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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먼 거북이가 통나무 구멍에 목이 낄 확률

무심거사의 단편 소설 14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큰 바다에 눈이 먼 거북이가 한 마리 살고 있었대. 바다 가운데에 구멍 뚫린 통나무 하나가 떠서 물결 따라 움직이고 있었고. 거북이는 100년에 한 번씩 물 위로 떠올라 머리를 내미는데, 우연히 거북이 머리가 나무 구멍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거북이가 통나무 구멍에 용케도 목이 낄 확률만큼이나 어렵게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만난다는 것이야. 그러니 내가 아가씨를 만난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인연인지 짐작할 수 있겠지?”

 

 

“재미있는 이야기인데요. 절에 나가세요?”

“아니, 내가 불교에 대해서 무얼 아나. 그저 들은 이야기이지.”

“그러면 인연을 끊기는 쉬운가요?”

“그게 쉽다면 나도 처자식 다 버리고 벌써 산으로 들어갔지. 요즘처럼 사는 게 복잡하고 힘들어서야 일찍부터 중이나 될 걸 그랬다는 생각도 난단다.”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아가씨가 입을 열었다.

“김 과장님. 저 석 달 후에 결혼하기로 했어요.”

“그것 참 잘 됐군. 여자는 나이가 차면 당연히 결혼을 해야지. 아무튼 축하해.”

“감사합니다.”

 

김 과장은 말은 축하한다고 했지만, 왠지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남자의 심리란 묘한 것이어서 자기 여자가 아닌데도 알던 여자가 시집간다고 하면 뭔가 잃어버린 것처럼 섭섭한 생각이 드나 보다. 김 과장의 속셈으로는 아가씨와 몇 번 더 만나 철 늦은 데이트를 즐길 계획이었는데 모두 허사가 되어버린 것이 아까웠다.

 

사실 혼인한 뒤 10년이 넘었고, 그동안 외길로만 걸어왔던 김 과장은 겉으로는 유능한 회사원이고 가정에 충실한 가장이었지만 요즘에는 때때로 연애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지금의 아내야 왼쪽 발바닥에 점이 있는 것까지 다 알고 있고, 아내의 사촌 언니가 오리처럼 걷는다는 말도 수십 번은 들었으리라. 이른바 권태기인가?

 

혼인 뒤 3년 정도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무미건조한 일상이 계속된다. 아내와 외식해도 별로 할 말도 없고 재미도 없고. 괜히 옆자리에 앉은 젊은 아가씨를 바라보다가 아내에게 핀잔을 듣는 때도 있다. 사실 말은 그렇게 안 하지만 ‘나도 외도라는 걸 한 번 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외도라는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면 생활에 활력이 생길까? 가정 파탄이 날까? 그런 이야기를 언젠가 넌지시 박 부장에게 비치니 박 부장이 말했다.

 

“외도? 그것참 좋지요. 그런데, 당신 돈 벌어 두었소? 당신 나이에 외도하려면 돈이 좀 있어야지. 여자 만나서 옛날처럼 짜장면 먹고 믹스커피 마실 수 있소? 그럴듯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호텔 커피숍에서 자메이카 커피 정도는 마셔야지요. 가끔 보석도 선물하고, 여자와 함께 1박 2일 국내 여행이라도 한 번 가야 할 것 아니요? 여행 가서 일이 잘되면 여자 미용비도 듬뿍 주어야 좋아할 텐데요. 젊은 여자가 당신 돈 보고 달라붙지 무얼 보고 따라오겠소?”

 

“젠장,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남녀 사이 사랑에도 돈이 끼어드니 어디 돈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맛 나겠습니까? 그렇지만 순수한 연애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부담 없이 만나 마주 보며 대화도 하고 가끔 식사나 같이하는 그런 관계 말입니다.”

 

“하하하, 플라토닉 러브 말이요? 남녀관계란 무릇 자석의 남극과 북극 같은 이치요. 붙든 지 떨어지든지 둘 중 하나지 어정쩡하게 가까운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지요. 아니 자연법칙에 어긋나요. 김 과장도 잘 알지 않소. 자연법칙에는 예외가 없다는 것을.”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를 굴리던 김 과장이 현실로 돌아와 그래도 미련을 못 버리고 엉큼하게 제안했다.

“미스 나, 다음 주 토요일 다시 만날까? 이번에는 내가 점심을 사지. 빚은 갚아야 하지 않겠어?”

“네 좋아요.” 아가씨는 즐거운 표정으로 승낙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