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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근대 문예인, 오세창(吳世昌)’ 특별 조명

국립중앙박물관, <상형문자로 쓴 어ㆍ거ㆍ주> 등 30건 56점 전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윤성용)은 3·1만세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이자 우리 서화 연구에 힘쓴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 서거 70주년을 기려 ‘근대 문예인’으로서 오세창을 집중 조명한다. 근대 격동기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오세창의 생애, 예술 활동, 감식안(鑑識眼)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조명하는 기회로, 서화실 정기 전시품 교체의 하나로 이 전시를 마련했다.

 

다양한 직업을 거친 근대인 오세창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을 살아온 오세창은 16살인 1879년(고종 16) 한어(중국어) 역관(譯官)을 시작으로 언론인, 독립운동가, 서예가 등 여러 직업을 거쳤다. 그의 다양한 이력은 통번역 업무를 담당한 관원 명단을 적은 <통문관 관안>과 1906년 그가 신문사 사장으로 있을 때 발행한 <만세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919년 3·1만세운동 때 인쇄된 <기미독립선언서>에도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 오세창은 역관 오경석(吳慶錫, 1831~1879)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부친이 수집한 다양한 자료를 보며 성장했고, 훗날 관직에 나아가 개화정책을 수행했다.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언론인으로 애국계몽 운동을 후원했고, 1919년에는 민족 대표로 3·1만세운동에 참여해 2년 8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 뒤 그는 서화가들과 교류하며 활발한 예술 활동을 펼쳤고, 탁월한 감식안으로 서화 연구에 전념해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 《근묵(槿墨)》 등 저서를 남겼다.

 

우리 옛 글씨를 모으고 정리하다

그는 오래된 금속이나 돌에 새긴 글씨 금석(문金石)文을 수집하고 연구한 오경석에 이어 서예, 회화, 금석문 등 여러 분야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근역석묵(槿域石墨)》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금석문 탑본 78건이 수록되어있다. 특히 이 첩에는 469년 고구려가 평양 성벽을 축조하면서 새긴 <고구려 평양성 석편>(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이하 석편, 보물) 탑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석편은 1855년 오경석이 수집해 오세창에게 전해진 것으로 이후 일부 없어졌으나 《근역석묵》의 탑본은 결실 전 모습으로 값어치가 크다.

 

 

옛 글씨를 본받아 독창적인 서체를 창안하다

오세창은 금석문을 따라 쓰고(임모-臨摸) 문구와 설명을 적어 작품으로 제작한 ‘종정와전임모도(鐘鼎瓦塼銘臨摸圖)’ 전형을 확립했다. 또한 옛 글씨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상형고문(象形古)文과 전서(篆書) 작품을 제작했다. 상형고문을 쓴 <어(魚)ㆍ거(車)ㆍ주(舟)>는 문자를 보는 순간 그림이 연상되는 작품으로 옛 글씨의 문자성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고대 문자의 그림문자적 특성을 살렸다.

 

 

 

 

이번에 처음 공개하는 <전서로 쓴 우리나라 문인의 시>에는 ‘영동관란도인(瀛東觀瀾道人), 바다 동쪽에서 물결이 일렁이는 모습을 보는 사람)’ 호가 적혀 있다. 의미상 오세창이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일본에 망명했던 때(1902~1906년)에 쓴 호로 추정되며, 이 작품에서 중년 시절 필치를 살펴볼 수 있다.

 

옛것을 연구해 감식안을 기르다

오세창은 옛것을 연구하고 감식안을 길러 서화를 품평했다. 그는 서체가 매우 독특해 진위 논란이 있었던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쓴 《손자(孫子)》에 대해 의견을 남겼다. 그는 《손자》에 찍힌 인장이 김정희 제자 신헌(申櫶, 1810~1884)의 것임을 밝히고, 김정희가 당나라 서체를 참고했다는 점을 들어 《손자》를 김정희의 진품으로 결론내렸다. 또한 13세기 고려불화 <수대장존자>(보물)의 기원과 내력을 《고려사》ㆍ《해주부지》 등의 기록을 참고해 작성했는데, 그림 뒷면에 이 글이 부착되어 있다.

 

 

 

 

 

오세창은 격변의 시기 민족의 계몽과 독립을 위해 힘썼고, 한편으로는 우리 서화를 연구해 옛것을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서체를 이룬 근대기 문예인이었다. 오세창의 손길이 남아있는 작품들을 감상하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이루고자 했던(법고창신-法古創新) 그의 노력을 느껴볼 수 있다.

 

영상과 함께 즐기는 책가도

한편, 서화Ⅱ실 202-2ㆍ3호실은 서화 전시품 16건을 새롭게 전시했다. 그 가운데 <책가도8폭병풍(冊架圖八幅屛風)>은 책가도로 이름난 화원화가 이형록(李亨祿, 1808~1883년 이후)이 그린 것으로, 구도가 짜임새 있고 채색이 진중해 19세기 책가도의 진수를 보여준다. 특히 이 작품은 이형록이 1864년에 이응록(李應祿)으로 개명한 뒤에 제작했음을 병풍 제9폭 그려진 ‘이응록인’ 인장으로 알 수 있다. 전시품과 함께 대형 화면에서 상영되는 고화질 영상, “조선시대 책장 그림 이야기”를 보며 책가도의 매력을 충분히 느껴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