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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일득록》으로 보는 임금으로서의 자질

《정조의 말》, 정창권, 이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정조(正祖).

‘바를 정(正)’자를 쓴 묘호에서 보듯이 정조는 ‘바른생활 임금’이었다. 정조가 남긴 글이나 생각을 보면 늘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빈틈없이 살려 했던 ‘반듯함’이 느껴진다. 끊임없는 자기 수양과 극기(克己)가 없으면 감당하지 못하는 막중한 군주의 자리를, 마치 군주를 위해 태어난 사람인 양 소화해 냈던 임금이 정조였다.

 

정조의 말과 생각을 담은 정장권이 쓴 이 책, 《정조의 말》은 규장각 신하들이 기록한 정조 어록집인 《일득록》을 지은이 정창권이 풀이해 쓴 책이다. 《정조처럼 소통하라》라는 책을 낸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출판사에서 제안을 받고 《일득록》을 읽으며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줄 만한 대목을 가려 뽑았다.

 

 

《일득록》은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의 161권부터 178권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문학 5권과 정사 5권, 인물 3권, 훈어 3권 등 모두 18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평소 가까운 거리에서 정조를 보좌하던 규장각 신하들이 보고 들은 정조의 언행을 기록한 것으로, 정조가 자신의 언행을 반성하고 깨우치기 위해 편찬하도록 명했다.

 

《일득록》에서 보이는 정조의 모습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부지런했다. 정도전이 나라를 열면서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폐하게 되는 것은 필연의 이치’라며 경복궁 정전의 이름을 ‘부지런한 근(勤)’자를 써서 ‘근정전’이라 할 만큼 조선은 지도자의 부지런함을 강조하는 나라였다.

 

정조는 이를 철저히 실천한 임금이었다. 임금이란 자리에 올라 처음에는 긴장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나태해지고 업무를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직장인도 연차가 올라갈수록 신입사원 시절보다 기강이 해이해지는데,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었던 임금은 오죽했을까 싶다.

 

(p.150)

‘잠들지 못함은 숙명일지니’

나는 한밤중이 되기 전에는 일찍이 잠자리에 든 적이 없었고, 날이 밝기 전에 반드시 옷을 준비시켜 입는다. 위로 보고된 문서를 하루도 책상에 적체시켜 놓은 적이 없었고, 매일같이 조정의 신하를 접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근래 또 여러 승지가 공무를 가지고 입시하는 것을 일과로 삼도록 하였다. 매번 승지들이 새벽에 출근하여 신시(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 퇴근하는데, 그 힘든 노고가 반드시 나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일득록》9, 정사4)

 

이렇듯 정조는 매우 힘든 일과를 소화하면서도 그것을 군주의 당연한 본분으로 여겼다. 요즘 기준으로 심지어 ‘일중독자’의 면모도 보인다. 정조도 스스로 ‘내 천성이 본래 좋아하는 일이 없고, 때때로 문서나 책을 보면 조금이라도 아픈 것을 잊는다’라고 할 만큼 태생적으로 일과 학문을 좋아했다.

 

두 번째, 본인의 단점을 돌아보고 성찰할 줄 알았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 온갖 아첨하는 말이 들려오니 본인의 단점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조는 자신이 화를 잘 다스리지 못하고 분노 조절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그것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p.55)

‘나의 못남을 탓하라’

나는 평소 태양증이 있어서 남의 옳지 못한 점을 보면 문득 화가 치밀어 겉으로 드러나는 데까지 이르고 만다. 이는 제왕의 본색이 아니기에 근래 들어 비록 자신을 굳게 억누르고 모나지 않게 하려고 애쓰지만, 기질이란 끝내 고치기가 어려운 것이어서 이따금 충돌을 빚으면 또다시 이를 억제하지 못한다. 요즘 사람들은 대체 무슨 공부를 해서 한결같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일득록》15, 훈어2)

 

정조도 성격이 꽤 다혈질이었나 보다. 본인이 워낙 완벽주의다 보니 다른 사람의 결점을 보면 문득 화를 참지 못하고 비난하는 습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솔직하게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며 ‘자신을 굳게 억누르고 모나지 않게 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자신의 결점을 깨닫고 고치려 노력하는 모습에서 좋은 군주의 자질이 보인다.

 

세 번째, 끝없이 자기 계발을 했다. 정조는 진심으로 학문을 좋아하는 호학군주였다. 특히 독서를 좋아했고 자신이 직접 선발한 문신들과 학문적인 토론도 즐겼다. 공무로 바쁠 때도 항상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신하들에게도 근래에 어떤 책을 읽는지 물어보며 책 읽기를 독려했다.

 

(p.122)

상이 새로 벼슬길에 나온 근신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근래에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

신하들이 읽지 못하고 있다고 대답하자 상이 말씀하셨다.

“이는 하지 않는 것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공무를 보느라 여유가 없기야 하겠지만, 하루 한 편의 글을 읽고자 한다면 그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과정을 세워 날마다 규칙적으로 해 나간다면 일 년이면 몇 질의 경서를 읽을 수 있을 것이고, 몇 년간 쉬지 않고 꾸준히 한다면 사서와 오경을 두루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따로 독서할 날을 구하고자 한다면 책을 읽을 수 있을 때가 없을 것이다. 선비라면서 읽고 익히지 못한다면 어찌 선비다운 선비가 될 수 있겠는가.” (《일득록》2, 문학2)

 

이는 오늘날 직장인에게도 울림이 있는 말이다. 보통 일이 바쁘면 퇴근하고 책을 읽기 쉽지 않지만, 하루 한쪽이라도 읽으며 규칙적으로 독서를 한다면 일 년이면 꽤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다. ‘읽고 익히는 것’, 이것이 자기 계발의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니 남을 이끄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바쁜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읽고 익혀야 할 것이다.

 

《일득록》을 읽다 보면 정조가 너무 바른생활을 하니 신하들이 거리감을 느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기본적으로 참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내부적 모순을 안고 있던 조선 사회가 그만큼이나마 지탱한 것은, 정조처럼 군주의 자질이 매우 탁월한 임금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조선은 정조가 세상을 떠난 지 60여 년 만에 거의 붕괴하다시피 무너져 내렸다. 정조가 보여줬던 수준의 엄격한 자기관리를 하는 이금도 더는 나오지 않았다. 정조는 세손 시절부터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하는 충격을 입으면서도 초인적인 수준의 인내와 절제로 왕위에 올랐던 비상한 인물이었다.

 

이 책을 통해 임금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힘든 자리였는지, 정조가 그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얼마나 자신을 몰아붙였는지 알 수 있다. 좋은 문장이 많아 문장을 곱씹어보는 묘미도 있다. 지도자의 책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