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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우리 문화유산 속 ‘웃상’ 찾기

《웃음꽃이 핀 우리 문화유산》, 김은의 글, 다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웃는 낯에 침 뱉으랴.

웃는 낯에는 함부로 대하기 힘든 힘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웃는 얼굴이라는 말처럼, 웃음에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신비한 치유의 힘이 있다.

 

우리 문화유산에는 유난히 웃는 표정이 많다. 얼핏 보면 근엄하면서도, 자세히 살펴보면 은은한 웃음기가 배어있다. 이런 잔잔한 웃음기가 우리 문화유산을 보면 볼수록 매력 있게 만든다.

 

김은의가 쓴 이 책, 《웃음꽃이 핀 우리 문화유산》은 우리 문화유산에 나타난 웃는 표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책이다. 첫째 마당, ‘유형 문화유산 속 웃음꽃’에서는 그윽한 불상의 미소, 지붕 위 웃는 기와, 하회탈 등 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웃는 표정을 다뤘다.

 

 

둘째 마당, ‘우리 그림 속 웃음 보따리’에서는 무덤 벽화, 민화, 풍속화에 나타난 웃는 표정을 살펴본다. 셋째 마당 ‘무형 문화유산 속 웃음 바다’에서는 판소리와 탈춤에 나타난 해학적인 장면을 집어낸다. 마지막으로 부록에서는 ‘세계 속 웃음꽃’으로 세계 곳곳의 문화유산에서 나타난 웃는 표정을 조명한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달신의 미소다. 옛 고구려 영토였던 중국 길림성 집안현에는 고구려의 고분 벽화 천지창조가 있다. 오른쪽에 있는 남자는 해를 상징하는 해신이고, 왼쪽에 있는 여자는 달을 상징하는 달신이다. 해신은 세 발 달린 까마귀, 삼족오(三足烏)를 들고 달신은 두꺼비를 든 채 천지만물을 창조하고 있다.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용의 모습을 한 달신은 평화로운 미소를 띠고 있다. 지은이는 먼 옛날 고구려 사람들이 달에 대해 가졌던 따뜻한 마음이 은은한 미소에 투영된 것이라 보았다. 고구려의 다른 고분 벽화에서도 불신의 따뜻한 미소를 확인할 수 있다.

 

(p.46)

불신의 얼굴에는 더할 수 없이 평화로운 미소가 감돌아요. 불꽃을 바라보는 눈은 살며시 내리감고 그윽한 미소를 머금은 붉은 입술은 보일 듯 말 듯 웃고 있어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따뜻한 기운이 솔솔 흘러나오는 것 같아요.

 

 

하회탈이 왜 웃는 표정인지에 대한 해석도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든다. 양반을 풍자하고 골려 주기 위해 만든 하회탈은 왜 험상궂은 표정이 아닐까? 그 까닭은 양반이라면 응당, 자신에 대한 비난과 풍자도 아량 있게 ‘껄껄 웃어넘길 줄 아는’ 너그러움을 갖춰야 했기 때문이다.

 

(p.32)

양반탈은 천민들이 만들었어요. 자신들을 부리는 얄미운 양반들을 골려 주려고요. 그런데 왜 이렇게 잘생기고 어떤 부탁이든 다 들어줄 것 같은 멋진 얼굴로 만들었을까요? 양반들을 놀리고 싶으면 우락부락 울퉁불퉁 못생긴 탈을 만들어 보는 사람마다 손가락질 하도록 만드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어요. 무릇 양반이라면 마음이 너그러워야 하는 거지요. 제아무리 사람들이 야유하고 놀리며 비판해도 껄껄껄 웃어넘길 수 있어야 진짜 양반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미안 앞으로 잘할게.” 사과하고 등도 두드려줄 줄 아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장례 행렬을 이끄는 방상시탈도 묘하게 해학적이다. 방상시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가면으로, 맨 앞에서 장례 행렬을 이끌면서 잡귀를 쫓고 죽은 사람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다. 잡귀를 쫓는 목적이라면 상당히 무서워야 하는데, 방상시탈은 보면 볼수록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방상시탈은 1970년 창덕궁 창고에서 장례용품들과 함께 발견된 것이 유일하다. 방상시탈은 소나무 판자에 얼굴 모양을 파고 이마와 눈썹, 코와 귀는 따로 만들어 붙였다. 눈은 네 개로 동그랗게, 입은 오목하게 팠다. 그러나 이 방상시탈은 구멍을 뚫지 않아 실제로 장례에 쓰인 것이 아니라 섣달그믐날 궁중에서 묵은해의 잡귀를 몰아내기 위해 행하던 ‘나례’에 썼던 가면인 것으로 보인다.

 

 

요즘 말로 ‘웃상’이라는 표현이 있다. 인상 자체가 웃음기를 띤 상이라는 말이다. 한국의 미학 가운데 ‘웃상’을 빼놓을 수 없다. 은은한 미소에서 호탕한 너털웃음까지, 한국의 ‘웃상’ 문화유산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이 책의 취지와 구성이 참 좋다.

 

책의 끝에 모나리자, 캄보디아 석상, 프랑스 조각상, 고대 인도의 석상 등 세계 각국의 문화유산에 어린 미소를 함께 보여주는 것 또한 흥미롭다. 우리 문화유산에 나타난 ‘웃상’, 그리고 세계 문화유산에 나타난 ‘웃상’을 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조용한 미소가 피어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