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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은비령의 별을 다시 보았네요

지도에도 없는 은비령을 18년 만에 다시 찾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1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올여름에 어디 휴가 안 가세요?」

「아, 은비령으로 갑니다」

「네? 은비령요?」

 

친구는 그런 지명이 어디 있느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처음 듣는데요, 은비령이란 곳은?」

「아, 그러실 것입니다. 한계령에서 가리산으로 가는 길에 있습니다」

 

조금 있다가 다시 묻는다.

 

「지도를 찾아봐도 안 나오는데요?」

「아, 물론 안 나옵니다. 같은 이름의 카페가 혹시 검색될지도요」​

 

이렇게 말하고는 나는 친구가 운전하는 자동차 편으로 서울을 벗어나 동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가는 곳은 강원도 인제 하추리에 있는 한 펜션. 서울서 양양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고 태백산맥 바로 밑 인제 요금소까지 온 뒤 거기서 일반국도로 내린천을 따라 북쪽으로 달리면 펜션이 나온다. 서예를 하시는 송은 심우식 선생이 우리를 맞는다. 그분이 우리에게 와서 하루 이 펜션에 자고 가라고 권하셔서 문득 지난 추억이 생각나 얼른 달려오는 길이었다.

 

 

그 펜션은 은비령에 대한 소중한 인연과 추억을 맺은 곳이다. 18년 전이면 내 나이 50대 초반, 당시 회사 일로 바쁘다가 당시에도 이 폔션에 초대받아 급하게 휴가를 내고 가족과 함께 내려왔다. 우리는 하루를 묵고 그 이튿날 한계령을 넘어 동해안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돌아오는 길에 ‘은비령’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지명이 아니라 원래는 소설의 이름이었고 그 속에 남녀 주인공의 애틋한 사연이 있었다. 이번에 서울을 떠나기 전에 우리 일행에게 그러한 ‘은비령’ 이야기를 들려주니 일행들은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무조건 ‘은비령’에 가 보자고 한다.

 

18년 전 여름휴가 때 내린천에는 지금처럼 많은 물이 힘차게 흐르고 있었고 나는 부친을 모시고 작은 계곡으로 가서 민물고기를 조금이라도 잡을 수 있을까 해서 하추리 계곡을 따라 올라가 보았다. 계곡을 따라 작은 고개를 넘는 동안 잘 포장된 지방도로 옆으로 은빛의 흐르는 개울물이 힘차게 흐르고 있었다. 넓지 않은 포장도로는 그때 금방 세수를 한 말끔한 청년의 얼굴 같았다.

 

은빛 개울물이 힘차게 흐르는 계곡의 바위와 돌들은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자연의 깨끗한 속살이었다. 아무 데고 차를 세우고 발을 벗고 들어가 한 움큼의 물을 손으로 담아 올려 마시고 싶어질 정도였다. 그렇지만 물살이 세고 깊어서 고기 잡는 것은 포기했다. 조금 더 가면서 현리에서 바로 한계령으로 이어지는 351번 도로를 따라 한계령 정상을 향해 가다 보니 왼쪽으로 필례약수라는 간판이 보인다.

 

 

그 샛길을 은비령(隱秘嶺)이라고 이름붙인 건 나와 그였다. 그가 죽은 다음인 지금도 그 샛길의 이름을 은비령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나와 여자밖에 없었다. 아내에게도 나는 그곳이 은비령이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가능하면 나는 아내 앞에서 옛날 했던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한때 집을 떠나 공부를 했던 곳에 대한 이야기도 그냥 <한계령 너머>라고 평범하게 말했다. 우리가 사이가 좋을 때에도 그랬다. <은비령>이라고 우리가 붙인 다른 이름으로 말했을 때 행여 아내가 마음속으로라도 그 꼴난 공부도 하다가 그만둔 주제에 그런 이름까지 붙이고 했었느냐고 생각할지 몰라서였다. ... 소설 《은비령》

 

바로 여기가 은비령이었던 것이다. 지도에 전혀 나오지 않아 이름도 알 수 없었던 고갯길. 필례약수로부터 한계령 휴게소까지 가기 전 태백산맥의 고갯길. 그전까지 지역 주민들은 그냥 한계령이라고 불렀으며, 작은 한계령, 또는 필례 약수터가 있다고 해서 필례령이라고도 부르던 것이 어느 날부터 은비령이란 새 이름을 얻었다. 은비라는 말은 혹 그곳에 은색의 비가 내리는 곳이란 뜻은 아닐까? 아무튼 은비라는 신비한 이름, 요즈음에는 젊은 여성들의 이름으로도 인기가 있는데, 18년 전 우리는 한계령을 넘어 동해안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필례약수 쪽으로 들어갔고 그것이 ‘은비령’과의 만남이었다.

 

은비령에는 은비팔경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정하고 붙인 제1경은 우리가 방을 들고 있는 화전 마을에서 마주 바라보이는 <삼주가병풍>이었다. 원통에서 한계령으로 오를 때 오른쪽으로 보이는 옥녀탕과 하늘벽, 장수대의 뒤편의 삼형제봉과 주걱봉, 가리봉이 화전 마을에선 병풍처럼 우뚝 막아선 앞산처럼 보였다. 모두 해발 1200미터에서 1500미터가 넘는, 태백산맥의 한 가지를 이루는 가리산맥의 준령들이었다. 제2경으로는 겨울 은비령의 눈내리는 풍경으로 은비은비(隱秘銀飛)를 꼽았고, 제3경으로는 마을 서쪽 한석산에 지는 저녁 노을로 한석자운(寒石紫雲)을 꼽았다.

 

제4경으로는 맑은 날 아침에도 구름처럼 걸쳐져 있는 우풍재의 안개, 제5경으로는 가리봉을 주봉으로 한 가리산의 가을 단풍, 제6경으로는 필례골의 흰 돌 틈 사이로 작은 폭포처럼 가파르게 흐르는 여울, 제7경으로 장작으로 밥을 지을 때 안개처럼 낮게 피어올라 바깥 마당을 매콤하게 감싸는 우리 공부집의 저녁 연기로 은자당취연(隱者堂翠煙)을 꼽았고, 마지막 8경으로 맨눈으로도 밤하늘의 은하수를 볼 수 있는 은궁성라(銀宮星羅)를 꼽았다." ... 소설 《은비령》

 

 

1996년에 발표된 이순원의 소설 '은비령'의 주인공 ‘나’는 아내와는 이혼 아닌 별거 중인 소설가였다. 여자는 은비령에서 고시공부를 함께 하던 친구의 아내였다.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하여 공무원이었던 친구의 행복한 아내였던 여자를 보았었다. 그러다 얼마 뒤 우연히 과부가 된 그녀를 만난다.

 

길 위에서 길을 바꾼 것도 그랬지만 여행도 처음부터 계획하고 떠난 것이 아니었다.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혼자 집에 있었고, 여행 같은 건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물론 여러 날 전부터 마음속으로 무언가 기다려왔던 건 사실이었다. 오후에 나는 한 여자를 만나기로 했다. 마음속으로 어떤 가벼운 흥분 같은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흥분 뒤편으로 어쩔 수 없는 무게로 더해질 수밖에 없는 마음의 소금 짐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약속은 이미 지난주에 했었다. 여자가 먼저 전화를 걸었고, 내가 그 말을 했다. 전날 나는 처음으로 여자 앞에서 많은 술을 마셨다. 어쩌면 하고 싶은 말들은 내가 마신 술보다 더 많았는지도 모른다. 여자는 내가 잘 들어갔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아직도 그렇게 말해야지만 전화를 걸 수 있습니까?" ... 소설 《은비령》

 

그는 문득 그 여자가 생각나서 은비령으로 자신도 모르게 차를 몰고 간다. 눈길에서 차가 고장 나고 다음 날 뒤쫓아 달려온 그녀를 만나게 된다. 둘은 부부로 오인한 옛 하숙집의 노인네들 때문에 한방을 쓰게 된다. 어색한 잠자리를 피하려고 밤 산책을 나온 둘은 밤늦게 별자리를 관측하는 남자로부터 은하계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2천 5백만 년을 주기로 다시 되풀이되는 사람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날 밤 여자는 2천 5백만 년 후를 기약하고 혼자 떠난다.​

 

“어쩌면 저는 내일 아침 당신을 보지 않고 떠날지 몰라요. 그러면 우리는 2천5백만 년 후에야 다시 만나게 되겠지요.”

 

 

그렇게 ‘은비령’은 아내와 별거 중인 한 소설가와 친구의 미망인과의 사랑의 이야기를 은비령이란 공간에서 엮어갔고 밤하늘 위에 떠 있는 별 속에 그 사랑을 영원히 심어놓았다. 18년 전 그 여름휴가 때 그러한 은비(隱秘)한 공간에 자석처럼 나도 모르게 끌려들어 간 뒤, 나는 그 소설을 다시 읽고 그 사연을 글로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1996년에 발표된 이순원의 소설 《은비령》은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아 42회 현대문학상을 받았고 99년 1월에는 KBS에서 단막 드라마로 만들어 방송해서 또 방송위원회가 주는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받았다. 그 드라마의 연출자가 드라마 '겨울연가'로 일본열도를 뒤흔들어 놓은 윤석호였다. 문학적 성취 말고도 ‘은비령’은 소설이 지명을 바꾼 흔치 않은 일을 이뤄냈다. 이 작품 이전에 은비령이라는 고갯길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었지만 ‘은비령’은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우리 일행은 펜션에서부터 곧바로 차를 몰아 필례약수쪽으로 갔다. 나는 18년 전 가 본 길이었고 다른 분들은 초행길이었다. 굽이굽이 길을 따라 멋진 숲과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양옆의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는 듯한 길을 따라 위쪽으로 한참을 올라가니 필례약수를 알리는 간판이 있고 앞에 넓은 공간이 있었다.

 

거기에 있었다. 나지막한 목조 건물의 작은 문 앞에 은비령 산장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그러나 문은 잠겨 있었다. 몇 년 전 이 앞에는 큰 홍수가 나서 흙더미가 휩쓸고 지나간 적이 있었고, 그 독한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관광객들이 거의 끊어진 지 몇 년이었지만 이 카페는 간판을 내리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물론 손님이 많지는 않아, 문을 열지는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소박하고 깔끔한 카페의 입구가 역시 은비한 맛을 보여주고 있었다.

 

 

광장 오른쪽으로 맑은 시냇물이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그 시내 위에는 작은 다리가 놓여 있었고 그 다리를 넘어서니 필례약수가 있었다. 약수물은 식용은 하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맛을 보니 철분과 탄산의 맛이 깔려 있어, 오색 약수나 충청도 초정 약수를 생각나게 하였다. 작은 구멍 속으로 약수는 계속 솟아나고 있었다. 지금은 불소와 철분이 기준 이상으로 많으니 마시지 말라고는 하지만 그 옛날부터 필례약수는 이곳 필례고개를 넘는 사람들에게는 시원한 샘물이었고, 늘상 먹지 않는 이상 철분 초과 정도로는 큰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작은 냇물이 원체 맑고 시원하기에, 그 옆을 따라서 많은 분이 차를 가져와서 야영하거니 쉬는 모습이 많았다. 소설에서는 은비 8경 가운데에 제6경으로 필례골의 흰 돌 틈 사이로 작은 폭포처럼 가르게 흐르는 여울이 있는데 그 6경은 계곡을 따라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다만 장작으로 밥을 짓지 않으니 소설가가 말한 제7경의 저녁연기는 볼 수 없었다.

 

 

은비령 카페 옆에 있는 식당 야외 식탁에 앉아 참기름이 들어간 고소한 산채밥으로 저녁을 대신한 우리는 다시 산에서 나는 약초로 만든 차의 쌉쌀한 맛을 음미하며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로 몸과 마음을 맑게 할 수 있었다. 비록 은비령이란 실제 지명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올라오는 그 길의 조용하고 은밀한 분위기와 이곳의 약수 한 모금, 그리고 산채나물 정도만으로도 은비령이란 이름은 부족하지 않다고 하겠다. 거기서 우리는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는 남자와 남편의 친구를 사랑하게 된 여자가 2,500만 년의 시간과 인연을 별에 실어 보낸 사랑 이야기를 되새겨 보았다.

 

인간에게 과연 2천5백만 년이란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과연 그들은 그 만남을 위해 2천5백만 년이란 시간을 기다릴 수 있을까? 아니 그 시간은 윤회의 시간이기에 이미 우리들의 의지를 떠난 영원의 시간이다. 그러기에 그것은 셀 수 있는 수치로서의 시간이 아니라 무한대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시간일 뿐이다. 다만 그 만남을 위해 우리를 비춰 줄 별이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어두워지면서 우리는 다시 펜션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잠은 자야 할 것이 아닌가? 펜션의 방안 테이블에 4명이 마주 앉아 간단한 안주로 맥주를 마시고 차도 마시며 우리들은 살아온 긴 시간을 반추하며 삶의 의미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완전히 해가 지고 한참을 더 지나니, 누군가가 제안한다. 별을 보러 나가자고. “맞아 그렇지 나갑시다!” 우리 모두 동시에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났다. 칠흑 같은 어두움, 같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칠흑 그대로의 깜깜한 밤이다. 어디서든 빛이 들어오기 마련인 도회지와는 달리 정말 아무 빛도 없는 밤에 고개를 들어보았다.

 

아, 거기에 밝은 별과 그 뒤편으로 많은 뭇별이 보였다. 어릴 때 고향의 마당 멍석 위에서 보던 그 은하수처럼은 아니지만 저 하늘 높이 많은, 셀 수도 없는 별들이 저마다의 존재를 다소곳이 드러내고 있었다. 한 가운데 가장 큰 별, 저것이 시리우스렸다. 천랑성이란 이름처럼 이리의 눈빛과 같은 그 별에서는 제법 희다 못해 은빛이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소설가가 마지막 8경으로 표현한 대로, 맨눈으로도 밤하늘의 은하수를 볼 수 있는 은궁성라(銀宮星羅)가 바로 이것이구나.

 

저 별이다. 18년 전 나는 시리우스 옆의 작은 동반성(同伴星)을 나의 별로 점찍어 놓았었다. 저 별을 따서 집으로 가지고 갈까 하다가 집에는 다른 별이 있으니 그냥 하늘에 두기로 했던 그 별이다. 그 별이 아직도 저렇게 그대로 다소곳하게 빛나고 있구나.

 

 

“별에겐 별의 시간이 있듯이 인간에겐 또 인간의 시간이라는 게 있습니다. 대부분의 행성이 자기가 지나간 자리를 다시 돌아오는 공전 주기를 가지고 있듯 우리가 사는 세상일도 그런 질서와 정해진 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2천5백만 년이 될 때마다 다시 원상의 주기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2천5백만 년이 지나면 그때 우리는 다시 지금과 똑같이 이렇게 여기에 모여 우리 곁으로 온 별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까지 살아온 길에서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을 다 다시 만나게 되고, 겪었던 일을 다 다시 겪게 되고, 또 여기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을 다시 겪게 되는 거죠.” ... 이순원, 《은비령》 ​

 

현업에서 은퇴한 지 오래되어 특별히 여름휴가라고 꼽을 필요도 없지만 올해의 여름은, 단 하룻밤의 짧은 밤을 강원도의 은비한 산속에서 밤을 지새우며 영원을 비추는 별을 다시 확인한 것만으로도, 아마 내 생애에 절대 지워지지 않을 여름으로 다시 기억될 것이다. ​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