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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四字成語)로 보는 세종의 사상

항식(恒式)으로 삼으라 - ‘이위항식(以爲恒式)’

‘사자성어’(四字成語)로 보는 세종의 사상 6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이위항식(以爲恒式)’ : 이렇게 함을 항식(恒式)으로 삼으라. (세종실록 즉위년 9/3)

 

세종에게서는 새 제도와 고쳐서 바꿈을 자신의 생생화의 특성으로 삼고 이를 법과 제도로 정착화하려는 의지를 볼 수 있다. 조선 건국 초기여서 토의를 거친 안건은 항구적인 법칙으로 체계화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이위항식以爲恒式’(‘이로써 항상 따라야 하는 형식으로 삼다’) 곧 정례, 규례, 법식, 제도, 법 등으로 나타나는 ‘항식’이 있는데 이는 시행 규칙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조선왕조실록》 전체 394건 가운데 많이 출현하는 임금은 태종 77건, 세종 225건, 성종 72건 순이다. 세종은 항식을 제도화하려는 ‘이위항식’의 임금이었다. 참고로 그 밖의 연관어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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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恒式’ 원문 모두 810건, 태종 112건, 세종 304건, 성종 59건

‘以爲恒式’ 모두 394, 태종 77, 세종 225, 성종 4

‘永爲恒式‘ 모두 201, 태종 31, 세종 65, 성종 16

’永以爲式‘ 모두 26, 태종 3, 세종 9, 성종 4

’以爲式‘ 모두 85, 태종 12, 세종 9, 성종 12

’永爲式‘ 모두 7, 태종 1, 성종 1

’以爲定式‘ 모두 76, 태종 1, 세종, 13 성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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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항식’ 숫자 속에는 ‘이위항식’, ‘영위항식’이 이중으로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다른 용어로 표기되어 있는 식, 항식 등도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위의 ‘항식’들을 실록 속에서 살펴보면 태종이 건국 초 여러 제도의 자리 잡기로 항식을 시작하고, 세종이 정비하고, 성종이 정리한 것으로 나타난다.

 

세종은 수성의 임금이라고 선언한다. 수성에는 모든 법제를 정해 나가야 하는 임무가 있다. 이런 뜻에 부합하게 세종은 조선의 법식을 세운 임금이다. 세종의 ‘이위항식’은 여러 부문에 걸쳐있지만, 주요 기록은 다음과 같다.

 

· 사람 생명에 관계된 판결.(세종 1/2/17)

· 급무를 위한 회의 방법. (세종 3/8/5)

· 전정 손실 답험법. (세종 3/8/19)

· 사신은 당 약재를 사오게 하다. (세종 6/3/11)

· 관청의 여자 종이 아이를 낳으면 100일 휴가 주다. (세종 8/4/17)

· 입직한 군사가 병이 생기면 혜민국과 제생원에서 약을 지어 구료하게 하다. (세종 11/6/27)

· 이조에서 농사 달에 임기가 다 된 수령이라도 농사 달을 피해 교대하게 할 것을 건의하 다. (세종 12/2/25)

· 주자소 관리에 대한 것을 말하다. (세종 17/10/19)

· 대소 종친들의 동성혼을 금하고 항식으로 삼게 하다.(세종 24/6/24)

· 각도에 숨겨진 염분을 찾아내 연속적으로 고찰하는 법식을 만들도록 아뢰다. (세종 28/2/3)

 

몇 가지 세종 때 기록 내용을 보자.

 

∙ 조속한 공사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 방법을 정하다.

 

“명을 내리기를, "무릇 의논의 대상이 될 만한 공사는 정부(政府)나 여러 조(曹)가 한 장소에서 가부를 회의하여, 서로 논란한 뒤에 임금에게 의견을 아뢰는 것이 옳은 것인데, 전자에 여러 조(曹)의 낭청(郞廳)들이 서류를 싸서 여기저기 다니다가, 자연 공사가 더디게 되니, 금후로는 의논 대상이 되는 공사로서, 명을 내렸을 때는, 정부와 육조당상(六曹堂上, 육조의 정3품 이상 벼슬아치)이 한곳에 모여 가부를 상의 결정하여, 빨리 하뢰는 것으로 항구한 법식(法式)을 삼으라." 하였다.” (세종실록 3년 8월 5일)

 

∙ 공처의 비자가 아이를 낳으면 백 일 동안 휴가를 주도록 하다.

 

“형조에서 전지하기를, "서울과 지방 관청의 여자 종이 아이를 낳으면 휴가를 백 일 동안 주도록 하고, 이를 일정한 규정으로 삼게 하라." 하였다. (세종실록 8년 4월 17일)

 

항식을 위한 연구집단은 세종 시대의 집단지성의 형태로 집현전과 상정소가 있다. 상정소(詳定所)는 태스크포스팀(task force team), 프로젝트팀(project team) 혹은 정치집단의 비상대책위원회 등의 성격이 있다.

 

 

집현전은 연구자들이 개인적으로 학습하고 모임으로 경연하고 공동으로 연구하는 학술ㆍ연구 집단이다. 집현전은 세종 4년 10여 명을 필두로 5년에는 사관(역사를 기록하던 관리) 업무까지 맡고, 18년에 이르러서는 그간 근무자가 100여 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과학자 22명이 있던 것을 보면 단순히 의례ㆍ법제 연구기관이 아니었고 인문과 과학의 종합 연구기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세종은 생각하고 질문을 하고 토의를 통해 답을 구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법제화를 수행한 임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