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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무심코 지나쳐온, 길가의 커다란 기호

유현오 사진전 <개와 늑대의 시간>, 3월 21일부터 류가헌에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꽃이 그려져 있으나 장식이라기보다는 위장이나 은폐에 가까운 벽화 구조물, 장식조차도 없이 무표정하게 서 있는 커다란 시멘트 덩어리들. 육교처럼 편도 2차선 도로를 공중에서 가로지르지만 아무도 오르내릴 수 없는 건축물.

 

경기 북부지역과 강원도 일대를 차를 타고 지나다 보면, 길가에 서 있는 거대한 시멘트 구조물들을 만나게 된다. 유사시 폭파해 도로에 떨어트림으로써 전차의 진행을 막기 위한 대전차장애물들이다. 전쟁 발발 상황에서나 쓰임이 필요한 구조물로 자연경관을 이리저리 절단하거나 막아서고 있지만, 대부분 익숙한 풍경으로 무심이 지나치고 만다.

 

 

 

사진작가 유현오는 눈길을 받을 만큼 아름답지도 않고 심지어 광고판이나 장식물 등으로 가려진 채 서 있는 이 대전차장애물들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회학, 미디어, 사진을 차례로 공부하고 통신, 인터넷 분야 기업에서 전문경영인을 지낸 이력이, 사진으로 사회학적 질문을 던진 이유를 짐작게 한다.

 

“대전차장애물이 하나의 기호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중성과 모호성을 지닌, 길가의 커다란 기호인 거죠. ”

 

구식 대전차장애물들은 이미 오래전에 실전에서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도 양극으로 첨예하게 분열된 시각차 때문에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도시 미관을 해치고 차량 소통을 방해하며 부동산 가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므로 철거해야 한다는 시각과 북한과 대치 중인 작금의 상황에서는 안보의 상징으로 보전해야 한다는 시각이 또 다른 한 축으로 팽팽한 것이다.

 

 

 

 

대전차장애물들을 찍은 유현오의 사진 시리즈 <개와 늑대의 시간>은 평소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이 우리 삶의 현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지니고 있던 작가가 그 관심을 사진과 연결한 작업이다. 파주, 연천, 철원, 고성 등 북한과의 경계 가까운 지역에 벽, 철조망, 용치와 같은 여러 형태로 흩어져 있는 구식 대전차장애물을 원경에서 근경까지 대형필름카메라로 촬영해, 전시와 사진집으로 꾸렸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프랑스어의 한 표현에서 따온 제목으로, 개와 늑대를 구분할 수 없는 낮도 밤도 아닌 모호한 시간의 경계,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사물의 윤곽이 희미해지는 시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전차장애물에 대한 인식, 더 나아가 1953년 휴전협정 이래 70년 동안 전쟁도 평화도 아닌 휴전이 지속되는 상황의 이중성과 모호성을 ‘개와 늑대의 시간’에 견준 것이다.

 

전시는 3월 21일부터 사진위주류가헌 전시2관에서 열린다.

문의 : 02-720-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