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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레너드 코헨이 만든 노래 '할렐루야'의 힘

힘든 세상에서 슬픔을 이기는 방법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78]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번 주말이 크리스마스이브, 그리고 그다음 날 일요일이 크리스마스다. 우리말로는 성탄절이라고 하는데 웬일인지 성탄절이라고 하면 너무 딱딱하고 엄숙한 것 같아 신세대들은 크리스마스라는 표현을 더 선호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성탄절 즈음해서 많이 듣는 말이 '할렐루야'일 것이다. 교회에서 말하는 대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짐으로써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의 그 아들이 이 땅에 태어난 날이니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가? 그야말로 구세주이신 신의 영광을 찬양해서 마땅한 날이기에, 할렐루야라는 말로 기쁨을 표현한다. 그렇게 교회 안에서도, 밖에서도, 기도하면서도, 또는 심지어는 거리에서 전도를 강요하는 분들에게서도 이 말은 자주 듣는다.

 

할렐루야(Hallelujah)는 고대 히브리어에서 ‘찬양하다’를 뜻하는 ‘hallel’과 유태교의 신 ‘Yahweh’의 준말인 ‘yah’가 합쳐진 말이라고 하니 글자 그대로 신을 '찬양하다', '찬양하라'의 뜻이 된다. 필자는 기독계인 대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 학교는 한 해에 한 번씩 세종문화회관에서 음악회를 하며 그때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에 나오는 '할렐루야' 합창곡을 꼭 불렀고, 필자는 그때 오케스트라의 콘트라베이스라는 큰 악기를 맡아 여름에 자주 그 곡을 연습하고 가을에 무대에서 연주한 기억이 새롭다. 이 헨델의 할렐루야는 그야말로 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노래인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유튜브를 통한 영상음악을 즐기던 중에 '할렐루야'라는 제목의 팝송을 알게 되었다. 처음 제프 버클리(Jeff Buckley)가 부른 것을 듣다 보니 이 곡을 원래는 유명한 음유시인이라는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이 작사 작곡을 해서 1984년에 처음 불렀고 그것을 10년 뒤인 1994년에 제프 버클리가 부르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음을 알게 되었다.

 

노래 가사는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 있지만 가사 내용이 조금 난해하고 노래 분위기도 조금은 우울한 듯한데도 꽤 인기를 얻어, 요즈음에는 연말 같은 때에 많이 듣게 되는 노래이다. 이 노래는 2001년 만화영화 'Shrek'(슈렉)의 사운드트랙에 삽입되면서 인기를 높였고 이후, 밥 딜런(Bob Dylan)부터 본 조비(Bon Jovi) 버전에 이르기까지 300개 이상의 커버 버전이 쏟아져 나왔으며 영화 및 텔레비전 사운드트랙과 텔레비전 탤런트 경연대회에서도 사용된 것을 보았다.

 

노래 영상을 보면 어떤 때는 혼인하는 신혼부부를 위한 축가로도 불리고 9년 전 보스턴 마라톤 대회 때 발생한 총격사건 피해자들을 추모하면서, 또 그다음 10년 전인 2012년 12월 미국 텍사스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20명 어린이가 희생됐을 때 그들을 추모하며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도대체 이 노래가 말하는 할렐루야는 무슨 뜻인가가 늘 궁금했었다, 가사를 들여다보았다.​

 

Now I've heard there was a secret chord 어떤 비밀의 노래가 있다는 것 들었지

That David played, and it pleased the Lord 다윗왕이 연주해서 신을 기쁘게 했다는...

But you dont really care for music, do you? 그러나 왕 당신은 정말로 음악엔 별 관심도 없지요?

It goes like this, the fourth, the fifth 그 선율은 이렇게 4도 화음, 5도 화음 연결되고

The minor falls, the major lifts 단조로 내려갔다가, 장조로 올라가고

The baffled king composing Hallelujah 곤혹스러운 왕이 그렇게 '할렐루야'를 작곡했지요

Hallelujah, Hallelujah/Hallelujah, Hallelujah 할렐루야​

 

Your faith was strong but you needed proof 당신의 믿음은 강했지만 그걸 증명해야만 했어요

You saw her bathing on the roof 당신은 목욕하는 여인의 모습을 지붕 위에서 보고는

Her beauty and the moonlight overthrew her 달빛에 비친 그녀의 아름다움이 당신을 압도했어요

She tied you to a kitchen chair 그 여인은 당신을 부엌 의자에 묶고

She broke your throne, and she cut your hair 당신의 왕관을 부수고 머리털을 잘랐지요

And from your lips she drew the Hallelujah 그리고는 당신의 입술에서 '할렐루야'를 끌어냈지요

Hallelujah, Hallelujah/Hallelujah, Hallelujah​

 

노래 1절의 두 번째 단락까지의 가사다. 앞부분은 노래나 음악에 관심이 별로 없던 다윗왕이 당혹한 순간에 신을 위해 노래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이해하려면 구약성경 가운데 다윗왕의 이야기를 알아야만 한다. 다윗 왕이 밧세바라는 부하의 부인에게 뿅 가버려 불륜을 맺었는데 불륜을 정당화하려고 밧세바 남편을 죽인 다음에 신의 진노를 받아 어떻게 하든 사죄해야 해서 시편을 쓰고 회개했다는 내용이다. 그것이 할레루야라는 노래의 시작임을 알리는 것이다.

 

1절의 두 번째 단락이 나를 헷갈리게 했다. 앞의 이야기는 다윗이 밧세바에게 매혹당한 순간을 묘사한 것이지만, 그다음 부엌 의자에 묶이고 머리를 잘린 것은 다윗왕이 아니라 딜라일라와 삼손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같이 들어가 있는데 노랫말을 쓴 코헨은 그 두 이야기를 섞어서 바람 피다가 혼이 난 이야기로 설정한 것 같다. 그렇게 힘든 상황이 되니 그들의 입에서 '할렐루야!'라는 신을 뜻을 받아 참회하며 신을 찬양한다는 이 '할렐루야'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정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작사자인 코헨이 하고 싶은 말은 세 번째 단락에서 나온다.​

 

Well, maybe there's a God above 어쩌면 저 위에 신이 있을지도 몰라요

As for me all I've ever learned from love 내가 사랑을 통해서 배운 모든 건

Is how to shoot somebody who outdrew you 당신을 유혹하려는 누군가를 쏘는 방법뿐

But it's not a cry that you're hear tonight 그건 당신이 밤에 들을 수 있는 비명소리가 아니에요

It's not some pilgrim who claims to have seen the Light 빛을 봤다고 주장하는 순례자도 아니고요

No, it's a cold and it's a very broken Hallelujah 아니 그건 차갑고 일그러진 할렐루야일 뿐이야

Hallelujah, Hallelujah/Hallelujah, Hallelujah 할렐루야!​

 

분명히 하늘에는 신이 있지만, 신의 사랑을 듣고 알고 있지만, 우리가 아는 신의 사랑은 달콤한 유혹이나 현란한 빛의 향연이 아니라 차갑고(Cold), 일그러진. 혹은 깨어진(Broken) 할렐루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보면 레나드 코헨이 신을 찬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이 만든 이 세상이 모순덩어리이고 때로는 고통과 비통의 세상이지만 그래도 할렐루야를 외쳐야 하는 운명이라는 말을 해주고 있다.

 

이 부분을 잘 읽어보면 왜 이 노래가 사람들이 아주 슬플 때 부르는지를 알 수 있다. 바로 그런 뜻을 전달하기 위해 코헨은 80편이 넘는 초고를 쓰려고 머리를 쥐어박고 고치고 하는 끝나지 않는 가사 작업에 5년 동안 매달렸고 그것으로 가장 난해한 노래를 만든 것이리라.

 

가사는 몇 절로 이어진다. 음악적으로는 12/8박자로 초기 로큰롤과 가스펠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 노래가 이제 이 험한 21세기라는 세상을 잘 묘사하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너무 좌절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할렐루야를 부르며, 신의 뜻을 기리며 이 세상을 살아가자는 강한 메시지로 해석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노래를 때로는 애절한 슬픔을 안고, 때로는 강인한 신념으로, 때로는 신의 뜻을 확인하며, 그렇게 많이 감동하며 부르는 것 같다. ​​

 

 

할렐루야란 노래가 이렇게 21세기에 다시 살아나자 노래를 만든 코헨도 좋았던 모양이다. 그는 나중에​

 

"이 세상은 갈등과 화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화해하고 이 세상의 모든 혼란을 감싸 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내가 '할렐루야'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라고 나중에 언론에 밝히기도 했단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이 노래가 좋아서 수십 번 들으면서 이 노래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 카톡으로 '아침 음악편지'를 아주 열심히, 멋지게 써 주시는 전 언론인 배석규씨의 편지를 읽고 그 의미를 이렇게나마 더 확실하게 파악함으로써 나의 오랜 궁금증이 풀렸음을 고백한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난입한 총기범에 의해 무참히 피살된 뒤 그들을 떠나보내는 미국의 부모들이 노래로 그들의 눈물을 닦을 수 있게 해준 것이 '할렐루야!'라는 이 말이었다. 우리의 이태원에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눈물은 무엇으로 닦아줄 수 있을까? 이 세상에 분명 신이 있다고 믿고 싶지만, 갑자기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신에게 원망하고 싶고, 이 억울함을 세상 어디에라도 쏟고 싶지만, 신은 이 세상을 만들고 이끌어가는 대신에, 이 세상이 갈등과 고통과 슬픔이 많은 세상임을 우리가 알게 하고, 그것을 스스로 극복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은 아닐까?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우리나라에 오신 것도 그렇게 힘든 세상에서 슬픔을 이기는 방법, 그것을 어떻게 진정한 사랑으로 이어가는가를 가르치러 오신 것은 아닐까. 오늘 밤 이 노래를 다시 들으며 슬픔과 고통을 받는 분들에게도 이 노래를 전해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