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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영산회상(靈山會相)’의 음악적 특징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99]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어진 음악으로 세상을 교화(敎化)한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 정농악회(正農樂會)라는 점, 원로들을 모시고 창립연주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재확인한 내용들이 훗날 후진 양성에 큰 경험과 교훈이 되었다는 점도 이야기하였다.

 

지금도 초심자를 비롯해, 젊은 국악인들은 쉽고 간단하게 생각하고 있는 음악이 바로 <정악(正樂)>이며, 대표적인 악곡이 ‘영산회상-靈山會相)’이라 생각하고 있겠지만, 평생을 걸고 연주해 온 원로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정농악회 창립 발표회를 함께 준비하면서 ‘영산회상’이란 음악을 바라보는 그분들의 시선이나, 음악적 태도가 어떠했는가, 하는 점은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영산회상이란 어떤 음악인가?

 

이 악곡은 《대악후보(大樂後譜)》에 「영산회상불보살」 7글자를 노래하던 성악곡이었으나, 그 이후로 내려오며 가사를 잃고 기악곡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 곡은 편성 악기에 따라 각각의 이름이 다르다. 현악기들이 중심이 되면 ‘현악영산회상’이 되는데, 현악기 가운데서도 거문고가 중심이 된다고 해서 ‘거문고회상’으로도 불린다. 이에 견줘 관악기를 위한 ‘관악영산회상’이 있는가 하면, 높은 음역의 거문고회상을 4도 낮추고 악기의 편성도 관악기와 현악기가 조화를 이루도록 합주곡으로 만든 ‘평조회상’도 있다. 일반적으로 ‘현악영산회상’을 가리키는 악곡 이름이 ‘영산회상’이다. 이 곡은 거문고, 가야금, 양금, 세피리, 대금, 해금, 단소, 장고가 각각 하나씩 포함되는 것을 원칙이며 악곡의 구성은 ‘상령산’, ‘중령산’, ‘세령산’, ‘가락덜이’, ‘상현환입’, ‘하현환입’, ‘염불환입’>, ‘타령’, ‘군악’ 등의 모음곡 형태이다.

 

 

‘관악영산회상’은 관악기의 합주로 연주되는 곡이며 편성은 삼현육각(三絃(六角), 곧 피리 2, 대금 1, 해금 1, 북(좌고) 1, 장고 1 등위 6인 편성이다. ‘평조회상’은 ‘현악영산회상’을 낮게 이조(移調)한 곡이다.

 

‘영산회상’은 평이한 악곡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그 내용은 심오한 깊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상령산’ 거문고나 가야금의 정간(井間)악보는 마치 초보자의 연습곡처럼 2정간, 혹은 3정간에 율명(律名) 하나 정도 기록되어 매우 쉽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정농악회를 조직한 젊은 교수들과 원로 명인들의 대화에서 확인했듯이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음악이 아니다.

 

선율을 이어가며 합주에 참여하는 악기는 물론이고, 완급(緩急)을 조정하는 장단도 비슷하다. 겉모양이 간결하고 단순해서 쉽게 장단을 칠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연주의 실제는 그리 만만치 않다. 각 악기의 가는 길을 훤히 꿰고 있지 못한다면, 연주가 불가한 곡이 바로 ‘영산회상’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나는 선율악기의 악보가 마치, 초보자의 연습곡 같다는 표현을 하였다. ‘상령산’의 장고보 역시, 합장단(雙), 채편(鞭), 북편(鼓), 채굴림(搖) 등의 기호 표시만 되어 있어서 쉽게 보인다, 그러나 천하의 명고수(名鼓手)라도 악곡 속에 숨어 있는 음(音)과 음(音) 사이의 보이지 않는 흐름을 읽지 못한다면, 그 누구라도 연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영산회상’은 많은 애호가들이나 전문가들로부터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과연 그 음악적 매력은 무엇일까?

 

 

글쓴이의 경험으로도 중ㆍ고교 시절부터 ‘영산회상’을 피리나 단소와 같은 악기로 연주해 온 지 60년이 넘었지만, 결코 싫증이 나지 않는 대표적인 악곡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마치,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또한 목이 마르면 언제든지 물을 마시듯, 마음의 안정이나 평화를 위해서 자주 듣는 음악이 곧 ‘영산회상’이기 때문이다.

 

피리나 대금 독주로 연주되는 ‘평조회상’은 언제 들어도 그 가락의 전개가 신비스럽고, 심신이 극도로 피곤해 있을 때, ‘관악영산회상’과 같이 자유분방 하면서도 엄격한 질서가 유지되는 악곡은 생기를 돋게 한다. 그런가 하면, 주체하기 힘든 욕망이 끓어오를 때, 잔잔한 ‘현악영산회상으로 인해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 아마도 젊은 시절, 원로 사범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연습과 발표공연, 그리고 방송이나, 음반 제작 등에 참여해 왔다는 경험이 더더욱 이 악곡을 각별하게 느끼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아도, 김천흥 명인을 위시하여 봉해룡, 이석재, 김기수, 김성진, 김태섭 등 원로들의 지도를 받아 가며 <정농악회>를 조직하고, 공개적인 발표 공연을 했던 당시의 활동들은 다시 생각해 보아도 보람 있는 과정이었다.

 

정농악회 창립 직후인 1977년 5월, 창립연주회에 성공한 우리 젊은 교수들은 각 대학의 초청 공연에 응하면서 다음 해인 1978년 4월에는 <남창가곡>의 우조 11곡을 발표하였고, 1979년 6월에는 ’평조회상(平調會相)‘ 전곡, 같은 해 11월에는 <남창가곡>의 계면조 11곡, 또 1980년 4월에는 ’관악(管樂)영산회상‘ 전곡, 1981년 5월에는 <가사(歌詞)> 등을 꾸준히 발표하는 등 <정농악회>의 활동은 정악의 대곡(大曲)들을 향해 꾸준히 전진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