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빨간색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빨갈 수가 없다. 보통 빨간색 꽃은 햇빛에 비쳐서 분홍으로 보이기에 십상인데 이 꽃은 빨강이 너무 진해서 오히려 검은색이 섞여 있는 듯하다. 해마다 이맘때쯤 봄소식을 겸해 자주 소개되는 구례 화엄사의 홍매이야기다. 그래 이 매화는 홍매가 아니라 흑매란다. 그래도 사람들은 홍매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게 잘못되었다고 누가 시비를 할 것인가?
보통 우리가 매화의 덕을 찬양하고 가까이하려는 것은, 매서운 겨울 추위를 뚫고 홀로 꽃피는 것으로 해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지조를 지키는 고매한 인격을 대변하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인데, 이때는 맑은 흰색, 우유빛의 매화를 생각한다. 그러다가 제법 봄기운이 우리 몸에도 느낄 때가 지나면 이 지리산의 귀한 여배우는 그 농염한 자태를 자랑하며 우리에게 정말로 봄, 그것도 화려한 잔치로서의 봄이 왔음을 알려주지 않던가?
흔히 우리나라의 4대 매화라고 하면 순천 선암사 선암매, 장성 백양사 고불매, 구례 화엄사 들매, 강릉 오죽헌 율곡매 등 네 군데 매화를 일컫고 그것들이 2007년 문화재청에 의해 천연기념물로 각각 지정되었기 때문인데, 이때 지정된 매화나무는 들에서 오랜 세월을 견딘 것으로 해서 지정된 것이고, 오죽헌의 율곡매 같은 것은 이제 나무의 생존 자체도 힘들 정도로 늙었을 정도여서 속된 말로 카메라빨을 잘 받지는 않는다.
그에 견줘 우리의 봄을 장식하는 화려한 화엄사의 홍매(아니 흑매)는 수령 3백 년을 헤아리지만, 천연기념물이 아닌데도 더 사랑받는 것 같다. 중국의 그림 속에 나오는 진한 입술연지를 바른 양귀비 같은, 진한 눈썹에 서글서글한 눈매의 클레오파트라 같은, 젊을 때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매끈한 미인형의 얼굴... 미인들의 아름다운 부분을 모아놓은 것 같아서 보는 이를 취하게 하는 농염한 이 매화에 우리들의 눈이 다 끌려간다. 그 모습이야말로 정말로 우리들의 춘심(春心)을 다 깨어나게 할 것 같다
화엄사 흑매는 지금 한창 봉우리를 열고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해 이번 주말엔 70%쯤. 다음 주 초엔 활짝 필 것으로 전망되지만 봄 시샘하는 추위가 가끔 오니 개화가 조금 더 늦어질 수도 있겠다. 그렇더라도 화엄사에서는 흑매를 반기는 행사를 연다고 한다. 이번 주말에는 올해 처음으로 작은 음악회와 중ㆍ고등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백일장'을 열고 3월26일까지 홍매 사진을 받아 우수작을 뽑는 선발대회를 한다고 한다. 물론 그 뜻은 더욱 많은 분이 와서 이 꽃의 유혹을 받으라는 것일 거다.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약간 결이 다르지만 뭐 봄에 꽃 보고 즐기는 것이야 뭐가 어떻겠는가? 그렇지만 화엄사에 와서 홍매만 보고 가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받은 들매가 섭섭해할 것이다. 절에 가면 길상암 앞 경사지에 있다는 들매의 위치를 확인하고 손을 흔들어 인사를 드리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생각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순천 선암사 선암매는 3월 20일경 무렵 꽃필 예정이고, 장성 백양사 고불매는 그보다 사나흘 뒤인 3월 25일 무렵 활짝 핀 꽃을 만날 수 있을 전망이다. 모두 다음 주엔 만개할 것으로 보인다. 꼭 거기만이 아니라 전국 매화가 피는 곳에서는 크고 작은 기념행사를 마련한다.
양산 통도사의 자장매도 서쪽지방의 매화 못지않게 이름이 나 있어서 벌써 많이들 다녀가고 있고 근처 원동의 매화축제, 그리고 양산시립박물관의 '매화난만(梅花爛漫, 매화가 흐드러지다)' 특별기획전이 지난주에 시작되었다. 우리들의 생활 속에 나타나는 매화 관련 민속, 가구, 그림, 병풍, 장신구 등등이 모여 있다. 전남 광양의 매화축제도 지난 금요일 개막돼 19일인 이번 일요일까지 열린다고 하니 아마도 그 동네는 벌써 인산인해일 것이다.
이처럼 현대의 우리가 온난화 덕택에 꽃도 빨리 피고 또 어디든 구경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리는데 견줘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매화꽃은 구경하기 어려웠기에 추운 겨울 나는 것이 큰 문제였었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런 가운데 선인들이 손으로 매화꽃을 만들어 즐겼다는 이야기가 있어 새삼스러운 느낌이다. 그 주인공은 정조 때 박식함으로 유명한 이덕무( 1741∼1793).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늘 책만 보느라 '책만 보는 바보'라는 별명을 스스로 만들어 낸 이덕무는 다른 사람이 잘 모르던 취미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밀랍으로 매화를 피워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화로에 그릇을 놓고 밀랍을 끓여 그것이 식을 때쯤 손으로 주물럭거리며 펴서 얇은 매화꽃 잎을 만들어내는데 그 솜씨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매화의 푸른색 꽃받침은 종이로 만들어 푸른 가지에 붙였다. 그 꽃받침은 ‘작은 아기 치마’처럼 보였다. 매화꽃은 콩꼬투리 반쪽 뒤집힌 모양으로 잎 다섯 개를 만들어 붙였다. 친구인 박제가(1750- 1805)가 그것을 보고는 그의 재주와 상상력에 감탄하며 시로 남겼다.
이덕무는 이 밀렵매화를 윤회매라고 불렀다. 꿀벌들이 꽃과 꽃을 옮겨 다니며 당분을 모아 꿀을 만들고, 또 그 꿀로 밀랍을 생산해 여왕벌과 애벌레의 집을 짓고, 꿀과 화분을 보관하는 육각뿔 구조가 연결된 자연계 으뜸 건축구조물을 만들었다. 이덕무가 밀랍을 다시 녹여, 꽃잎을 하나씩 만들어 붙여 매화꽃을 피웠으니, 이것이 ‘꽃의 꿀에서 밀랍으로, 다시 꽃으로 세 번이나 몸을 바꿨으니 윤회매라 부르고 싶다는 뜻이리라.
내가 밀랍으로 매화를 만들었는데 털로 만든 꽃수염과 종이로 만든 꽃받침이 잘 어울려 어여쁜지라 김진사(金進士)가 좋은 술 한 병으로 한 판[一板]을 사고, 또 정이옥(鄭耳玉)이 더불어 시를 지었다. 윤회매(輪回梅)는 내가 이름 지은 것으로, 꽃가루를 빚어서 밀[蠟]을 만들고 밀로 꽃을 만들었으니 서로 순환한 것이다. 이덕무, 《청장관전서》
다른 벗들도 이덕무가 불교의 윤회설을 예술적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신기에 가까운 재주에 놀라며 말문이 막혀 시를 지었다. 연암 박지원은 절지매(折枝梅) 11송이를 만들어 서상수(徐常修, 1735~1793)에게 20전이나 받고 팔아 살림에 보탠 적이 있었다. 이덕무가 만든 윤회매처럼 박지원의 것도 밀랍으로 꽃잎을 만들고, 노루털로 꽃술을 만들었다.
그러한 윤회매의 전통을 알게 된 현대인들 가운데는 당시 재료는 아니지만, 현대의 재료를 써서 꽃잎을 만들고 꽃대를 다듬어 매화꽃을 재현해서 화분이나 병에 올려 감상하는 동호인들이 생겨나고 있다. 2006년 실학축전에 오문계씨가 윤회매를 만드는 시범을 보인 적이 있고 공주나 광주 등에 이런 윤회매를 만들어 감상하는 연구소나 카페가 운영되고 있어 이 시대의 새로운 정취를 즐기는 문화로 기억될 만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어느 지방 도시에 갔더니 한 골목길 옆에 하얀 꽃들이 활짝 핀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기에 아니 벌써 꽃이 피었나 하고 가까이 가보았다. 그랬더니 그것이 인조 벚나무와 플라스틱 꽃이다. 이게 개인들의 공간에서 소규모로 인조매화건 벚꽃이건 즐기는 것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아니 길거리를 인조나무와 꽃으로 해 놓고 한 해 내내 그 플라스틱 꽃을 사람들에게 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아니지 않은가?
봄이 지나도 벚꽃이 떨어지지 않고 길에 있으면 얼마나 지겨울까? 이러다가는 우리가 봄에 매화건 벚꽃이건 기다릴 이유가 없다. 우리네 삶은 그저 흔한 싸구려 플라스틱 문화에 치어서 꿈도 희망도 기대도 없이 황폐해질 것만 같다. 남녘의 매화 소식을 보며 좋아하다가, 다른 한쪽에서 본 이런 인조 나무들의 이미지가 중첩돼 기분이 우울하고 씁쓸해지고 말았다. 나 원 참.
전통을 제대로 알고 지키는 것이 쉽지는 않구나.
우리가 그저 편하고 값싼 것만을 추구하던 데서 은연중에 생겨난 관념이라면 이제는 전통 복원, 혹은 아름다운 환경 조성도 싸구려로 망치는 것으로 가는 것은 지양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