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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혁의 기획칼럼 'K-POP 서곡'

‘대한민국 첫 록 음반’ 신중현의 <애드 훠 1집>

임세혁의 기획칼럼 1

[우리문화신문=임세혁 - 송곡대학교 교수]

 

2012년 10월 6일 자 빌보드 Hot100 순위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2위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8년 정도가 지난 2020년 9월 5일 방탄소년단의 <Dynamite>가 빌보드 Hot100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 우리랑은 다른 세계라고 생각했던 미국의 빌보드는 이제 한국 음악 시장의 가시권에 들어오게 되었고 김치와 태권도만이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과거와 달리 K-POP이라는 우리의 대중음악으로 외국에 우리를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K-POP 프리퀄>은 아무것도 없는 맨땅 위에 치열하게 음악의 탑을 쌓아서 오늘에 이르게 만든 음악 선학들의 이야기다. <필자의 들어가는 말>

 

한국 대중음악에서 가장 처음 시작점을 어느 부분으로 잡을 것인가는 항상 고민되는 부분 가운데 하나다. 고운봉과 현인을 비롯한 해방 전후에 대중가요 활동을 시작하신 분들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아니면 한국 전쟁 이후 미 8군 연예단 출신 음악가들부터 소개해야 하는지는 개인적으로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수반하는 선택 문제이다. 하지만 현재 대중음악의 원류가 미국의 블루스 음악을 뿌리로 하는 점을 볼 때 한국 대중음악의 시작점은 미 8군 연예단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파병된 자국의 병사들을 위해 부대를 철저하게 미국 스타일로 만드는 미군의 정책에 따라 미군 부대 안의 풍경은 주둔지를 막론하고 미국에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부대 안에는 병사들을 위한 부대 건물을 비롯하여 군인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식당과 마트 그리고 학교들이 존재하는데 유흥을 위한 클럽들도 있었다. 문제는 이 클럽에서는 본국에서 하던 것처럼 미국의 음악가들을 데려다가 운영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초창기에는 마릴린 먼로나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슈퍼스타들로 구성된 위문 공연단을 파견하여 병사들이 가지고 있던 유흥의 욕구를 해결하려고 했으나 이 정도로는 주한 미군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워서 나온 대안이 한국의 실력 있는 음악가들을 섭외하여 공연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음악가들의 처지에서도 8군 무대는 전쟁으로 기반 자체가 없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음악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창구였으며 멸시받는 일명 ‘딴따라’가 아니라 음악가로서 대접받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좋은 조건에 비례해서 음악가들에게 원하는 능력치가 상당했는데 첫 번째로 미국 현지에서 유행하는 음악을 그대로 연주할 수 있는 연주력, 두 번째로는 관객들의 요구조건에 바로 대응해 줄 수 있는 임기응변력, 세 번째로는 다양한 관객들의 인종과 연령대에 맞춘 곡목 그리고 네 번째로는 무대 위에서의 쇼맨십 등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 배출된 8군 연예단 출신 음악가들은 이후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 큰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길옥윤, 박춘석, 김희갑, 한명숙, 현미, 최희준, 패티김, 윤항기, 조영남, 조동진 등이 미 8군 무대 출신이며 2023년 MBN에서 방영한 <불꽃밴드>에서 좋은 공연을 보여주었던 밴드 ‘사랑과 평화’의 초창기 단원들과 가왕 조용필 또한 미 8군 무대 출신이다.

 

하지만 이 내로라하는 모든 이름 가운데서 한국 대중음악에 가장 상징적인 인물을 한 사람만 꼽자면 나는 단연코 신중현을 꼽을 것이다. 한국 록 음악의 대부라는 식상한 표현으로는 그의 위대함을 전부 담을 수 없음은 물론 대중음악 전체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음악가인 신중현은 미 8군 무대 출신의 대표적인 예술가다.

 

 

50년대 말부터 미 8군 무대에서 ‘히키 신’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던 신중현은 누군가에게는 아시아 처음으로 미국의 기타회사인 Fender(펜더)사에서 시그니쳐 기타를 헌정 받은 위대한 기타리스트로, 누군가에게는 대한민국의 대표 록 밴드 ‘시나위’의 리더 신대철과 밴드 ‘서울 전자음악단’의 신윤철, 신석철의 아버지로, 또 누군가에게는 <님은 먼 곳에>, <커피 한잔>, <리듬속의 그 춤을> 같은 히트곡을 작곡한 대중음악 작곡가로 기억되겠지만 나에게 신중현은 대한민국 첫 록 앨범인 ‘애드 훠 1집’의 전곡을 작사 작곡한 한국 대중음악계의 위대한 선구자로 기억되고 있다.

 

시기상으로만 볼 때 대한민국 첫 록 음반은 1964년 7월에 발매된 것으로 추정되는 ‘키보이스’의 데뷔 음반이다. 사실 예전에는 ‘한국 첫 록 음반’ 타이틀을 1964년 12월에 발매되었다고 알려진 ‘애드 훠’의 1집이 가지고 있었는데 2020년에 ‘키보이스’의 1집이 발견되어 재발매가 되면서 당시 단원의 증언과 고증을 바탕으로 1964년 7월에 발매되었다고 상당 부분 입증되었기 때문에 ‘한국 첫 록 음반’이 <애드 훠 1집>인지 <키보이스 1집>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13곡 가운데 7곡을 번안곡으로 채운 ‘키보이스’의 1집보다 앨범의 전곡을 신중현이 작사 작곡한 <애드 훠 1집>에게 ‘대한민국 첫 록 음반’이라는 영예를 주고 싶다.

 

신중현의 음악 인생에서 미 8군 연예단 무대가 1장이라면 2장의 첫 시작을 장식하는 밴드가 애드 훠이다. 미 8군 무대에서는 높은 인기를 누렸지만 결국은 남의 음악을 연주하는 카피밴드일 뿐이라는 생각에 신중현은 자신이 직접 한국적인 록 음악을 시도하기 위해 동료들을 모아서 일반 무대로 진출하게 된다. 이렇게 모은 단원들은 신중현(기타, 보컬), 서정길(리드 보컬, 리듬 기타), 한영현(베이스 기타), 권순근(드럼)으로 구성되었으며 신중현의 자작곡을 가지고 1964년 12월에 데뷔 음반 <The Add 4 First Album>을 발매하게 된다.

 

모두 14곡이 수록이 되어있는 이 음반의 표제곡은 한국 음악 첫 오리지널 록 음악으로 인정되고 있는 명곡 <빗속의 여인>인데 발매했던 1964년에는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의 엄청난 인기에 밀려서 발매 당시에는 큰 인기를 누리지 못했고 오히려 애드 훠 해체 이후에 주목받은 곡이다. 당시 한국에서 음악에 대한 인식은 클래식은 고급, 대중음악은 유행가로 양극화가 되던 시기였고 대부분의 일반 대중은 당시는 유행가로 불리운 트로트를 주로 들었기 때문에 애드 훠의 록 음악은 주목받기 힘든 음악 장르였다.

 

 

애드 훠는 앨범 발표 후에 지방의 시민회관들과 서울의 음악 감상실 등에서 공연을 이어갔지만, 당시 경제적인 문제에 봉착하여 어쩔 수 없이 가수 김영국의 세션그룹 역할까지 하게 된다. 그렇게 신중현의 실험적인 시도는 실패로 끝을 맺는 것처럼 보였다.

 

신중현의 음악이 일반 대중들에게 제대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68년부터이다. 애드 훠의 실패로 미 8군 연예단으로 돌아가서 악단 기타리스트로 생활하던 신중현은 1968년에 배인순, 배인숙 자매로 이루어진 그룹 펄 시스터즈에게 곡을 주게 되는데 애드 훠 1집에 수록되어 있었던 <내 속을 태우는구려>라는 곡을, 제목을 바꿔서 준다. 이 바뀐 곡의 제목이 <커피 한 잔>으로 당시 우리나라 음악으로는 독특하게도 전 세계적인 록 음악의 경향이었던 사이키델릭 록을 차용했던 곡이였다.

 

펄 시스터즈의 히트로 자신감을 얻은 신중현은 다시 미 8군 연예단을 나와서 실력있는 가수들에게 곡을 줘서 데뷔시키는 프로듀서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커피 한 잔>의 펄 시스터즈, <거짓말이야>의 김추자, <봄비>의 박인수, <미련>의 장현, <바람>의 김정미 등이 일명 ‘신중현 사단’이라 불렸으며 그렇게 신중현은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까지 한국의 대중음악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빗속의 여인>이 다시 재평가받게 된다. 김추자와 장현 같은 신중현 사단의 가수들뿐 아니라 나훈아와 장윤정 같은 트로트 가수들, 그리고 김건모까지 리메이크 대열에 참여하면서 신중현 사단의 첫 곡은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명곡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실패로 마무리된 줄 알았던 과거가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찬란하게 빛나는 영광의 길로 들어서는 위대한 시작으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여담 1

2008년 무렵 유튜브에서 ‘Korean Drummer takes the show’라는 제목으로 1990년 캐나다 토론토의 케이블 TV채널의 한인 프로그램에서 여성 보컬이 있는 밴드가 김수희의 <너무 합니다>를 부르는 영상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노래 자체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었는데 노래 중간부터 드러머가 갑자기 엄청난 액션을 선보이며 박자를 헤비메탈 드러머 저리가라 할 정도의 속주로 달려버리는 바람에 나머지 멤버들이 당황하여 연주를 말아먹은 영상인데 이 드러머가 애드 훠의 드러머인 권순근이다. 이 영상의 컬트적인 인기에 힘입어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게 되었고 유튜브에 캐나다로 이민을 간 권순근의 근황과 연주 영상들이 올라오게 된다.

 

권순근은 82살의 나이로 <Canada’s Got Talant>에 출연하여 ‘Twisted Sister’의 <We’re not gonna take it>에 맞춰 특유의 액션이 큰 드럼 연주를 선보였으며 만장일치로 1라운드에 통과하는 영상이 2024년 4월에 방영되었다.

 

여담 2

2015년에 버클리 음대의 총장이었던 Roger Brown이 학교 관계자들과 함께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2012년에 발매되어 빌보드 Hot100 순위 2위까지 올라갔던 싸이의 <강남스타일> 덕분에 한국에서 버클리 음대의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져서 당시 언론사에서 주최한 포럼에 참석차 방문을 한 것이었는데 이때 해마다 졸업식에 유명 음악가들을 초청해서 수여하는 명예박사 학위를 한국 음악가에게도 수여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학교 측에서 나왔다.

 

 

이 문제로 동문들 사이에서 몇몇 음악가들을 추천했는데 대부분이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들이어서 의견 일치가 쉽지 않았다. 그때 내가 Roger Brown 총장에게 추천했던 우리나라 음악가가 신중현이었다. 설마 내 의견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2017년 버클리 졸업식에서 라이오넬 리치와 함께 명예박사를 받은 첫 한국인은 신중현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 큰 뉴스거리였는데 당시 한국은 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슈로 인해서 엔간한 문제는 뉴스 귀퉁이에도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상징성에 비해 크게 얘깃거리가 되지 못했다. 오호 통재라...

 

 

   임세혁 예술학 박사

              송곡대학교 K-POP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