 운동회에 갔습니다. 그리고 이런 튀는 엄마 모습에 엉엉 울어대는 딸(저자)에게 3.1만세운동 때 죽은 할아버지와 그래서 고아가 된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당시 1학년생인 저자는 당시는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잘 이해가 안 되었지만 커가면서 이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역사의 진상을 알게 되고, 그 고통의 시대를 엄마 나름대로 훌륭하게 살아 낸 것을 알게 된 지금, 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면서 새삼스럽게 엄마에게 큰 사랑과 존경을 보내고 싶다.”

 

책에서 이에 관해 쓴 글이 ‘치마 저고리’와 ‘고아가 된 엄마’고, 바로 이 글들이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글은 조선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 하는 것이고, 딸에게 독립의식을 깨우치려는 글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인들 처지에서는 달갑지 않은 글일 수도 있는데, 이를 자기네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었네요. 역사 왜곡을 일삼는 극우적 일본인들 속에서도 그래도 깨어있는 일본인들이 살아있군요.

 

《반쪽의 고향》에도 그런 깨어있는 일본인이 나옵니다. 저자가 2학년 때 전학 갔던 우지나 소학교의 오카히로 선생입니다. 그전에 입학한 학교에서는 일본식 이름을 쓰게 하여 저자는 가네무라 히로코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들어갔는데, 오카히로 선생은 저자의 원래 이름 ‘이상금’ 그대로 쓰게 합니다. 그리고 저자가 일기에 조센징으로서 따돌림받고 아이들이 해코지하여 슬펐던 일을 썼을 때도, 오카히로 선생은 저자의 일기에 이렇게 써줍니다. “그렇게 못된 일본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선생님이 대신 사과할게. 절대로 비굴해지지 마.”

 

봄이예요.

바람이 도웅그래졌습니다.

봄바람은 장난을 좋아해요.

나의 귀와 뺨을 간지럽혀요.

미께도 간지러운지 귀와 뺨을 쓰다듬어요.

마루에 부는 바람이 부드럽습니다.

내가 하품을 하니까 미께도 따라해요.

졸려요.

봄바람은 나와 미께를 도웅그랗게 싸안아 주었습니다.

 

저자가 쓴 동시입니다. 오카히로 선생은 저자가 일기장에 쓴 이 동시를 보고, 좋은 시라고 저자에게 낭독하게 합니다. 자기네 반에서뿐만 아니라 2학년 다른 반에 가서도 낭독하게 하고, 3학년 반에 가서도 낭독하게 합니다. 식민지 백성의 아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오히려 용기를 북돋우어 주는 오카히로 선생이 다시 보이는군요. 그러나 그런 오카히로 선생도 결국 학교의 압력에 굴복하여 저자는 3학년부터는 다시 가네무라 히로코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자의 어머님은 참 강인한 여성입니다. 공사현장에서 함바집을 운영하고 부업을 하는 등으로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자녀들을 교육합니다. 함바집을 운영하다보니 공사가 끝나면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그러다 보니 저자는 소학교를 여러 군데 옮겨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나 똑똑한 아이였던 저자는 그런 환경에서도 공부를 잘합니다. 책도 참 좋아하구요.

 

그러나 일본의 패색이 짙어질수록 저자도 공부만 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일본은 소학교 어린 여학생들에게도 근로봉사라는 명목으로 노동을 시키거든요. 오히려 근로봉사가 주가 되어 수업다운 수업은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책에는 저자가 외과병원에서 사용하는 봉합사(縫合絲)를 만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여자아이들에게 죽창을 들고 적을 찌르는 훈련을 시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또한 당시 두 개의 지푸라기 인형을 세워놓고 하나는 루즈벨트 대통령, 또 하나는 처칠 수상이라고 하면서 죽창으로 찌르게 했다는군요. 과연 일본 군국주의다운 발상입니다.

 

저자는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통신학교 시험을 봅니다. 당시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의 처녀들을 정신대로 끌고 갔는데, 저자의 어머니는 인력공출이 심해지면 일본에 있는 조선 소녀와 처녀들도 안심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통신학교에 통신기사로 들어가면 정신대 차출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통신학교 시험을 본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조선 사람이라는 이유로 불합격됩니다. 불합격 통지를 받은 날 저자는 오후 내내 벤치에 앉아 울었답니다. 분통이 터져 이를 악물어도 자꾸만 눈물이 솟구쳐 흘렀다는군요.

 

결국 저자는 어느 병원의 견습 간호사로 들어갑니다. 견습이니 봉급은 없고 숙식만 제공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쉬는 날 없이 노동력을 착취당합니다. 당시 일본은 비상전시 상황이라고 일주일을 ‘월월화수목금금’이라고 하여 쉬는 날 없이 계속 일을 강요하였다는군요. 책을 좋아하는 저자는 힘든 일은 어떻게 참을 수 있는데, 책 읽을 시간도, 일기 쓸 시간도 없는 것을 아쉬워합니다. 저자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며 일하여 각기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시체를 닦는 일을 하면서는 꿈에 나타나 잠도 제대로 못 자고요.

 

이렇게 저자는 병원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다가 8. 15. 광복을 맞이합니다. 저자가 집으로 돌아오니, 조선인들은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거나하게 취기가 돌자 아리랑을 부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제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기뻐하는데, 일본에서 태어난 저자에게는 조선은 아직 낯선 땅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은 일본에 남아 공부를 더 하겠다며 조선에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가난하고 미개한 조선에 가고 싶지 않다면서요. 그때 저자의 어머니는 저자가 태어난 이후 저자에게 그렇게 화를 낼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가쁘게 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딸이 이렇게 형편없는 애라고는 꿈에도 몰랐구나. 됐다! 인제 아무것도 필요 없어! 네 마음대로 해!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아! ..... 조선은 지금 네 말 그대로야. 너같이 썩은 정신을 가지고는 요다음에 내가 늙고 가난해지고 더러워지고 힘이 없어지면 저 사람은 우리 엄마가 아니라고 등을 돌릴 인간밖에 못 된다. 일찌감치 정리하는 게 좋아!”

 

그리고 내가 어떻게 엄마를 엄마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냐면서 울면서 말하는 저자에게 계속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같은 소리야. 조선 나라와 조선 사람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 관계하고 똑같은 거다. 사람들이 부자나 미인을 골라서 제 부모로 삼더냐? 아무리 가난해도 아무리 모자라도 자기 나라고 조국이다. 그건 바꿀 수 없다. 조국은 가난하기 때문에 모자라기 때문에 떨쳐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인간은 언제든지 제 부모도 버릴 수 있다. 부모 자식간의 핏줄을 끊을 수 없는 것처럼 나라와 백성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거다. 조선은 오랜 세월 짓밟혔기 때문에 지금 만신창이다. 그게 싫다는 거냐? 그게 싫은 인간은 부모에게도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이치를 말하는 게다. 그런 인간은 인간쓰레기다.”

 

딸을 앞에 두고 매섭게 야단을 치는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 제 눈앞에 그려집니다. 저자는 항상 공부 잘하는 자신을 사랑해주던 어머니가 이때처럼 매서운 모습을 처음 보았을 것입니다. 결국 가족들 모두 귀국선을 탑니다. 이윽고 눈앞에 조국 부산의 모습이 나타났을 때, 배 안에서는 애국가의 합창이 끓어오르고, 만세 소리가 메아리칩니다. 그래서 《반쪽의 고향》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아아, 조국이여! 조국이여!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대한사람의 조국에 길이 영광 있으라!”

 

조국의 산하를 바라보며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애국가를 부르고 목이 터지도록 만세를 외치는 귀환 동포들의 모습을 떠올리자니, 지금 제 귓가에도 그들의 소리가 들려오며 제 가슴도 격동이 됩니다. 상훈이 어머님! 어머님의 솔직한 고백 덕분에 그 시절 일본 속에서의 조선 아이들의 삶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올 2월에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어머님! 그곳에서 그리웠던 어머님의 어머님을 만나시고 두 분은 격하게 껴안으시고 눈물을 쏟으셨겠지요? 이제 그곳에서 영원한 안식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