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강을 따라 답사하면서 곳곳에서 보게 되는 식당과 카페의 영어 이름들에 짜증이 날 정도다. 이제 우리나라도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2021년 기준)이 되었다. 이제는 한류가 동남아시아를 거쳐 세계로 뻗어나가는 문화 강국이 되었는데, 굳이 영어로 아파트 이름을 짓고 영어로 관광지 이름을 지어야 하나?
거꾸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내가 너무도 국수주의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가? 국수주의자를 비하하는 유행어는 국뽕이다. 국뽕은 국가와 히로뽕(마약의 일종)의 합성어로서 무조건 대한민국을 찬양하는 행태를 비꼬는 말이다. 나는 국뽕인가?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인가? 헷갈린다. 내가 나를 모르겠다.
하지만, 10여 년 전쯤 한국에 온 중국 연변대학교 김병민 총장이 “만주족은 말에서 내렸기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라고 말했다는 얘기가 떠오른다. 김 총장은 ‘중의법’을 쓴 것으로‘말’은 만주족이 타던 말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언어 ‘만주어’을 뜻하기도 한다. 만주족은 말에서도 내렸지만, 그들의 언어를 잊은 탓에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만주에는 숙신ㆍ읍루ㆍ물길ㆍ말갈ㆍ여진 따위의 만주족이 옛날엔 많이 살고 있었고, 그들은 북방 기마민족으로써 한때 중국의 한족(漢族)을 지배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대부분 한족에게 동화되어 이제 그 흔적조차도 없어졌다는 것이다.
조금 더 내려가자, 왼쪽에 귀리밭이 나오고 이어서 보리밭도 나타난다. 귀리는 보리보다 키가 크고 더 가늘어서 쉽게 구별된다. 보리밥은 옛날에는 가난한 사람이 먹었는데, 요즘에는 살찌는 것을 걱정하는 부자들이 보리밥을 먹는다. 세상이 변한 것이다. 귀리는 겨울에 자라는 비료 작물로서 다 자라면 다른 작물을 파종하기 전에 갈아엎는다.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어디선가 검은등뻐꾸기(일명 홀딱새) 소리가 반갑게 들린다. 이 녀석은 여름 철새다. 조금 머무르다가 남쪽으로 다시 날아갈 것이다. 59번 도로는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 걷기에 좋았다. 59번 도로와 42번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서 오대천과 골지천이 만난다. 두 하천이 합류하면서 이름이 조양강으로 바뀐다.
나전리(羅田里)는 오대천이 조양강에 합류되는 곳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본래 고려 때 정선군이 도원군으로 되었을 때 어라전(於羅田)이라고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싸리덕, 새미골, 야미, 안반곡, 어두원, 장평, 졸드루, 할미곡을 통합해 나전리라고 했다. 대부분의 시골마을이 그렇듯이 나전리도 인구가 점점 줄어서 나전분교가 폐교되었다. 폐교 자리에는 현재 ‘아라리 인형의 집’이라고 간판이 붙어 있다.
인형의 집 누리집을 찾아 전화를 걸어 언제 만들었는지 물어보았다. 담당자의 대답인즉 1998년에 인형극을 좋아하던 연극인 안정의 선생이 폐교를 활용하여 인형 박물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공립이 아니고 사립 전시관이다. 이곳에서 정선인형극제를 주관하고 연극 강습도 하고 연극 공연도 한다고 말한다. 안정의 선생(1939생)을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좋은 일을 하시는 분임이 틀림없다.
마을 남쪽으로 철로가 지난다. 아우라지에서 청량리까지 연결하는 정선선이다. 정선선은 코로나19 돌림병과 교량공사로 2년이나 운행이 중단되었다가 2022년 6월에 다시 운행을 시작하였다. 청량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하루에 왕복 1회 운행하는데, 정선 5일장(2일, 7일)이 열리는 날과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운행한다.
마을을 둘러보았다. 곳곳에 폐가가 보인다. 쓰레기 더미로 변해가는 폐가를 보면서 인생무상을 느꼈다. 불과 몇십 년 전에는 이곳에서 남편과 아내가 농사를 짓고 살았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마을 가운데 큰 나무 아래서 3시 30분에 내가 준비해 온 군고구마 간식을 먹었다. 간식을 먹고서 다시 살펴보니 오대천 물길이 골지천 물과 만나는 지점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번에 시인마뇽이 골지천을 따라 내려왔을 때도 만나는 지점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넓은 하천의 중간에 퇴적물이 높게 쌓여서 두 개의 물길이 만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나는 6월 2일, 정선교육도서관을 방문하고서 일부러 나전리 쪽으로 차를 운전하였다. 59번 도로와 42번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서 거의 1km 정도 하류에서 두 개의 물길이 만나는 모습을 보고서 사진을 찍었다.)
낮 3시 50분에 지금까지 왔던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하였다. 출발지점인 백석 폭포 앞으로 다시 와서 시계를 보니 4시 50분이다. 길이 57.8 km인 오대천을 일곱 구간으로 나누어 2022년 5월 3일부터 2023년 5월 15일 사이에 걸었다. 평창강에 이어서 오대천 따라 걷기를 끝내고 나니 몸이 가볍고 마음이 홀가분하다.
내가 8년 전에 귀촌하여 살고 있는 평창군을 관통하는 두 개의 큰 강을 따라 걷다 보니 곳곳의 골짜기와 하천 이름이 친숙해졌다. 마을 이름의 뜻과 유래를 조사하다 보니 평창 토박이보다도 지명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다.
도보 여행은 그 지방의 산과 강, 바위와 골짜기, 나무와 들꽃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경치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차를 타고 휙 지나가면 이런 아름다운 풍광을 놓치고 만다. 걷는 여행은 시속 3km 정도로 느리지만 시속 60km의 자동차 여행보다 자연을 더 잘 알 수 있는 좋은 여행 수단이다. 걸으면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느린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니체라는 철학자는 일찍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에서 나온다.”
어느 날 내가 내 친구 시인마뇽에게 물었다.
“자네는 왜 그렇게 열심히 산에 가고 또 강을 따라 걷느냐?”
그가 대답했다.
“병원에 가지 않기 위하여 걷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