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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정의 진경산수 –그윽하되 깊고 고요한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9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그림에 대한 평이 적힌 이 작품은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이 그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畫)입니다. 그림에 대한 평(評)을 쓴 사람은 조선 후기 사대부 화가 강세황(姜世晃, 1713-1791)입니다. 그림과 글이 거의 같은 비율이어서 그림과 글씨의 아름다움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럽게 써 내려간 강세황의 글씨는 아름다우면서도 격조가 있습니다.

 

오른쪽의 그림을 먼저 살피겠습니다. 그림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가장 멀리 거칠고 험한 느낌의 봉우리들이 보이고, 중간에 먼 산들과 거리가 떨어져 있는 산자락이 보입니다. 산 밑에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습니다. 시선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화면 오른쪽 밑으로 좁고 가느다란 길이 나 있고, 소를 몰고 오는 목동이 아주 조그맣게 그려졌으며, 가을철 추수가 끝난 뒤를 암시하듯 커다란 노적가리가 보입니다. 그림으로 미루어 여기는 아늑한 뒷산을 배경으로 한 추수가 끝난 어느 마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호젓하고 조용한 느낌입니다.

 

진경을 그릴 때 중요한 점

 

그림에서 더 이상의 의미를 읽어 내기는 좀 어렵습니다. 다음으로 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未知寫得何處眞景 어느 곳의 실제 풍경을 그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其似與不似姑不暇論 그 같고 같지 않고는 논할 것이 못 된다.

第煙雲脆靄大有幽深靜寂之趣’ 연기와 구름이 자욱이 피어올라 유심하고 정적인 멋이 있으니

是玄齋得意筆 豹菴 바로 현재(심사정)의 득의필이다. 표암

 

이로 보면 이 그림은 진경산수화이며, 강세황은 “그윽하되 깊고 고요한 맛이 있다.”라고 보았습니다. ‘그림에 독특한 맛이 있으며, 심사정의 작품 가운데서도 잘 그린 작품이다.’라는 것입니다. 강세황은 역시 당시 사대부 화가였던 심사정과 합작 화첩을 제작하는 등 여러모로 그림에 대한 뜻을 함께하는 사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평가는 그림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일 뿐만 아니라, 좋은 그림일 거라는 믿음을 갖게 합니다.

 

강세황은 글에서 ‘진경(眞景)’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진경은 옛 기록에서 여러 의미로 풀 수 있는 단어지만, 여기서는 ‘실재하는 경치’를 가리킵니다. 실재하는 경치라 하여 ‘실경(實景)’이라고도 합니다. 강세황은 화가로서 작품 활동했을 뿐 아니라 당시 지식인으로서 조선 후기 그림의 각 분야에 뚜렷한 의견을 갖고 있어 때때로 이를 글로 남겼습니다. 심사정뿐만 아니라 당시 화가들의 많은 그림에 평론 형식의 글도 썼습니다.

 

그림의 여백에 쓰기도 하고, 심사정의 〈산수도(山水圖)〉처럼 별지에 쓰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학식이 있을 뿐 아니라 예술에도 조예가 깊다면, 모두가 부러워하겠지만, 조선시대에는 양반들이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드러내 밝힐 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강세황도 그의 문장과 그림솜씨를 아낀 영조 임금이 “말세에는 시기하는 마음이 많아 천한 기술 때문에 얕보는 자가 있을까 싶으니 다시는 그림을 그린다고 하지 마라.”라고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조선시대 양반들에게 글씨와 그림은 장려할 만한 일은 아니었지요.

 

그러나 조선시대 지식인들, 곧 문인들에게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활동은 인품을 닦는 수단으로써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강세황은 많은 그림을 평했으며, 때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강세황이 진경 그림을 평가할 때 중요하게 여긴 점은 무엇일까요? 그는 실재하는 곳을 그린 그림을 논할 때 반드시 실제 경치와 비교하는 일을 먼저 했습니다.

 

그래서 인왕산을 사실적으로 그린 강희언(姜熙彦, 1710-1784)의 〈인왕산도(仁王山圖)〉를 평하며 “진경을 그리는 사람들은 매번 지도와 같아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이 그림은 매우 핍진(逼眞)하며 그림의 모든 법을 잃지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가 진경을 그릴 때 사실적인 묘사를 중요시하면서도 그림이 갖춰야 할 정서적인 특징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음을 보여 줍니다.

 

눈앞에 보이는 듯한 풍경, 눈 감으면 떠오르는 풍경

 

이제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먼저 멀리 물기 없이 까칠하고 건조한 필치로 그린 험한 암봉(岩峯)들이 보이고, 중간에는 쌀알처럼 둥근 붓질을 여러 번 겹쳐서 칠해 습윤한 토산(土山-흙메, 흙으로만 이루어진 산)을 배치했으며 연무(煙霧)에 싸여서 비 온 뒤의 풍경 같은 느낌을 줍니다. 가까이에는 노적가리를 배경으로 집 한 채가 보이고, 집으로 가는 길에 아주 조그맣게 소를 몰고 돌아오는 목동을 그렸습니다.

 

근경부터 원경까지 꽉 찬 구도를 취했으며, 물기가 많은 먹과 담채를 사용했습니다. 이 그림은 강세황이 평했듯이 진경산수지만, 어느 곳을 그렸는지 지명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림의 형식과 크기로 미루어 지금은 4점만 전해지는 ‘경구팔경(京口八景)’이라는 제목의 그림들 가운데 일부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경구팔경첩(京口八景帖)>이라고도 불립니다. ‘경구’는 서울 근교를 뜻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팔경’은 특정한 지역에서 빼어나게 아름다운 여덟 군데의 경치를 골라 시와 그림의 제재로 유형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조선 후기에 서울을 노래한 팔경 시 가운데 인왕산, 삼각산, 백악산, 도봉산, 용산, 노량진, 남산, 밤섬을 대상으로 한 예가 있는데, ‘경구팔경’ 가운데서도 밤섬 그림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 〈산수도〉 역시 서울의 명승지를 그린 진경산수화로 짐작해 볼 수 있겠습니다.

 

제작 연대인 1768년은 심사정이 세상을 떠나기 바로 1년 전 이므로 만년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의 필치만 놓고 보면 조심스럽기보다는 쓱쓱 자유분방하게 그렸습니다. 화가로서의 노련함이 엿보입니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화면 안은 꽉 찬 느낌입니다. 다시 강세황의 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앞서 살폈듯이 강세황은 진경산수화는 그린 곳의 사실적인 모습도 재현해야 하지만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도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진경산수화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이가 즐겨 찾는 아름다운 곳을 여행했을 때 느꼈던 즐거움을 돌아와서도 되새기고 싶은 마음에서 그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림을 봄으로써 다시 그 풍경을 다시 눈앞에서 보는 듯한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 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눈을 감고 그 장면을 회상했을 때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을 곱씹고 싶어 할 것입니다. 이 그림은 후자에 해당하는 그림이라고 여겨지며, 강세황은 바로 그 점을 칭찬한 것 같습니다. 곧 그림이지만 시와 같은 문학성을 품고 있는 것이지요.

 

비록 이 그림에 해당하는 경치를 노래한 시는 없지만, 강세황의 평문(評文)처럼 그윽하며 조용한 가을철 전원의 아름다움을 이 그림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만일 이 그림에 강세황의 글이 없었다면, 이 그림은 한낱 잘 그린 그림에 그쳤을지도 모릅니다. 강세황의 글은 심사정의 그림과 조화를 이루어 그림의 의미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강세황의 부드럽고 우아한 필치는 보는 사람들에게 한결같은 즐거움을 줍니다. 말하자면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이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짧게 지나가는 가을의 한 자락을 잡아 종이 위에 펼쳐 낸 원숙한 화가와 당대의 뛰어난 감식안(鑑識眼)이 만난 결과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전인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