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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외로운 오리들

어쩌면 변화하는 사회에 우리가 적응해야 할 때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99]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아침마다 산책하는 집 뒤의 북한산 둘레길에는 좁은 골짜기에 큰비가 올 때 물 흐름을 줄여주는 작은 연못이 조성돼 있는데 아침마다 여기를 지나면서 우리 부부는 늘 연못을 꼭 보며 지나간다. 4월이 지나고 5월이 되어 근처의 풀과 나무들은 다 푸르른 생명의 옷을 입고 되살아났는데 한가지 안되는 것이 이곳에 자주 올라와 놀던 오리들이다. 전에는 암놈, 수놈 두 마리가 늘 정겹게 있다가 여름이 지나면 새끼들이 태어나서 같이 자라곤 했는데 이상하게 올해는 한참을 오리들이 안 오다가, 겨우 수컷만 한 마리만 오더니, 곧 두 마리가 오기는 하는데 두 마리 다 수컷이다.

 

 

 

이제 무슨 일일까? 온갖 추측을 다 해본다. 두 마리 다 암컷과 이혼했나? 홀아비가 되었나?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 동성애(?)를 하는가? 전에 새싹이 나기 전에 연못 비탈진 곳에서 알을 까서 새끼들과 함께 내려와 노는 오리 가족이 다시 생각이 나지만 올해는 정말 독신(솔로) 혹은 더블 솔로인 오리만 보인다. 오리들에게도 우리 한국사회에 몰아닥친 가정의 위기가 닥친 것인가? 새끼도 없고 암컷도 없이 수컷 둘만이 있는 연못은, 주위의 식물들이 신록으로 생명의 기쁨을 누린 데 견줘 적막하고 쓸쓸한 느낌이다.

 

 

오리들은 가족의 위기를 겪고 있지 않겠지만 우리 주위는 사실 위기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1.0도 안 된다고 하는 현실에서 주위에 보면 자녀들이 혼인을 안 하려 하고, 해도 아이를 안 낳겠다고 해서 한숨을 쉬는 나이 든 부모들이 많은데, 이제는 한숨도 안 쉬는 상황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이제 결혼이나 출산문제에 대해서는 차라리 내버려 두자는 마음, 혼자 사는 자녀들을 보면 "어휴 뭐 네가 알아서 살아라."라며 포기하는 분위기로 가는 것 같으니 말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나는 현상을 연구한 책이 지난해 말 번역돼 나왔다. 이 책에서는 2040년이면 일본 인구의 47%가 독신자로 채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혼인하더라도 만혼이거나 이혼이 늘어 필연적으로 독신 인구가 늘어날 것이며 젊은 세대 가운데서도 독신이 늘면서 일본은 2040년 15살 이상 인구 약 1억 명 가운데 독신이 4,600만 명, 기혼자가 5,200만 명으로 예상되기에, ‘고령 국가’가 아니라 ‘독신 국가’가 된다는 얘기다.

 

 

지난 4월 말 세미나에서는 정부의 저출산대책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는 발표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사회구조적, 복지시스템 문제로 접근하면서 지속적으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는데, 한국인들의 가치관, 결혼관, 자녀관, 가족관의 변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 저출산 문제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지난 7년 동안 국회에서 저출산 고령화문제를 다루는 토론만도 70번 가까이 이어졌지만, 대부분 성 갈등 곧 남녀 대립 틀을 만들고 말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국가와 사회가 물질적 부담과 혜택을 늘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신, 이념, 종교, 문화를 통해 혼인, 출산, 육아의 행복감을 높이도록 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뒤늦게 나오기도 했다.

 

또 혼인을 포기하고 혼자 독신으로 살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방송과 언론이 아닌가 하는 점도 제기되었다. 한 연구자는 “방송과 언론에서 출연자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며 혼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드라마 등에서는 부부 사이 갈등, 육아 시의 갈등 등을 부각하여 혼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퍼뜨리고, 소비 경향 또한 크게 변화한 것이 저출산의 원인으로 지목된다”라고 말했는데, 이게 무척 공감이 가는 분석이라고 생각되었다.

 

 

저출산, 독신 가정, 독신화... 이런 현상으로 해서 지금까지 가족 중심으로 돌아가던 경제는 빠르게 독신을 위한 경제로 탈바꿈하고 있다. 앞으로 인구의 40~50%를 독신이 차지하게 되면 독신자(사이비 솔로와 진짜 솔로)들이 소비활동을 하는 ‘독신 시장’이 존재한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상당히 진척되어 혼자 살아도 그렇게 큰 어려움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더욱 독신화가 진척될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독신 남녀는 결핍갑을 ‘소비’로 채우고 있다. 소비를 통해 정신적인 결핍을 채우고 그것으로 성취감을 얻으려 한다. 자녀가 안 생기고 후손이 줄어드는 것은 이제 이들이 굳이 떠안아야 할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혼인문제 자녀 출산문제에 대한 해답은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수십조 원을 쏟아부은 결과가 보여주듯이 절대 쉽지 않다. 혼인하는 나이대 당사자들의 의식이 가장 큰 문제고 그것을 풀어주어야 길이 보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늘 대책은 뱅뱅 돌 수밖에 없다. 결국은 독신이라는 현상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쪽으로 가게 되지 않겠는가?

 

독신의 고독을 두려워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혼자 있음으로써 치유되는 상처도 있다”라며 고독에 관한 지나치게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겠다. “혼자 있는 사람을 무조건 외롭다고 보아선 안 된다.”라는 것이다. 사실 고독은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굉장히 고독하다’라고 느끼는 것이고 다른 이들과 함께 있더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타인과 대화할 수 없는 수동적 상태에 놓인다면 고독할 수 있기에 혼인도 배제하거나, 혼인하고서도 이혼으로 가는 까닭이라고 일본 책의 저자는 설명한다.

 

 

누군가가 외로우니까 청춘이라고 했는데, 이젠 이렇게 말해야겠다. "아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이게 가정의 달 5월의 현실이다. 우리도 외로운 오리들이다.​

 

고독한 사회, 옆에 누가 있어도 외로워지는 사회, 가족끼리도 마음이 통하지 않는 사회......

우리들의 변화하는 사회에 대해 이제 우리가 적응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오리들, 너희들도 그런가? 수컷 두 마리만 있지만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는 비결은 무엇인가? 그래도 너희들은 곧 새끼들을 끌고 이 연못으로 다시 와서 이런 멋진 모습을 우리 인간들에게 보여주겠지? 엄마 오리가 보고 싶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또 왜 혼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