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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샘’과 ‘우물’

[우리말은 서럽다 36]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우리나라는 지구라는 이 땅덩이 위에서 물이 가장 좋은 곳이다. 물을 받아 담아 두는 흙과 돌과 바위가 목숨에 좋은 갖가지 원소를 품고서 물을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겨레는 물을 먹고 쓰려고 마련한 자연의 그릇도 여러 가지를 썼다. 그런 그릇 가운데 가장 많이 쓴 것이 ‘샘’과 ‘우물’이다. 그러나 요즘은 샘과 우물이 삶에서 밀려나 자취를 감추려 한다. 삶의 전통을 지키려면 말의 박물관이라도 서둘러 만들어야 할 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샘’을 “물이 땅에서 솟아 나오는 곳”이라 풀이하고, ‘우물’을 “물을 긷기 위하여 땅을 파서 지하수를 괴게 한 곳”이라 풀이해 놓았다.

 

‘우물’을 ‘물을 긷기 위하여 괴게 한 것’이라 하면, 먹으려고 긷는지 쓰려고 긷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게다가 ‘지하수’라는 낱말의 뜻을 “빗물이 땅속에 스며들어 흙과 돌과 바위 사이 빈틈을 채우고 있는 물”이라 한다면, “물을 긷기 위하여 땅을 파서 지하수를 괴게 하는 곳”은 ‘우물’이 아니라 ‘둠벙’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둠벙’을 “웅덩이의 충청도 사투리”라 했지만, 둠벙은 삼남 지역에서 입말로 두루 쓰던 낱말이고, 웅덩이와는 아주 다른 것이다.


 

 

‘샘’은 물이 땅에서 절로 솟아나 모이는 곳이다. 샘물은 본디 허드레로 쓰지 않고 먹기만 했다. ‘우물’은 사람이 땅을 깊이 파서 찾아낸 샘에서 솟아난 물을 가두어 놓는 곳이다. 우물물은 본디 먹으려는 것이지만, 넉넉하여서 허드레로 많이 쓰기도 했다.

 

‘둠벙’은 사람이 땅을 파서 물을 가두어 놓는 곳이지만 솟아나는 샘을 찾지는 못한 곳이다. 둠벙물은 본디 농사나 허드렛물로만 쓰려는 것이고 먹으려는 것은 아니기에 절대로 먹지는 않았다.

 

‘웅덩이’는 사람에게 물을 쓰려는 뜻이 있건 없건 움푹 꺼진 땅에 절로 빗물이 고인 곳이다. 웅덩이에 고인 물은 허드레에 쓸 수도 있지만 본디 사람이 쓰려고 뜻한 것은 아니고, 따라서 사람이 먹을 수도 없다. 우리 겨레는 이처럼 낱말 뜻을 알뜰하게 가릴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낱말을 만들어 쓰며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