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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무심거사의 중편 소설 <열 번 찍어도> 37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김 교수는 겨울방학이 끝나기 전, 2월 10일부터 1주 동안 미국을 여행하게 되었다. 보스톤에서 열리는 국제학회의 정기총회에 참석하는데 비행기는 LA를 경유한다. 김 교수는 LA에 도착하자 그림엽서를 사서 아가씨에게 보냈다. 그림엽서에 그가 좋아하는 푸시킨의 시를 적어 보냈다.

 

                    인 생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괴로운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모든 것은 순간이다

     그리고 지나간 것은 그리워지는 법이니

 

푸시킨(1799-1837)은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러시아 이외의 지역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체홉 등을 러시아의 대표 문학가로 손꼽지만, 러시아에서는 푸시킨을 그들보다도 한 단계 위의 작가로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푸시킨은 러시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을 받고 일찍부터 문학에 뜻을 두었다. 그는 자유사상을 밑바탕으로 격렬한 풍자시를 썼는데, 정치적인 탄압을 받아 남부 러시아로 추방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는 외교관인 단테스 남작과 자기의 어여쁜 부인이 염문에 휩싸이자, 결투를 신청하였다. 권총 결투에서 그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서 이틀 뒤 38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단테스 남작은 푸시킨의 손아래 동서였는데, 일설에 의하면 그의 정적들이 그를 제거하기 위해서 헛소문을 퍼뜨렸다고 한다.

 

어쨌든 이 시를 읽어보면 도교적인 느낌이 든다. 인생의 기쁨과 슬픔을 초연한 도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노자가 쓴 시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정작 푸시긴은 30대에 이 시를 썼다는 사실을 알고서 김 교수는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불혹이라고 부르는 나이 40을 훨씬 넘긴 김 교수는 뒤늦게 젊은 아가씨를 만나서 초연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옆에서 보아도 위태롭기 짝이 없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뉴욕에서 보냈다. 김 교수는 자기가 머물렀던 호텔 로비에 있는 기념품 상점에서 반지를 좋아하는 미스 최에게 선물할 반지를 하나 샀다. 비싸지는 않지만, 디자인이 이국적인 예쁜 반지였다. 김 교수는 자유의 여신상이 그려져 있는 그림엽서를 사서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보냈다.

 

 

     

     사랑도 말 것이

     미움도 말 것이

     사랑하는 이는 못 보아 괴롭고

     미운 자는 보아서 괴로우니라.

                                    (법구경에서)

 

불교는 기독교와 견줬을 때 일반인에게 소극적인 종교로 인식되고 있는데, 그것은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김 교수는 기독교인으로 자처하기 때문에 불교는 잘 모르며 단지 옆 연구실의 장 교수에게서 귀동냥하여 조금씩 불교를 알아가는 중이다.

 

그림엽서에 적은 법구경이 나타내듯이 사랑도 하지 않고 미움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평안해진다는 것은 너무 소극적인 생활철학이 아닌가? 깊은 산속 절에서 수행하는 스님은 여신도를 만났을 때 사랑도 미움도 하지 말라는 말을 쉽게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잣거리에서 직장생활하며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만나서 상담도 하고 교제도 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대다수 일반인에게는 매우 실천하기 어려운 요구다.

 

더욱이 김 교수처럼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일상인의 처지에서는 자기 가족을 사랑하고 자기 가족을 해치려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살다 보면 미운 사람을 안 만날 수가 없다.

 

김 교수가 대학 다닐 때 화학실험을 지도하는 조교가 있었는데 성격이 변덕스러우며 학생들을 매우 괴롭히는 그러한 형의 사람이었다. 학생들은 화학실험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잔디밭에 모여 앉아 조교 욕을 실컷 하곤 하였다. 남을 욕한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매우 통쾌한 일이다. 욕을 하고 나면 속이 좀 후련하고 요즘 말로 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을 칭찬하기보다는 욕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법구경에서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구절은 쉽게 이해가 간다. 그러나 사랑도 하지 말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기독교에서는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치며, 불교 역시 자비를 강조하는 종교가 아닌가? 사랑을 하게 되면 정이 들고 정이 들면 자꾸 만나고 싶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자꾸 만나고 싶은데 만나지 못하면 괴로우므로 애초부터 사랑을 하지 말라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라는 속담과 똑같다.

 

장은 식생활에 꼭 필요하고 따라서 장은 담가야 하는 것이다. 단지 장 담그는 과정에서 구더기가 끼지 못하도록 관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혹 많은 사람이 장 담그는 데 실패하여 구더기가 끼더라도 장은 담가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괴로움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법구경에서 권고하듯이 사랑도 미움도 하지 않으면 괴로움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산다는 것은 물로 말하면 증류수와 같다고나 할까? 광물질이나 불순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고 물 분자로만 이루어진 아주 순수한 물이 증류수이다. 그러한 증류수는 아무 맛도 냄새도 없는 어찌 보면 죽은 물이다. 증류수는 사람이 마실 수 없다. 증류수는 화학실험에서 시약을 녹이는 데만 쓰이는 물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사랑도 미움도 하지 않아서 괴로움이 없는 세상을 꿈꿀 것이 아니다. 괴로움이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사는 재미가 있는 세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랑도 미움도 없는 세상이라면 무슨 재미로 사나? 그건 인생이 아니라 증류수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