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81)
장다리는 한철이요, 미나리는 사철일세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이라
메꽃 같은 우리 딸이 시집 삼 년 살더니
미나리꽃이 다 피었네
표독한 장희빈, 천사 같은 인현왕후, 사랑에 눈멀어 부인을 내치는 숙종…
어느덧 역사를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은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 선명한 선악의 구도는 어쩔 수 없는 흡인력이 있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대립이 수많은 사극에서 무수히 변주되는 까닭이다.
인현왕후 폐비는 당대에도 참 충격적인 사건이기는 했다. 조선 개국 이래 왕후가 폐출되어 사가로 나가게 된 것은 처음이었으니, 당시 지식인들과 관료들은 군주의 독주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젊은 임금 숙종의 혈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임생이 쓴 이 책, 《인현왕후전》은 계축일기나 한중록과 더불어 대표적인 궁중문학으로 꼽히는 소설이다. 작자는 인현왕후를 모시고 있던 궁인이라는 설도 있고, 왕후 폐출에 반대하던 박태보의 후예나 왕후의 친정 가문에서 지은 것이라는 설도 있다.
줄거리는 대체로 다 아는 바다. 인현왕후 민씨는 숙종 당시 병조판서이던 민유중의 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아름답고 덕이 있어 국모감으로 불렸다. 숙종의 첫 번째 왕후 인경왕후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자, 그 뒤를 이어 왕후로 간택되었다. 궁에 들어온 지 오랜 세월이 지나도 후사를 보지 못해 근심하던 차에, 숙종은 역관의 딸로 궁에 들어온 장씨의 미색에 반해 왕후를 멀리하였다. 장씨는 성품이 간악하여 인현왕후와 숙종 사이를 이간질했고, 마침내 왕자를 낳자 더욱 기고만장하여 갖은 모함을 일삼았다.
이에 숙종도 어진 아내를 미워하게 되어 폐출을 결심한다. 인현왕후를 지지하던 당파인 서인 측에서는 오두인, 박태보 등 80여 명이 연합 상소를 올려 폐출을 반대한다. 분노한 숙종은 본보기로 박태보를 가혹하게 고문하고 진도로 귀양보낸다. 너무나 참혹한 고문을 당한 박태보는 진도까지 가지 못하고 고문 후유증으로 숨지고 만다.
(p.61)
청산의 자부송아, 너는 어이하여 누워 있는가.
미친 듯한 바람을 이기지 못하여 뿌리가 뽑히어 누워 있노라.
가다가 훌륭한 목수를 만나거든 내가 여기 있다 전해 주구려.
박태보가 남긴 이 시에서 '청산의 자부송'은 자신이고, ‘미친 듯한 바람’은 인현왕후의 폐위를 주장하는 무리다. 박태보의 아버지 박세당은 고문으로 더는 살기 어렵게 된 아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p.61)
“아버님, 소자의 불효를 용서하소서. 그러나 의를 위한 일이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아버지 박세당이 아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너는 다시 회복될 것 같지 않구나. 여기서 조용히 죽어 네 충절을 나타내는 게 옳지 않겠느냐?”
박태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얘야, 네 충절은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아버지가 울면서 강을 건너는 것을 하염없이 지켜보던 박태보는 얼마 후 숨이 끊어졌다. 충신은 그렇게 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 것이다.
박태보의 죽음은 과연 용기 있는 것이었다. 임금이 옳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려 할 때 목숨을 내놓고 직언하는 신하, 이런 의기를 보여주는 신하가 없다면 그 왕조는 별로 희망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인현왕후는 궐 밖으로 쫓겨나고 희빈 장씨가 왕후가 되었으나, 세월이 흘러 자기 행동을 뉘우친 숙종은 장씨를 다시 희빈으로 강등시키고 민씨를 복위시킨다. 민씨의 폐비를 반대하다 쫓겨난 신하들의 관작도 복구시키고, 서인들을 등용하여 정국 전환을 꾀하는데 이를 ‘갑술환국’이라 한다. 중전에서 다시 희빈이 된 장씨는 궁 안에 신당을 차리고, 무당과 점쟁이를 불러들여 왕후를 저주한다. 그 저주가 효험이 있었던지 중전은 정말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고, 장씨는 궁 안에 차렸던 신당이 발각되면서 사약을 받고 죽는다.
이렇게 이 서사는 끝을 맺지만, 숙종의 또 다른 후궁이자 폐비 민씨의 복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 숙빈 최씨가 낳은 영조는 인현왕후를 오래도록 기억했다. 자신을 아껴주었던 인현왕후의 은혜를 잊지 않고 인현왕후의 본가에 ‘옛날을 느끼게 한다’라는 뜻의 ‘감고당(感古堂)’ 현판을 친필로 써서 내렸다.
우리 역사의 소중한 궁중문학인 《인현왕후전》은 비록 인현왕후의 시각에서 쓰였기는 하나, ‘감고당’이라는 당호처럼 ‘옛날을 느끼게 하는’ 미덕이 있다. 인현왕후는 절대 선이요, 장희빈은 절대 악이었을 리도 없건만 권선징악의 구도에 끌리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지, 숙종을 둘러싼 두 여인의 처절한 대립은 볼 때마다 흥미진진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숙종은 자의는 아니었겠지만, 한국 역사에 이런 역대급 ‘사랑과 전쟁’을 보여준 공으로 사극과 소설의 마르지 않는 샘이 되었다. 실로 피 튀기는 싸움이었다. 국모는 단순히 한 사람의 아내가 아니라 수많은 정치세력과 연결된 국정의 동반자기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렇듯 지엄한 국모의 자리에 앉기에 장희빈은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인재였던 것 같다. 사랑만으로 버티기에는 너무 막중한 자리였기에 더욱 지략과 지혜가 필요했던 것인데, 장희빈과 그녀의 측근은 그런 역경을 헤쳐 나가기엔 역부족이었다.
조용한 왕실에 불어온 엄청난 회오리를 기록한 《인현왕후전》. 과연 숙종이 이 책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혹시 무척 억울해하지는 않았을까? 책장을 덮는 순간, 숙종이 말하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같은 변론이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