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영조실록》 47권, 영조 14년(1738년) 2월 21일 기록에는 “청나라 사신이 《동의보감(東醫寶鑑)》, 청심환(淸心丸) 50환과 다리[髢髮] 두 묶음만 구하여 갔다.”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또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중국에서 펴낸 《동의보감》 이야기가 나옵니다. 연암은 중국에서 오랫동안 큰 인기를 끌었던 《동의보감》이 몹시 탐나서 꼭 사고 싶었지만 5냥이나 되는 책값 마련이 어려워, 결국 중국어판 서문만 베껴온 것을 두고두고 섭섭해했습니다.

중국어판 서문을 쓴 능어(凌魚)는 “구석진 외국책이 중국에서 행세하게 되었으니 담긴 이치가 훌륭하다면 땅이 먼 것이야 무슨 상관이 있을까? 《동의보감》은 내경(內景)을 먼저 서술하여 근본을 다지고, 외형(外形)을 서술하여 자세한 풀이를 보탰으며, 이후 잡병의 해설과 탕약(湯藥)과 침과 뜸을 서술하는 정연한 체계를 갖춰, 사람의 몸뚱이에 빛을 안겨 주었다.”라고 칭찬했습니다. 《동의보감》은 1763년 중국에서 처음 출판된 이래 모두 7번이나 펴낼 정도로 인기가 있었는데, 이는 탁월한 의학서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이 허준의 《동의보감》은 유네스코는 세계기록유산에 올랐습니다. 등재 이유를 보면 "동의보감은 그 내용이 독특하고 귀중하며,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는 동아시아의 중요한 유산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의학지식은 현대 서양의학이 발견되기 전까지 수많은 동아시아인의 건강에 이바지하였다.”라고 밝힙니다. 이러한 세계가 인정한 문화유산을 두고 일부에서는 중국의 의서를 베낀 표절서라고 평가절하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이는 자신의 문화를 깎아내리려는 못된 버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