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04 (토)

  • 맑음동두천 -4.5℃
  • 맑음강릉 1.8℃
  • 맑음서울 -1.7℃
  • 맑음대전 1.0℃
  • 맑음대구 2.0℃
  • 맑음울산 2.0℃
  • 맑음광주 3.2℃
  • 맑음부산 3.0℃
  • 구름많음고창 0.8℃
  • 구름많음제주 7.2℃
  • 맑음강화 -2.8℃
  • 맑음보은 -1.0℃
  • 맑음금산 -1.2℃
  • 맑음강진군 2.9℃
  • 맑음경주시 1.9℃
  • 맑음거제 3.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1896년 강원도 우망리장이 들끓다

《국민신보》와 《대한신문》, 이 두 마귀야
[돌아온 개화기 사람들] 10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896년 강원도 양구군 우망리장을 구경하러 가 보자. 많은 장사치와 백성들이 장터에 모여 있다. 무얼 하는 사람들일까? 물건을 사고파는 게 아니다. 운집한 군중 가운데에 한 사람이 소리를 크게 질러 무언가를 읽고 있다. 《독립신문》이다. 사람들은 신문을 들으러 이 장터에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만든 것은 양구군 군수였다. 군수는 일부러 시장을 열고 친히 장터에 와서 시국에 대한 일장 연설을 한다. 이어서 부하로 하여금 신문을 낭독하게 하는 것이다.

 

양구군 원님만 훌륭했던 건 아니다. 장터 마을에 사는 백성 김기서, 조성룡, 김리선은 이런 글을 《독립신문》(1896년 4월 7일)에 보냈다.

 

요사이 군수가 장터를 열고 친히 장에 나와 장사치와 인민이 많이 모인 곳에서 시국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소리를 크게 질러 《독립신문》을 읽게 하니, 오는 사람과 가는 손님이며 장사하는 사람과 온 백성들이 어깨를 비비고 둘러서서 재미를 붙여 듣고 모두 찬탄하더라. 이후부터는 물건 매매하는 상인들뿐 아니라, 《독립신문》 들으러 오는 백성들이 멀고 가까운 곳을 헤아리지 않고 귀를 기울이고 다투어 모여들어 서로 말하여 가로되, 우리나라 전국에 크고 작은 일과 천하만국의 아침과 저녁 일을 훤히 알 수 있고 자식과 손자들을 깨우쳐 어둠을 버리고 밝음으로 나아가게 한다고들 하더라.

기쁨을 이기지 못한 장터 사람들이 서로 의논한 바, 《독립신문》을 이 고을에 보낼 때에는 언제나 한 장을 더 붙여 보내시면 신문 값은 이 고을 군수가 보내리다. 잘 헤아려 주기를 엎드려 바라노라.

 

당시 한국을 유심히 관찰하고 돌아간 영국인 비숍 여사는 이렇게 회상했다.

 

일단 신문이 나와 사회의 진상을 알게 되자 국민들은 미몽에서 벗어나 관리의 악정과 재판의 부당함에 엄정한 비판을 가해서 여론을 일으켰다. …이에 부정한 관리와 불량한 관원들은 모두 혀를 내두르면서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국문 신문을 옆구리에 끼고 거리를 다니는 풍경과 또한 감 점포마다 이 신문을 펴 놓고 읽고 있는 광경이란 참으로 1896년 이래의 새로운 형상이었다.

 

 

그러나 슬프다. 독립신문과 만민공동회가 일군 희망의 빛은 어둠 속에 사라지고 조선은 쇠망의 길로 떨어졌으니 말이다. 그런 때면 기다렸다는 듯이 나쁜 언론이 활개를 친다. 일제를 다투어 찬양하고 또한 질 새라 그 앞잡이 노릇에 광분한다. 《국민신보》와 《대한신문》이 그런 신문이었던 모양이다. ‘국민’과 ‘대한’을 참칭하는 이 나쁜 신문들에 대하여 매우 좋은 신문 《대한매일신보》이 이렇게 저주를 퍼붓는다.

 

《국민신보》와 《대한신문》 이 두 마귀야. 너희는 한국인인데 어찌하여 왜놈의 마귀 노릇을 하느냐. 너희 조상도 수치스러움을 씻지 못하고, 너희 자손도 비참한 지경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며, 너희 몸도 지옥에 빠져 천만가지 고통을 받을 지어다. 마귀를 쫓는 구마검(驅魔劍)을 연마하여 당장 너희를 처단할지어다……우리의 필검(筆劍)이 날래지만 차마 너희 두 마귀가 너무나 가여워 머리를 베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어서 속히 물러갈지어다. 이 두 마귀여!

                                          (《대한매일신보》 1909.5.23 논설, “국민 대한 두 마귀를 경계함”)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김선흥 작가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