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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백제 비류왕 때 쌓은 김제의 ‘벽골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97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제(金堤)의 ‘벽골제(碧骨堤)’는 신도 또한 한 번 가서 보았는데, 그 둑을 쌓은 곳이 길이가 7천1백 96척(1척≒ 30.3cm, 약 2.18km)이고 넓이가 50척(약 15m)이며, 수문이 네 군데인데, 가운데 세 곳은 모두 돌기둥을 세웠고 둑 위의 저수한 곳이 거의 일식(一息, 30리로 약 11.79km)이나 되고, 뚝 아래의 묵은 땅이 광활하기가 제(堤, 방둑)의 3배나 됩니다. 지금 농사일이 한창이어서 두루 볼 수 없으니, 농한기를 기다렸다가 상하의 형세를 살펴 다시 아뢰겠습니다.”

 

 

위는 《태종실록》 30권, 태종 15년(1415년) 8월 1일 치 기록으로 전라도 관찰사 박습이 김제(金堤)의 ‘벽골제(碧骨堤)’에 관해 아뢰는 내용으로 이에 태종은 장흥(長興)ㆍ고흥(高興)ㆍ광양(光陽)의 세 성을 쌓는 것은 멈추고 먼저 벽골제(碧骨堤)를 쌓으라고 합니다. 문화유산청에서 사적으로 지정한 김제 벽골제는 백제 비류왕 27년(330년) 김제평야에 벼농사를 짓기 위하여 인공적으로 제방을 쌓아서 생긴 둑이라고 하지요. 제방을 쌓아 제방 위는 거대한 저수지가 되고, 제방 아래는 거대한 농토가 되게 하여 김제평야는 벼농사를 마음 놓고 지을 수 있었고, 백제는 더욱 풍요로운 곡창지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을 일제강점기에는 메워진 저수지를 파내지 않아서 논과 밭으로 활용하게 하였고, 제방의 둑을 이용한 수로만이 남게 되었지요. 그 이후 벽골제는 저수지의 기능은 완전히 없어지고, 제방의 흔적만 남게 되었는데 이렇게 물을 다스리던 문화유산은 그 규모가 1975년 발굴조사에 따르면, 제방의 높이는 4.3m 밑변너비는 17.5m 윗변너비는 7.5m 로 추정하였습니다. 그런 벽골제는 현재 3km에 이르는 제방이 남아있고, 수로에 설치되었던 5개의 수문 가운데 현재는 장생거와 경장거로 추정되는 수문 터만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