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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벚꽃을 제대로 보려면

이제라도 편하게 즐기며 볼 수 있는 진정한 봄이 되기를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44]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4월이 되면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입에 달고 나오는 표현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영국시인 T.S. 엘리엇의 시 문장이고 또 하나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한시(漢詩) 글귀이다.

 

엘리엇의 시는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일깨운다."로 묘사되는 것에서 보듯, 2차 대전 뒤 처음 맞는 4월에 전쟁으로 황폐해진 유럽의 땅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땅속에서 몹시 애를 써야 하기에 4월은 무척 힘든 나날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썼다고 하니 우리가 생각하는 ‘잔인함’과는 어감이 달라도 많이 다르지만, 뭐 4월에 사람이건 자연이건 어찌할지 고민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굳이 본뜻이 무엇인지를 따질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더욱 실감이 나는 것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곧 계절이 봄으로 접어들었는데도 영 봄 같지 않다는 말일 것이다. 지난달 3월의 일기불순으로 벚나무들이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해 각 지방에서 마련한 벚꽃 축제가 영 빛이 나지 않은 것이 그 주된 이유일 것이지만 또 다른 이유로는 정부가 의대생 정원을 늘리려고 한 것에 대해 의료계가 반발해 무한 대립을 하고 있는 것 때문이라 하겠다. 그 때문에 최근 사람들은 봄의 기운을 마음껏 보고 즐기지 못한 채로 4월을 맞은 것이 아닌가?

 

사실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굳이 봄꽃 감상이라고 하면 집 안에서는 매화를 키웠지만 집 밖에서는 개나리, 진달래가 으뜸이었다. 개나리나 진달래가 주는 청신하고 담담한 맛은 그대로 우리 민족의 심성을 형성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곳곳에 벚꽃을 심어 그것이 우리에게도 벚꽃 놀이로 발전(?)된 것은 익히 아는 바이지만, 전에는 일본의 놀이문화를 우리가 왜 따라 하느냐고 항의도 하곤 했지만 워낙 곳곳에 벚나무가 많이 심어지고 화려한 꽃을 피우니 그런 목소리는 많이 사그라졌고 이제는 벚꽃 구경이 봄나들이의 대세로 올라가는 현상을 무시할 수 없겠다.

 

 

 

원래 일본인들은 벚꽃 놀이를 하나미(花見)라고 하면서 활짝 핀 꽃나무 밑에 화려한 옷을 입고 게다를 끌고 가서 음식이나 술을 펼쳐놓고 즐기며 놀곤 한다는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보는 벚꽃 놀이는 일본과는 달리 평상복에 나들이 정도를 하는 것이니 일본문화가 어쩌니저쩌니하는 것은 앞에서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규정한 T.S.엘리엇의 원 의도가 무엇인지를 따지는 것처럼 별 의미는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일본 에도(江戶)시대의 국학자인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가 ​"일본의 대화혼(大和魂)은 아침 햇빛에 향기 나는 산벚꽃이어라(​敷島の大和心を人問はば朝日に匂ふ 山桜花かな)"라고 한 이후 일본 곳곳에서 활짝 피었다가 찬 비나 바람을 맞아 갑자기 다 떨어지는 벚꽃이 자기들의 민족혼을 상징한다고 믿는 생각은 여전히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 속에 담긴 일본만의 문화적 속성, 말하자면 '칼의 문화'에 담긴 일본인들의 의식이나 자세는 우리와 다르긴 다르다. 그러한 칼의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발상법을 전하는 일화가 있다.

 

일본의 유명한 선승인 이큐 선사(一休禪師 :1394∼1481)가 길을 가는데 어떤 자가 숲속에서 툭 튀어나와 다짜고짜 물었다. "불법은 어디에 있는가?"

이큐가 "가슴 속에 있다"라고 대답하자 그는 단도를 뽑아 들고 "그렇다면 이것으로 네 가슴을 열어 진짜인지 확인해 봐야겠다"라며 덤볐다고 한다.

그러자 이큐는 담담히 시 한 수를 들려준다.

"때가 되면 해마다 피는 산벚꽃 벚나무를 쪼개보라 거기 벚꽃이 있는가!“

 

존재의 실상을 깨닫게 하는 촌철살인적인 말이지만 거기에 칼이 등장한다는 것이 봄에 듣기에는 조금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근 우리나라 남쪽에는 매화와 산수유 등의 군락을 의도적으로 조성해 벚꽃 구경보다도 먼저 우리들의 봄꽃놀이로 정착해 가는 것은 그러한 일본문화에 대한 선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올봄 우리 사회를 흔드는 의사 증원문제로 자칫 이러다가 이큐 선사의 일화처럼 벚꽃을 확인하려고 벚나무를 쪼개는 우(愚)를 범하는 것은 아닌가 불안이 생기기도 한다. 어떠한 때가 되든 극한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나중에 감당할 수 없는 사태를 부를 수 있는 만큼 관련 당사자들이 합리적인 선에서 대화와 타협을 했으면 하는 바람은 필자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 4월은 잔인한 달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4월은 희망의 달이어야 한다. 6.25 전쟁이 막 끝났을때에 마침 《학생계》라는 잡지가 창간되었고 이때 시인 박목월(1915~1978)은 <4월의 노래>라는 시를 발표한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을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4월은 꿈의 계절이요, 무지개의 계절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문턱인 이달에 우리는 두꺼운 겨울 껍질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기운을 받아 나가야 한다. 4월이 잔인한 달이 아니라 희망의 달이 될 수 있도록 서로 대화하고 타협해야 한다. 대화를 통해 우리 모두 승복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내 이익만을 위해 국민을 희생할 수는 없다. 그것이 ‘잔인한’ 4월, 봄 같지 않은 봄을 맞는 우리들의 혼란스럽고 걱정되는 마음이다. 올해는 벚꽃이 늦어져 이제 피고 있다고 하는데 이제라도 편하게 즐기며 볼 수 있는 진정한 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