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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귤나무에 구멍을 뚫고 후추를 집어넣어

《한국인이 알아야 할 한국문화 이야기》에서 나오는 백성의 눈물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57]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해마다 가을이 되면 관에서 대장을 가지고 나와 그 과일 개수를 세고 나무둥치에 표시해 두고 갔다가 그것이 누렇게 익으면 비로소 와서 따 가는데, 혹 바람에 몇 개 떨어진 것이 있으면 곧 추궁하여 보충하게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으면 그 값을 징수한다. 광주리째 가지고 가면서 돈 한 푼 주지 않는다. 또 그들을 대접하느라 닭을 삶고 돼지를 잡는다.”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이 펴낸 《한국인이 알아야 할 한국문화 이야기》에서 인용하는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무슨 과일이기에 관리가 이렇게 백성을 닦달하는 것일까요? 바로 제주도 귤과 유자입니다. 지금이야 흔한 귤이지만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귤은 정말 귀한 과일이지요. 그렇기에 제주도에서 귤이 진상되면 임금은 ‘황감제(黃柑製)’라는 임시과거까지 열었다는군요.

 

그런데 이런 귀한 귤을 가져 가면서 돈 한 푼 주지 않는군요. 귤을 거저 가져가는 것은 세금의 일종인 공납이라고 하더라도, 공납 징수하러 와서는 백성이 대접하느라 내놓는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날름날름 거저먹어요? 에라이! 그리고 귤이 바람에 떨어지면 그건 징수 대상에서 제외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이를 보충하게 하고, 못하면 그 값을 매긴다? 완전히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군요. 조선시대 공납의 폐단은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산도 목민심서에서 이를 얘기하는 거고요. 김 소장님은 백성들이 이런 횡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눈물겨운 행동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벼슬아치 횡포에 그 백성은 몰래 나무에 구멍을 뚫고 후추를 집어넣어 나무가 저절로 말라 죽게 하고, 그루터기에서 움이 돋으면 잘라버리고 씨가 떨어져 싹이 나면 보이는 대로 뽑아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관의 관리대장에서 빠지려고 하는 것이지요.”

 

 

이러니 귤농사가 제대로 되겠어요? 그래서 다산은 관리의 횡포가 그치지 않는다면 몇십 년 안 가서 우리나라 귤과 유자는 씨가 마를 것이라고 걱정했답니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귤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의 다른 특산물에서도 이런 관리들 횡포를 벗어나기 위해 그 특산물을 몰래 고사시키는 얘기들이 나옵니다.

 

방납이란 제도가 있습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정부는 백성들의 사정은 아랑곳없이 정해진 양을 납부하게 합니다. 그렇다고 없는 공물을 어디서 채운단 말입니까? 이때 업자들에게 공물을 사서, 이를 대신 납부하는 제도가 방납입니다. 이때 방납업자들은 농민들의 곤궁한 상태를 이용하여 폭리를 취합니다. 심지어는 관리들과 짜고 농민이 공납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곧 방납업자와 짠 관리가 농민이 납부하는 공물을 ‘품질이 좋지 않다’, ‘썩었다’ 등으로 이리저리 핑계를 대고 퇴짜를 놓습니다. 그러면 그 농민은 울며 겨자먹기로 방납업자를 찾아 비싼 값을 주고 공물을 사서 납부해야 합니다.

 

그러면 폭리 취한 대금은 그놈의 관리와 방납업자가 나누어 먹는 것이지요. ‘퇴짜 놓는다’라는 말이 관리가 납부 공물에 붓글씨로 ‘退(퇴)’자를 써서 물리치는 데서 나온 말입니다. 방납이란 단어도 공납을 방해한다는 ‘방납(防納)’이란 말이 굳어진 것이구요.

 

하여튼 《한국인이 알아야 할 한국문화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만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백성들의 슬픔과 눈물도 알게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