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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삭힌 홍어 잘 안 먹는 흑산도 사람들

《날마다 섬 밥상》, 강제윤 시인, 어른의시간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45]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섬 활동가 강제윤 시인이 《날마다 섬 밥상》 책을 펴냈습니다. 사람이 사는 우리나라 모든 섬에 발을 디딘 강 시인은 그동안에도 섬을 순례하며 섬과 섬사람들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지요. 그리고 4년 전에 《전라도 섬 맛 기행》이라고 사라져가는 전라도 섬의 맛을 글로 살려내더니만, 이번에는 전국 섬의 밥상을 우리 앞에 차려주네요. 저는 강 시인이 교장으로 있는 <섬학교>에 몇 번 나가보면서 강 시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섬학교’라고 하니까 글자 그대로 무슨 학교인가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 같네요. 강 시인이 우리 섬의 숨겨진 비경,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매달 희망하는 사람들을 모아 섬을 순례하는데, 이를 섬학교라고 하지요. 제가 소개하여 섬학교에 등록하였던 사람도 여럿 있는데, 그 가운데 박재일 회장은 강 시인이 사단법인 섬연구소를 설립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지금도 이사장으로 있습니다.

 

요즈음 강 시인은 전국 섬에 흩어져 있는 걷기 길을 하나로 모으는 ‘백섬 백길’ 프로젝트를 총괄하여 누리집(https://100seom.com/)도 만들고, 모든 국민이 섬 길에 대한 정보를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섬 활동가’란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닙니다. 아니, 강 시인은 단순한 섬 활동가가 아니고, 진심으로 섬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강 시인은 《날마다 섬 밥상》 1부에선 인정 많은 섬사람들의 구수한 밥상을 차렸고, 2부에서는 구체적인 섬 음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섬 밥상’이니 여기에는 구수한 섬 음식 이야기뿐만 아니라, 정이 많은 섬사람 이야기, 섬의 숨겨진 역사나 풍경 이야기도 밥상 위에 올립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 밥상을 살펴볼까요? 독거도 미역 밥상에서는 권문세가가 자연산 미역이 나는 미역바위도 자기네 소유라며 어민들에게 소작료 받는 얘기가 나옵니다. 섬에 붙어 겨우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생고생하며 미역바위에서 채취한 미역에도 소작료를 받아먹다니!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어 먹는 게 낫겠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미역을 먹는 것은 고래에게 배운 지식이라네요. 고려인들은 고래가 새끼를 낳은 뒤 미역을 뜯어 먹고 산후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을 보고, 산모에게 미역을 먹였다고 합니다. 당나라 백과사전 《초학기》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잠수 장비도 없었을 텐데, 고래가 미역을 먹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욕지도의 밥상을 소개하는 글의 제목은 ‘고등어회에 낮술 안 마시면 반칙’입니다. 얼마나 맛있으면 낮술을 댕기게 하는가? 강 시인이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는 것은 자신도 여기 가면 낮술 많이 마신다는 얘기겠네요. 그런데 이 욕지도에 100년 전에 게이샤가 일하던 고급 요정이 있었답니다. 헉 남해의 섬에 고급 요정이 있었다고? 그것도 100년 전에??

 

1895년에 일본인 도미우라가 욕지도를 들락거리며 고기도 잡고 수산물을 사서 일본에 팔기 시작하였답니다. 그러다가 아예 욕지도에 정착하고 일본인들을 끌어들여 1915년에는 욕지도 인구 23,000명 가운데 일본인이 2,127명이나 되었답니다. 그러니 이런 일본인들의 유흥을 위해 요정이 생기고 게이샤들이 흘러들어온 것입니다.

 

욕지도 주위에는 연화도, 두미도, 세존도가 있습니다. 이 모두 불교와 관련된 이름입니다. 그런데 연화도(蓮華島), 세존도(世尊島)는 불교 이름이라는 것이 수긍이 가는데, 욕지도(欲知島)와 두미도(頭尾島)는 고개가 갸우뚱해지지요? 바로 불경 구절에서 따온 것입니다. “欲知蓮華藏頭尾問於世尊 - 연화세계(극락세계)를 알고자 하는가? 그 처음과 끝을 부처님께 물어보라.” 누군가 이 아름다운 남해의 섬에 불국토(佛國土)를 세우려고 하였던 것일까? 그러나 강 시인도 이 이상 더 자세한 얘기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역사에는 더 자세한 얘기는 나오지 않는 모양입니다. 누굴까? 이곳 섬들에 이런 이름을 붙인 이는?

 

한산도의 밥상을 소개하는 글의 제목은 ‘장군의 섬에서 맛보는 최고의 약선 음식’입니다. 한산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으니까, 장군은 이순신 장군을 뜻한다는 것은 짐작하실 테고, 뭘 보고 최고의 약선 음식이라고 하는 걸까요? 바로 문어입니다. 특히 삶은 문어를 간장과 마늘, 참기름 등 양념으로 무쳐서 전복을 곁들인 전북 문어초는 기름장이나 초장에 찍어 먹는 문어숙회와는 차원이 다른 요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어가 비인간 인격체 후보에 오를 만큼 지능이 높다는 것을 아십니까? 저도 전에 문어 자연다큐멘타리를 보면서 문어가 지능이 높다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 강 시인도 이 얘기를 하는군요. 한가지 예를 든다면 문어의 조개잡이 기술입니다. 문어는 그냥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조개의 입을 벌리게 할 수 없으니까, 조개가 입을 벌린 틈을 노려 잽싸게 껍질 사이에 돌을 끼워놓고 조개살을 빼먹는다네요.

 

하등동물로 여겼던 문어가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리고 문어의 종족 번식 본능은 눈물겹습니다. 짝짓기가 끝나면 수컷은 그대로 죽거나 암컷에게 잡아먹힌답니다. 그러면 암컷은 체력을 비축하여 알이 부화하는 5~7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알을 지킵니다. 그리고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나면 자신의 몸을 새끼들의 먹이로 내주고 장렬히 소멸합니다.

 

강 시인은 우이도에서 민박하면서는 민박집 밥상에 감격합니다. 책에 실린 밥상 사진을 보니 정말 푸짐한 밥상입니다. 사진 밑에 강 시인이 감격하여 이렇게 설명을 달았군요. “평범한 백반을 시켰는데, 꽃게찜과 민어찜이 반찬으로 나왔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이도’에서 정약전과 문순득을 떠올릴 것입니다. 홍어 장수 문순득은 풍랑으로 표류하다가 유구(오끼나와), 여송국(필리핀), 마카오, 남경, 북경을 거쳐 3년 2개월 만에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당시 정약용의 형 정약전은 흑산도와 우이도를 왔다 갔다가 하며 유배생활을 하였는데, 마침 그 무렵에는 우이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순득의 이야기를 《표해시말(漂海始末)》이란 기록으로 남기지요. 조선 시대 표류하다 돌아온 사람이 문순득 말고도 많이 있는데, 정약전이 아니었으면 문순득은 그냥 역사에 묻혀버렸을 것입니다.

 

문순득은 당시에도 홍어장수로 돈을 벌었는데, 똑똑한 사람이라 요즘 시대 태어났으면 큰 기업을 이루었을 것 같습니다. 한 예를 들면, 유구국 사람들이 제주에 표류하여 왔을 때, 문순득이 통역을 했습니다. 여송국에 겨우 10달밖에 머무르지 않았던 사람이, 9년 만에 여송국 사람들을 만나 통역을 하였다는 것은 문순득의 총명함을 증명한다고 할 것입니다. 정약용은 문순득의 아들이 태어났을 때 문순득이 여송국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뜻으로 아들의 이름을 ‘여환(呂還)’으로 지어주었다는군요. 그리고 정약용의 제자 이강희는 우이도로 문순득을 찾아가 문순득으로부터 외국 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운곡선설(雲谷船設)이란 글을 썼지요. 이는 우리나라 첫 외국 배에 관한 논문입니다.

 

1부의 섬 밥상 이야기만 너무 많이 했네요. 2부의 섬 음식도 이야기해 볼까요? 강 시인은 포트 해밀턴에서 맛보는 홍합 요리를 얘기합니다. 강 시인은 밍허각 이씨가 쓴 조리서 《규합총서》를 인용하면서 바다의 것이 모두 짜지만, 홍합만 홀로 싱거워서 담채(淡菜)라고 불렀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섬 음식 얘기하는데 ‘포트 해밀턴’이라고 하니까, 좀 이상하지요? 포트 해밀턴이 어딘지 아십니까? 거문도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거문도의 세 섬 가운데 고도입니다.

 

그러면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아! 영국 함대가 대한해협을 오가는 러시아 함대를 견제하기 위해 거문도를 점령했었지!” 하실 것입니다. 그때 영국 함대는 자신들의 함대 기항지를 포트 해밀턴이라고 부른 것이지요. 그런데 그 당시 영국 함대가 거문도에 장기 주둔하면서 조선 왕조의 승낙을 받았을까요? 짐작하듯이 당연히 안 받았습니다. 당시 전 세계의 바다를 누비고 다니던 제국주의 국가 영국은 아예 사전에 조선 왕조의 승낙을 받아야 한다는 의식도 없었을 것입니다.

 

요즘 이스라엘이 하마스 공격에 보복한다고 팔레스타인을 피로 물들이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이런 분쟁의 씨앗은 영국이 뿌린 것입니다. 영국은 1915년 맥마흔 선언으로 1차대전이 끝난 뒤 아랍인의 독립국가 건설을 약속하더니, 1917년에는 이와 반대로 밸푸어 선언으로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때그때 자기들 이익만 우선하는 제국주의 국가의 속성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지요.

 

그런데 영국군이 이렇게 자기들 멋대로 거문도를 점령하였지만, 섬 주민들과는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조선왕조는 섬사람들을 보호는 해주지 않으면서 섬 특산물 공출로 괴롭히기만 하였는데, 영국군은 기지 건설에 동원했던 거문도 사람들에게 임금을 주었으니까요. 그리고 토지 사용료도 주고, 대포 소리에 고기가 안 잡힌다고 하자 보상금도 지급했다네요. 지금 거문도에는 영국군과 조선 여인 사이에 태어난 후손들도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만 더 얘기하겠습니다. 흑산도 홍어입니다. 그런데 이 글의 제목은 ‘흑산도 사람들은 삭힌 홍어 잘 안 먹어’입니다. ‘홍어’ 하면 흑산도가 떠오르고, 또 삭힌 것이 떠오르는데, 흑산도 사람들은 삭힌 홍어 잘 안 먹는다니요? 옛날 상인들은 홍어를 비롯한 많은 생선을 사서 영산강을 따라 나주 영산포까지 팔러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풍랑을 만나면 뱃길이 길어지면서 다른 생선들은 모두 썩지만, 홍어는 썩지 않고 발효가 되었습니다. 이는 홍어에는 유난히 많은 요소와 요산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홍어가 죽으면 요소와 요산이 분해되면서 암모니아 가스를 발생시키는데, 이 암모니아 가스가 유해 세균의 번식을 억제해 썩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삭힌 홍어 문화가 탄생했고, 이는 흑산도가 아닌 나주를 비롯한 전라도 내륙 지방에서 꽃피운 것입니다. 또 하나 설이 있습니다. 고려 말부터 왜구들이 남해안 섬들을 약탈했는데, 나라가 자신들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자 흑산도 주민들은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와 영산포로 피신 왔답니다. 또는 공도(空島, 사람이 살지 않아 비어 있는 섬) 정책으로 나라에서 영산포로 이주시켰다는데, 두 경우가 다 있었을 것 같네요. 이때 홍어를 배에 싣고 여러 날 걸려 영산포에 도착했을 때는 삭힌 홍어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강 시인은 이 글의 제목을 ‘흑산도 사람들은 삭힌 홍어 잘 안 먹어’라고 한 것이군요.

 

‘영산포’라는 지명도 흑산도 주민들 때문에 생긴 지명입니다. 흑산도 앞에 영산도가 있는데, 흑산도 주민들이 영산포에 들어와 살면서 자기 고향의 섬 영산도 이름을 자기들이 이주한 포구에 붙인 것이라네요. 이왕 말 나온 김에 하나 더 얘기하면, ‘흑산도(黑山島)’라고 하면 흑산도에 검은빛이 나는 산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닙니다. 큰 산이라는 뜻의 순우리말 ‘걺미’ 혹은 ‘검뫼’를 한자로 ‘黑山’이라고 표기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홍어 먹을 때 막걸리가 제격이지요? 삭힌 홍어회를 다른 음식 없이 너무 많이 먹으면 위산이 중화돼 소화불량에 걸리기 쉬워서, 산성인 막걸리와 함께 먹으면 좋답니다. 그래서 홍어회 먹을 때 막걸리가 댕긴 것이군요. 강 시인 때문에 또 하나 알게 되었네요.

 

그리고 홍어껍질묵 있지 않습니까? 이것도 원래 흑산도 사람들이 먹던 음식이 아니고, 근래에 탄생한 음식입니다. 원래 흑산도 홍어는 껍질이 부드러워 껍질을 벗기지 않고 먹었답니다. 그런데 근래에 수입산 홍어가 냉동수입 되면서 질긴 껍질을 벗겨야만 회로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벗긴 껍질을 탕에 넣고 끓여 먹었는데, 이후 누군가가 묵을 만들어 먹은 것이 홍어껍질묵이란 음식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거~ 책은 섬 음식에 관한 책인데, 제가 책 소개하면서 음식보다는 역사 인문 이야기를 많이 했네요. 제가 역사를 좋아하다 보니까 음식 이야기가 자꾸 곁길로 빠졌는데, 강 시인께서는 용서해 주실 거지요? 그동안 강 시인이 쓴 책을 읽으면서 섬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강 시인 덕분에 섬 음식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번 책은 강 시인이 책에 ‘양승국, 이혜란 선생님께’라고 친필사인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받은 것은 아니고, 제 바깥사돈(딸의 시아버지)인 박 교수님이 받으신 것입니다. 박 교수님도 저를 통해 섬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강 시인이 이번 책을 내면서 ‘백섬백길’ 전시회를 할 때, 박 교수님이 전시회 가면서 책 두 권을 사고 가서 사인을 받은 것입니다. 그 뒤 제가 따로 전시회에 갔을 때, 강 시인은 박 교수님에게 사인해 준 것을 깜빡하고 저한테 또 책을 주려고 하더군요. 시인이시여! 이제는 시인이라는 호칭보다는 섬 활동가, 섬 전문가가 더 친숙하게 들릴 정도로 섬을 사랑하는 강제윤 시인! 당신 덕분에 저도 섬을 많이 알게 되고 그래서 조금은 섬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제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