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팔 한복, 꼭 필요한가?
생각을 달리하면 긴팔한복도 시원하고 건강에 좋다
옷이란 무엇인가? 옷의 기능과 가치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 옷을 입으면서도 이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해본 적은 별로
없어 보인다. 굳이 그렇게 고민할 거리도 아닌 탓이기도 하다. 그저 남이 입으니까 입고,
남이 멋지다니까 입고, 남에게 뒤질세라 입고 그런 것은 아닐까?
한 학생과 한 반팔 한복에 대한 토론
나는 반팔 한복에 대해 한 학생과 온라인 토론을 벌린 적이 있었다. 물론 그 학생이
먼저 “여름생활한복- 반팔은 어떨까?”라는 제목으로 누리집의 게시판에 글을 올린 것이
발단이 되었지만 몇 번 오고간 진지한 토론은 나에게도 여러 가지를 생각게 해주는 일이었다.
나이 어린 그 학생은 오히려 어른들보다 더 수준높은 논쟁을 벌렸다.
먼저 그 학생이 도발적으로 제기한 이야기는 이렇다.
“생활한복은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거추장스럽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는 한복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하여 만든 것이 아닌가요? 그러한 생활 한복에게 격식을 따지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접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반팔도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국회에 꼭 양복만 입고 등원하는 모습도 격식에 끼워 맞추는 이상한 모습으로 보인다는 이야기이다. 고등학교 시절 외부초청강사로 오신 선생님이 청바지를 입었다고 비아냥거린 교장선생님께 섭섭한 마음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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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학생의 논리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많은 사람들이 격식의 틀에서 꼼짝 못하고 있어서 세상은 진보나 개혁보다는 보수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년에 유시민의원이 국회에 캐쥬얼 차림으로 등원한 것을 대다수의 사람들은 튀기 위한 쇼로 몰아갔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행동이 격식을 깨는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는 말도 해주었다.
세상은 다른 사람을 옷차림처럼 그 사람을 꾸미는 것으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려 든다. 내용보다는 껍데기를 더 중요시 여기는 이런 나쁜 풍토로 인해 한편에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다.
어떤 국회의원이 경차를 타고 등원하니까 경위들이 나와서 일단정지를 시킨 일이나 경차를 타고 호텔에 가니까 빨리 차를 치워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세상 사람들의 잘못된 편견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올바른 세상이라면 절대 격식에 억매어서는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만 이 '격식'이라는 것도 다른 방향으로 이해하면 조금은 필요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집에서 잠옷 바람으로 있다가 손님이 왔을 때 그대로 손님을 맞았다면 이는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최소한의 격식을 지키지 못한 일일 것이다.
옷의 기능과 가치
여기서 우리는 옷의 기능과 가치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자. 옷은 건강, 아름다움, 품위를 얻기 위한 사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추위를 막아주고, 몸을 따뜻하게 하여 건강하게 해주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 디자인과 색깔을 통해 각자의 개성을 살려주고, 아름다움을 드러내기도 하며, 가릴 것을 가려주면서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표시하고 격식을 갖춰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3가지 기능이 모두 살아 있어야 훌륭한 옷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명품을 입어야 예의를 갖추는 옷이 되는 것은 아니다. 허름한 옷이라도 깨끗하게 빨고, 단정히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집에서 편하게 격식을 갖추지 않은 채로 지낸다.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출을 하면서 속옷만 입고 나갈 수는 없지 않을까? 나는 그런 점들을 강조한다.
그 학생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제가 학교 다닐 때의 일이예요. 시인 소설가 선생님들께서 일주일에 두 번씩 수업을 하시러 학교에 오셔요. 가끔씩 야외수업도 하고, 보통은 둥그렇게 앉아 서로의 작품을 읽고 합평을 하지요. 선생님들께서는 대부분 청바지를 입으시고 심지어는 고무줄 바지를 입고 오시는 분도 계세요. 운동화는 말 할 것도 없지요. 그래도 잘만 수업 하시고, 옷에 뭐 묻을까 염려하지 않고 잔디밭에 앉아 저희와 시와 소설을 이야기해요. 가끔은 잔디밭을 뒹굴기도 하지요. 그럴 때 우리와 선생님은 하나가 된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격식보다는 학생들과 하나가 되어 수업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바람직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여기에 다른 의미를 두고 생각해 볼 일이 있음을 말한다. 누구나 쉽게 입는 청바지를 입었다고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청바지가 어떤 옷인지에 대해 아무런 평가와 반성없이 입는 것도 생각해봐야 될 일이라고 말이다.
청바지는 미국 서부 개척 당시 행상을 하던 리바이스라는 사람이 천막천을 이용해서 만든 옷이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인기가 있었던 할리우드의 서부영화에서 제임스 딘과 존 웨인이 입고 나옴으로 해서 폭발적인 인기로 다가온 옷임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바지를 참 편한 좋은 옷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청바지야말로 배척해야할 옷으로 주장한다. 그 이유는 건강과 문화를 파괴시키는 옷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온갖 병에 걸려 죽어 간다. 그런데 청바지처럼 꽉 끼는 옷으로 몸에 스트레스를 준다면 사람들의 건강은 살려낼 길이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건강에 관한 한 사면초가로 몰리고 있음이다. 그래서 우린 몸에 여유를 주는 한복생활로 돌아가는 일이 건강에 절대적임을 강조한다. 청바지가 편하다는 오해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남들이 모두 입으니 쉽게 따라서 입는 어리석음을 우린 피해야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또 청바지는 어쩌면 미국의 패권주의 문화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미국은 남의 땅에 들어가서 청바지를 입고,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총으로 마구 쫒아내고 전멸시켰다. 지금도 그들은 아프카니스탄에, 이라크에 마구 쳐들어간다. 허울좋은 이유를 대고 있지만 많은 생각있는 사람들은 이라크전쟁을 폭력, 패권전쟁이라고 규정짓는다. 따라서 나는 맥도날드 햄버거, 코카콜라와 함께 청바지는 세상에서 몰아내야할 것들이라 외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내가 지나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세상의 사물들이 진정 사람들을 위해 올바르게 존재하기를 바란다. 그것들이 조금이라도 사람들을 헤치는데 이용된다면 이는 세상에 존재해야할 값어치가 없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옷은 습관이다.
또 옷은 의식주가 모두 습관인 것처럼 역시 습관이다. 어떤 모습으로 관습이 되느냐에 따라 생각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나처럼 십년을 넘게 한복만 입고 지내온 사람들은 긴팔을 입는 것이 굳이 덥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햇볕을 차단해주어 선선하다는 느낌을 갖기도 하며, 피부암을 일으킨다는 자외선을 차단해주기에 아주 좋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피부과 의사들도 자외선 차단을 위해 긴팔을 권장하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여름철 갑자기 비가 내리면 모두들 오싹 추위를 느끼지만 긴팔을 입고 있으면 추위를 훨씬 덜 느끼는 장점을 지니기도 한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나름이다. 우리 민족의 큰 철학자이신 원효대사는 컴컴한 밤 무덤 속에서 해골바가지 속의 썩은 물을 아주 맛있게 먹은 다음 아침에 일어나서 그것을 보고는 구역질을 해댔다는 이야기를 우린 들었다. 그리고 나선 사물은 변한 게 없는데 사람의 마음이 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후 원효대사는 우리의 큰 철학자가 되었다.
긴팔한복을 덥다고 생각하면 언제나 덥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반팔을 입던, 팬티만 입고 있던 덥다고 느끼면 언제나 더울 수밖에 없다. 늘 시원한 물속에서 차가운 음료수나 마시고 있으면 모를까 그 이치는 변할 수 없는 것이다.
반대로 똑같은 사물인데도 나처럼 시원하다고 생각하면 시원한 것일 뿐이다. 우리 그렇게 생각을 한번 바꾸어 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고루하다고만 치부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양복엔 반팔이 있어야 한다고 우기지 않는 것처럼 제발 한복에도 반팔이 있어야 한다는 오해를 접어주었으면 한다. 올 여름엔 우리 모두 시원한 긴팔한복을 입고 여름나기를 해보면 어떨까?
2004년 06월15일 [04:45] ⓒ 뉴스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