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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별을 보러 몽골에 가는 이유

사막에서 비우고 다시 채울 공간을 마련하게나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60]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몽골에 왜 가려고 합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별 보러 간다는 것이리라. 우리나라가 산업화한 이후 밤하늘에도 매연이건 연무건 완전히 걷히지 않아 도시에서는 영 별을 제대로 보기 어렵고 그러기에 몽골의 사막 한 가운데에 가면 별이 잘 보일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다녀오신 분들의 증언도 많이 떠돌고 있다. 그렇지만 거기에 사실 여름이 우리나라가 무덥기에 습도가 낮은 시원한 사막의 밤을 즐기자는 것도 있음을 우리는 안다. ​​

 

 

 

몽골의 밤하늘은 어디에서 보면 좋은가? 수도인 울란바토르 일대도 이미 상당히 매연이 번지고 있어 도시 안에서는 별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수도 옆 30분을 나가면 교외에 테레지라고 하는 멋진 풍경구가 있긴 한데 별을 보는 최적지는 아니란다. 그래서 우리가 간 것은 고비사막의 한가운데다. 수도에서 포장도로로 7시간, 다시 비포장도로로 1시간, 보이는 것은 누런 모래와 자갈과 말라죽은 이끼류뿐. 길도 없는 길을 타이어 바퀴 자국만 따라 잘도 찾아 달려 마침내 천막촌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곧 석양이 진다. 밤이 오는 것이다.

 

 

 

아 드디어 밤이구나. 사막의 밤이구나. 천막 밖으로 밤이 떨어지니 별도 같이 떨어진다. 바로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다. 이럴 때 천막 안에 있을 바보는 없을 것이다. 머리 위로 카시오피아가 보인다. 큰 국자와 같은 별자리. 큰 곰이라고 하는 별자리도 보인다. 그 가운데에 영원한 2등성 북극성도 보인다. 한국에서는 멀리 북쪽 편으로 바라보던 별자리들이 바로 머리 위로 보이는구나.

 

 

우리 눈만큼 카메라가 담아내지는 못하지만 누군가가 하늘에 오랜동안 흔들리지 않고 샷을 눌러 겨우 잡아낸 이 별 사진으로 해서 우리들이 보고 느낀 몽골 사막의 밤하늘이 거짓이 아님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 것인가? 몽골 사막에서 별들을 보며 이인화의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소설 《시인의 별》이 떠올랐다. 소설 <《시인의 별》은 영원한 사랑 이야기다.

 

고려가 몽골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된 충렬왕 때, 안현이라는 청년이 살았다. 그는 시를 열심히 공부했고 과거도 합격해 벼슬길도 열렸지만, 뒷줄이 없어 설 자리가 줄어들어 가난한 시인으로 살았다. 기쁨이라면 예쁜 딸이 원나라에 공녀에 끌려갈까 봐 높은 벼슬을 한 박씨라는 노인이 자기 딸을 그에게 시집보낸 것이었다.

 

부인은 착하고 아름다웠다. 안현은 역참관리라는 아주 낮은 벼슬을 맡아 부인과 함께 대청도로 건너간다. 그런데 이 섬에 원나라 쿠빌라이의 여섯째 아들 이아치가 하필이면 그가 있는 대청도로 유배되어 온다. 여색을 심히 밝히는 망나니였던 이아치는 안현의 아내를 보자 그를 뺏기 위해 집요하게 덤빈다. 안현은 아내와 함께 섬에서 탈출하다가 붙잡혀 아내는 뺏기고 그는 죽도록 얻어맞아 거의 병신이 된다.

 

아내를 잃은 안현은 아픈 몸을 이끌고 아내를 찾기 위해 몽고 벌판으로 길을 떠난다. 온갖 고생 끝에 어느 축제장에서 지다이 영주의 부인이 되어있는 아내를 발견하고는 그 밑에 서기로 숨어 들어가지만, 아내는 모른 체 한다. 아내의 현 남편인 지다이 영주는 몽고의 권력다툼 속에서 세상을 뜬다. 이때 안현은 자기 아내에게 접근하지만, 아내는 자기 아들을 성인으로 키워야 한다며 고려로 돌아가는 것을 거절한다. 그때 안현은 어쩔 수 없이 막다른 선택을 하고 만다. ​

 

대충 이런 내용이다. 물론 픽션이지만 몽골의 별들은 그 옛날 몽골족 치하에서 가슴 먹먹한 삶을 살았던 고려인들을 떠오르게 한다. 원나라 간섭에 볼모나 죄수가 된 충숙왕 등 고려의 임금과 신하들. 전쟁 후 끌려온 백성들. 노리개가 된 여성들. 그들의 아픈 삶과 별을 보며 희망을 찾던 마음들이 저 하늘 어디론가 빛의 점이 되어 끝없이 가고 있구나.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운 그 많은 영웅들, 부와 명예와 헛된 영생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주위를 괴롭힌 사람들, 애를 끓던 연인들, 고통 속에 평생을 지낸 분들, 사고와 전쟁과 가난과 질병으로 가족을 잃고 힘들어했던 모든 이들의 자취가 저 하늘을 통해 멀리멀리 가고 있구나. 사막의 밤하늘은 그 많은 사람과의 대화의 시간이기도 하다.

 

 

밤하늘 별이 몇 개나 될까? 세어볼 수도 없는데 누군가는 10억 개라고 한다. 우리 눈엔 6천 개쯤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영상으로 담아내기는 어렵구나. 전문 사진작가들은 밤새 노출을 열어놓고 밤하늘에 마치 불이 난 듯 별을 보여주지만, 우리는 그런 기술과 노력은 못 하고 팔을 들어 한참 휴대전화를 높이 들고는 간신히 몇 장의 사진을 담아 몽골 사막의 별을 보았다고 말한다.

 

 

 

밤하늘을 통해 우리는 우주를 본다. 무한히 큰 공간(宇)과 영원한 시간(宙)을 보고 그 크기에 다시 놀란다. 우리가 보는 별은 몇십 몇백 광년 전, 어니 수 억년 전에 보내준 빛이란다. 지금도 그 별빛들이 끊임없이 반짝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어 주지만, 우리가 이 시대에 보고 듣고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미 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멀리 가버린 것 아닌가?

 

그래도 우리들은 저 별 하나에 우리 주위의 가족과 친구와 지인들과 연인을 대입시키고 전설과 신화를 만들고 기억한다. 마치 이들이 영원히 우리 하늘에서 우리를 비춰줄 것으로 믿고 살아가는 것이리라. 나도 은비령에서 밤하늘을 보며 나의 별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한 별을 더 잘 보겠다고 해발 6천 미터가 넘는 높은 고원에 최고배율의 망원경을 설치하고 어젯밤에도 별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 별 아래서 사람들은 밤새 마음을 열고 진솔한 대화를 통해 별처럼 순수한 영원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이리라.

 

우리들 칠십을 넘은 친구들 몇 명도 그렇게 사막에서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을 보냈다. 그동안 주고받은 대화는 일일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서로 가슴속에 감추었던 별을 꺼내 보였다. 그 대화들도 이미 밤하늘을 통해 또 끝없이 검고 검은 우주로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하늘은 깊고 깊어서 검은 것이로구나.

 

 

이윽고 드넓은 사막에 아침이 온다.

간밤에 있던 그많은 별은 다 어디로 숨었는가? 밝은 햇살이 온 대지를 밝히고 데운다. ​

 

우리들은 잠시 올라갔던 하늘에서 다시 땅으로 내려와 이 대지에 순응해야 한다. 우리들이 간밤에 보고 듣고 나눈 모든 생각과 경험과 추억은 다시 하루라는 앨범 속에 담아서 덮어놓고 새 시간을 위해 숨을 고르며 새 앨범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다시 문명으로 돌아가려면 온 만큼 긴 시간을 달려야 하지만 되돌아가는 시간은 그리 지루하지 않았고 덜 힘들었다. 아무것도 볼 것이 없고 오직 텅 빈 대지와 하늘, 모래와 지평선만 있는 이 고비사막에 사람들이 왜 그리 오려고 하는지를 나와 우리 친구들은 드디어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비운 것이다. 그리고 채운 것이다.​

 

볼 것도 없는데 안 가도 되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래도 이 세상을 마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사막에서 밤을 지새워 보게. 거기서 비우고 다시 채울 공간을 마련하게나. 당신이 걸어오고 걸어갈 인생의 길이 조금은 달라질 것이니..."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