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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심청가(沈淸歌)는 계면(界面) 중심의 소리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56]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박유전의 강산제 <심청가>는 이날치를 통해 김채만-박동실-한애순에게 전승된 계보와 정재근을 통해 정응민이 이어받았고 정권진, 성우향, 성창순, 조상현 등에게 전승시킨 2종의 유파가 비교적 널리 확산하였다. 그 밖에 주상환, 전해종, 고종 때의 정창업, 최승학, 김창록, 황호통, 송만갑, 이동백 등도 심청가를 잘 불러 이름을 남기고 있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판소리 <심청가> 가운데서 눈 대목을 골라 소개해 보도록 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심청가>는 심청 어머니의 유언 대목이나 심봉사의 통곡 대목, 또는 심청 어머니의 출상 대목들이 이어져 슬픈 분위기, 곧 계면조로 이어가는 가락이 많은 편이다. 계면조(界面調) 음악은 슬픔을 의미하고 있지만, 그 가락이 슬프다는 느낌만으로는 계면조를 설명하기 어렵다. 잠시, 계면조 음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어두운 단조(短調)의 음계, 곧 마이너 스케일(minor scale)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궁중음악으로 조선조 세종임금 때, 작곡된 《종묘제례악》은 황(黃, sol)-태(太, la)-중(仲, Do)-임(林, Re)-남(南, Mi)으로 구성된 5음의 평조음계로 작곡된 <보태평(保太平)>이라는 11곡과 황(黃, La)-래(夾, Do)-중(仲, Re)-임(林, Mi)-무(無, Sol)으로 구성된 계면조 음계의 <정대업(定大業)> 11곡이 있다. 그런데 <정대업>의 악곡들은 두 번째의 夾(Do)을 뺀 黃(La)-仲(Re)-林(Mi)-無(Sol)의 4음 음계, 곧 계면조의 근간을 4음 구조로 변화시켜 놓은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의 시조창이나 일부 민요들은 이 4음 음계의 틀에서 다시 黃(La)-仲(Re)-林(Mi)의 3음 음계로 변화시키거나 또는 林을 시작음으로 하는 林-潢-汰의 또 다른 3음을 쌓아 복합 계면의 음계를 만들어 온 것이다. 음계를 구성하고 있는 음들의 수는 적어졌으나, 그 대신 떠는 표현, 흘리는 표현, 기타 밀거나 꺽는 표현법 등, 각 음들의 기능을 확대했다.

 

원래부터 계면조 음계란 평조(平調)에 대칭되는 개념이다. 그렇기에 그 음악을 듣는 이가 슬픈 느낌이 들게 되는 음조직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익이 쓴 《성호사설》에서 “계면(界面)이라는 말은 그 음악을 듣는 자가 눈물을 흘려 그 눈물이 얼굴에 금을 긋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계면조라는 음계는 그 곡조가 서글퍼 사람들이 눈물을 흘린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게 되는 것이다.

 

가곡의 노랫말을 수집해 놓은 김수장의 《해동가요(海東歌謠)》에서도 계면조 음악의 느낌을 일러 “처참하게 흐느낀다”라고 했고, 박효관과 안민영이 펴낸 《가곡원류(歌曲源流)》에서는“애원(哀怨) 처창(몹씨 구슬프다)”라고 풀고 있는 점이, 더더욱 계면조의 음악적 분위기를 가깝게 그려내고 있다. 판소리 가운데서도 이야기의 내용이나 그 전개에 있어 슬픈 대목이 많은 <심청가>는 유독 계면의 소리가 다른 판소리에 견줘 많다.

 

한애순이 부른 <심청가>의 사설내용을 참고해 보면, 둘째 부분의 사설 전개과정이나 가락의 진행에서 계면 소리를 확인해 볼 수 있는데, 가령 심봉사가 아기를 달래는 대목을 비롯하여, 아기를 안고 젖동냥 다니는 대목, 또는 심청이가 밥을 빌러 다니는 대목 등은 슬프거나 애처로운 분위기를 소리로 표현해야 극적인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과정은 심청이가 태어나고 곽씨 부인이 세상을 뜬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갔다는 점을 느끼게 해주고 있어서 심청이가 점점 자라나고 있다는 과정도 암시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심청가가 슬픈 계면의 소리가 중심이라고 해서 이야기의 전개를 듣는 이의 눈물만을 강요해서는 명작이 될 수 없다. 슬픈 장면들이 연출되는 가운데에서도 심청이가 장 승상 댁에 간다든가, 딸이 없는 동안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걱정되어 밖으로 나온 심봉사가 개천에 빠지는 대목이 연출되고, 자연스럽게 이를 구제해 주는 스님이 내려오고, 눈을 뜨게 된다는 스님의 말에 집안 형편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공양미 삼백 석을 바치겠다고 약속하는 대목, 등은 그 진행이 자연스러우면서도 극적인 상황으로 바뀌고, 소리 그 자체도 변화하는 아기자기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하루는 6~7살 된 심청이가 아버지 앞에 꿇어앉아, 내일부터 자신이 밥을 빌어 아버지를 공양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대목이 있다. 이 부분의 부녀(父女)간 대화가 또한 우리를 감동을 주고 있어 소개하고 넘어간다.

 

<아니리> 하루는 심청이 저의 부친 앞에 단정히 꿇어 앉어 “아버지, 오날부터 제가 나가 밥을 빌어 조석공양 하오리다.”

 

이 말을 듣게 된, 심봉사의 마음은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그의 대답이다.

 

”엊그제 강보에 싸였던 네가, 이제 내 앞에 와 그런 말을 허게 되니, 기특코 고마운 자식이다마는, 그런 말은 당초에 말어라.”

 

굳이, 고저(高低)를 얹고 장단을 배합한 가락이 아니더라도 이미 충분히 계면조(界面調)의 대화가 이어가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느끼게 될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