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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다시 듣고 싶은 노은주의 완창 <흥보가>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717]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공력 있는 소리의 주인공, 노은주 명창이, 고 한농선 선생을 떠 올리며 올곧게 가르쳐 주신 <흥보가>를 끝까지 제대로 이어나가고 싶다는 결기를 보인 이야기, 비록 그 길이 어렵고 힘들다고 해도, 날마다 연습하며 착실하게 보존해 나가겠다는 결심, 이를 위해 해마다 완창회 무대를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는 의지, 그러면서 이 귀한 소리를 가르쳐주신 스승께 감사드린다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스승과의 약속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노은주는 해마다 흥보가 완창발표회를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스승 한농선 명창을 기억하기 위함이고, 예능보유자가 되어, 후계자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스승께, 소리로써 보답해 드리겠다는 제자의 따뜻한 마음이 온전하게 담겨 있는 결심이다. 선생의 소리를 지켜 그 소리가 노은주를 통해 이렇게 남아 있다는 점을 확인해 드리고 싶다는 마음은 참으로 갸륵하기만 하다.

 

스승을 사모하는 노은주의 마음과 그 결의에 뜨겁게 손뼉을 쳐주고 싶다.

 

제4회 <흥보가 완창발표회>가 예고되어 있던 그날의 무대는 많은 판소리 전문가, 애호가, 친지 등 관객들로 만원이었다.

 

관객들은 <흥보가>라는 소설 한 권을 완전하게 암기해서 창으로 부르되, 사설의 전달은 물론이고, 사설 위에 가락과 장단의 조화, <아니리>나 <발림> 등등, 각각의 음악적 요소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이어나가는가? 하는 점을 궁금해하며 주인공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미 객석은 꽉 차 있었다.

 

 

글쓴이 역시 그 긴소리를 어떻게 이어 갈 것인가? 하는 자못 기대를 안고 객석을 지켰다. 이윽고 당당하게 무대에 등장한 노은주 명창은 아주 편안하고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흥보가의 초 앞부터 시작, 두 시간 남짓 여유 있게 불러나간다. 객석은 즐겁고 재미있게, 때로는 놀부가 되기도 하고, 흥보가 되기도 하며 함께 울고, 웃으면서 노은주 명창이 안내하는 소리의 세계로 동행했다.

 

그녀의 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친근감 있게 다가오고 있었다. 웃고 울고 즐기는 가운데, 관객들은 노은주 명창이 안내하는 소리판 속으로 점점 더 깊숙하게 빠져들면서 손뼉과 추임새, 등으로 함께 가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벌써 그의 소리가 종착역에 다다른 것이다. 모두가 아쉬워하며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힘찬 격려의 박수와 환호를 그에게 쏟아부었다.

완창회는 대성공이었다. 격려의 손뼉이 끊이질 않았다.

 

<흥보가>의 줄거리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권선징악(勸善懲惡), 다시 말해 착함을 권하고 악을 다스리는 이야기이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판소리 5마당 가운데서도 가장 민속성이 두드러진 소리로 일반 대중의 사랑을 받아 온 소리제다.

 

 

놀부도 박 타는 대목이 있으나, 그 속에서 사당패나, 놀이패들이 나와 재담도 하고, 춤과 소리를 엮어나가는 해학적 내용이 많이 나오고 있는 이유로 여류 명창들은 이 부분을 잘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불리는 판소리 <흥보가>는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담고 있어 널리 전승되고 있다. 조선조의 명창, 권삼득은 흥보가 가운데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이 유명했다고 전해오는데, 명창들이 특징 있게 짜 넣고, 장기로 부르던 대목을 <더늠>이라고 한다.

 

판소리 <흥보가>를 달리, <박타령>이라고도 부르고 있는데, 사람이 아닌 금수(禽獸), 곧 날짐승이나 들짐승들이 사람에게 은혜를 입고, 이를 잊지 않고 갚는다는 따뜻한 이야기는 흥보가 말고도 많이 보인다. 또한 이러한 류의 이야기들은 몽골이나,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도 전해오고 있다.

 

오늘날 널리 불리고 있는 판소리 <흥보가> 속에는 재미있는 대목들이 많이 보인다. 예를 들면, ‘놀보의 심술대목’이나 ‘흥보의 돈타령’, ‘중이 집터 잡아주는 대목’, ‘박씨를 물고 날아오는 제비노정기’, ‘흥보 아내의 가난타령’, ‘박을 타는 박타령’, ‘비단타령’, ‘화초장타령’ 등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대목들을 별도의 주제로 삼아서 토막 소리극으로 꾸며 교육자료나 감상자료로 활용한다면, 판소리에 대한 이해나 교육, 애호가 확보에 더 이상의 효과가 없을 것이다.

 

설날을 맞아 독자 여러분 가정에 돈이 쌓이기를 바라면서 흥보가 가운데 <돈타령 대목>을 들려드리기로 하겠다.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란다.

 

<아니리>

어찌 떨어 비워놨던지, 쌀이 일만 구만석이요. 돈이 일만 구만냥이라.

흥보 내외 좋아라고 돈 한 꾸미를 들고 잠깐 노는 디,

 

<중중모리>

얼씨구나 절씨구야, 얼씨구나 절씨구. 돈 봐라, 돈 봐라.

잘난 사람도 못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맹상군의 수레바퀴처럼 둥글둥글 생긴 돈.

생살지권(生殺之權)을 가진 돈, 부귀(富貴)공명(功名)이 붙은 돈 .

이놈의 돈아, 아나 돈아.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 얼씨구나 절씨구.

여보아라 큰자식아, 건넌 말 건너가서,

너의 백부님을 모셔 오너라.

경사를 보아도 우리 형제 보자.

얼씨구 얼씨구, 절씨구.

여보시오, 여러분들~ 부자라고 자만을 말고,

가난타고 한을 마소.

엊그저께까지 박 흥보가 문전걸식(門前乞食)을 일삼더니,

오늘날 부자가 되었으니, 이런 경사가 어디가 있느냐.

얼씨구나 절씨구.

불쌍허고 가련한 사람들, 박흥보를 찾아오소.

나도 오늘부터 기민(饑民)을 줄란다.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좋구나,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