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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하고 행복한 나라 부탄을 가다

부탄의 장례법과 생사관

의식의 윤회와 해탈을 중시하는 생사관에 바탕
[청정하고 행복한 나라 부탄을 가다 12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죽음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보편적 경험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는 말처럼, 태어난 모든 존재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은 오래전부터 인류에게 두려움과 의문의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삶의 의미를 성찰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사회이든 장례 방식과 죽음에 대한 인식, 곧 생사관에는 고유한 역사와 종교, 철학, 그리고 생활 문화가 스며 있다.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문제는 곧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와 직결되어 있다.

 

동양권에서는 죽음을 또 다른 여정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강하다.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는 조상을 모시는 제사와 장례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죽음은 단절이 아닌 조상 세계로 편입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는 제의(祭儀)와 의식을 통해 이어지고, 죽음은 곧 가족과 공동체의 기억 속에 살아남는 또 하나의 삶이다.

 

인도나 부탄과 같이 불교나 힌두교가 뿌리 깊은 사회에서는 윤회와 해탈 사상이 생사관의 중심을 이룬다. 장례는 단순히 육신과의 이별이 아니라 다음 생으로의 이행을 돕는 종교적 의식으로 자리한다. 불전 독송, 탑돌이, 공양과 같은 행위는 망자의 극락왕생(極樂往生)과 환생(幻生)을 기원하는 중요한 수행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죽음을 ‘영원한 삶’의 시작으로 인식했고, 피라미드와 미라 제작은 사후 세계에 대한 확신을 상징했다.

 

반면 서양에서는 죽음을 개인 삶의 종결로 보는 경향이 짙으며, 미국과 유럽의 장례는 매장이나 화장을 중심으로 추모와 이별의 시간으로 진행된다. 천국이나 영혼불멸(靈魂不滅) 사상이 이러한 문화에 깊이 스며 있다. 이처럼 세계 각지의 장례문화는 사회가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이며, 종교와 철학, 환경, 역사와 밀접하게 얽혀 있다. 어떤 사회는 죽음을 끝으로, 어떤 사회는 새로운 시작으로, 또 어떤 사회는 공동체와 조상 세계로의 귀환으로 본다. 죽음에 대한 시선은 곧 삶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다.

 

부탄의 장례법과 생사관은 티베트 전통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티베트의 장례법은 불교 세계관, 특히 윤회 사상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티베트인들은 죽음을 끝이 아닌 새로운 생으로 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며, 육신은 잠시 머무는 그릇일 뿐 의식은 계속 이어진다고 믿고 있다. 대표적인 장례 방식은 독수리에게 시신을 바치는 조장(鳥葬)으로, 자연에 몸을 돌려 자비(慈悲)와 회향(回向)을 실천한다. 또한 화장(火葬)이나 수장(水葬), 탑장(塔葬/초르텐장)도 함께 이루어진다. 그런 다음 승려들은 영가(靈駕)를 위해 경전과 진언을 염송하며 49일 동안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의식을 행한다.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해탈의 기회로 여겨지며, 장례는 공동체가 함께 무상을 깨닫는 의식이며, 결국 부탄의 장례법은 육신보다 의식의 윤회와 해탈을 중시하는 생사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와 같이 부탄의 장례문화 또한 단순한 죽음의 절차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연속성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종교적ㆍ철학적 세계관 위에 서 있다. 이 나라의 장례법은 불교, 특히 ‘님마파’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죽음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여정의 시작으로 이해한다. 무엇보다 부탄인들의 생사관에는 윤회와 해탈이라는 개념이 뿌리 깊이 자리한다. 죽음은 생명의 단절이 아니라 다음 생으로의 ‘이행’이며, 올바른 기도와 공덕을 통해 더 나은 생을 맞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장례는 단순한 추모의 자리가 아니라 망자의 영혼이 바른길로 나아가도록 돕는 수행의 의식이 되고 있다.

 

장례 의식은 대개 고승이나 라마(라마교 고승)의 주도로 진행된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가족은 집 근처에 로타르(Lhadhar) 깃발을 세우거나, 불탑(초르텐)을 조성하여 그 안에 유골을 봉안하고 불교 의식에 따라 축원 기도를 올린다. 이는 망자가 평화롭게 윤회의 길을 건너도록 축복하는 행위다. 이어서 ‘뿌와 의식’이라 불리는 의례가 거행되는데, 이는 영혼이 무사히 사후 세계로 건너가도록 인도하는 밀교적 수행이다. 이 과정에서 스님들은 진언을 염송하고 경전을 독송하며, 망자의 의식을 해탈로 이끌어 준다.

 

 

부탄에서는 화장(火葬)과 수장(水葬)을 모두 행하지만, 단순한 시신 처리 이상의 의미가 부여된다. 몸은 덧없고 무상한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육신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공덕이다. 장례 뒤에는 7일, 21일, 49일 단위로 기도가 이어지며, 이는 바르도 퇴돌(중음의 가르침, 중음은 죽음과 다음 생 사이의 상태)에 따른 것으로, 영혼이 중음을 지나는 기간에 평안히 해탈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의식으로 여긴다.

 

또한 부탄의 마을 공동체는 장례를 주관하여 개인의 일이 아닌 공동체의 의무로 여겨 이를 행한다. 이웃들은 함께 음식을 나누고 기도에 참여하며, 슬픔을 함께 나눈다. 이러한 전통은 죽음으로 고립된 개인을 공동체의 삶의 순환 속에 포함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부탄인들의 상부상조의 미덕을 잘 보여주는 표본이 되고 있다.

 

요컨대, 부탄의 장례법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종교, 철학, 공동체 정신이 어우러진 삶의 연장선이다. 그들의 생사관은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보다는 평화와 수용을 중시하며, 남겨진 자와 떠나는 자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이별의 길’을 마련한다. 이러한 세계관은 물질 중심의 현대 사회에 깊은 울림을 전해 준다. 죽음이 곧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부탄의 시선 속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 부탄의 매장법 특징은 자연과 친화적 관계성을 가지고 자연보호와 불교적 생명관을 염두에 두고 과도한 묘지 문화를 두지 않고, 화장한 뒤 재를 자연에 환원하는 방식을 선호하며, 한국처럼 비석을 세우는 일이 드물고, 묘비 문화가 거의 없는 대신 큰 초르텐(불탑)이나 작은 초르텐을 세우거나 로타르(하얀 깃발)를 세워 영가들의 왕생을 기원하고 있다. 장례는 공동체 중심으로 개인 가족만이 아닌 마을 공동체 전체가 참여해 망자를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탄의 대표적인 의식 중 망자를 위한 ‘푸와(འཕུ་བ་, Phowa, 49일 천도재)’ 기도를 살펴보자.

 

매일 기도문과 진언을 염송 (108회 이상)하고, 7일마다 라마 주관 대불공, 망자 이름 낭독(시주, 보시)하며, 49일째는 최종 회향식(대형 푸자), 가족ㆍ마을 공동체가 함께 모여 공덕을 회향하게 된다. 이에 대한 주요 기도문은 「관세음보살 진언 (옴 마니 반메 훔)」, 「아미타불 진언 (옴 아미 데와 흐리)」, 「바르도(삶과 죽음과 윤회의 사이에 존재하는 의식 상태) 교리 관련 주문 낭송」 의식을 한다.

 

⬩ 망자 해탈 발원

 

산스크리트어 원문

འཆི་བའི་བར་དོར་བདེ་གཤེགས་སྟོང་ཉིད་འོད་ཀྱི་ལམ།

འཆི་བ་འདི་ནས་སངས་རྒྱས་སུ་གཤེགས་ཤོག།

 

한글 번역

죽음의 바르도에서 부처님께서 비추시는 공성과 빛의 길을 따라,

이 생을 떠난 이가 곧바로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발원합니다.

 

⬩ 회향 게송

 

산스크리트어 원문

བསོད་ནམས་དག་བསྔོས་ཏེ། འཆི་བ་སྐྱོབ་པར་ཤོག།

བདེ་གཤེགས་སུ་སྐྱེ་བར་ཤོག། སངས་རྒྱས་སུ་འགྲོ་བར་ཤོག།

 

한글 번역

이 공덕을 망자에게 회향하니 /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 부처님의 세계에 태어나기를 / 마침내 부처님이 되어 중생을 이롭게 하기를.

 

위와 같이 라마(스님)들은 죽음 이후, 중유(中有, 바르도) 기간을 중시하며, 의식을 통하여 기도문과 진언을 염송하여 망자가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거나 환생하기를 기원하고, 윤회의 길을 잘 건널 수 있도록 인도한다.

 

 

다음은 한국으로 가보자.

 

한국의 장례와 생사관은 티베트와 부탄과 비슷한 점을 볼 수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한국의 장례문화는 유교적 전통, 불교적 사상, 그리고 공동체적 정서가 어우러진 독특한 형태를 지닌다. 죽음을 단절이 아닌 또 다른 세계로의 ‘이행(移行)’으로 바라보는 생사관이 그 근저에 깔려 있다. 이러한 관점은 조상의 혼을 공경하고, 산 자와 죽은 자가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장례는 보통 임종, 발인, 장지 이행, 제사로 이어지는 일련의 의례로 진행된다. 과거에는 집에서 염습과 입관을 치르는 가정 장례가 일반적이었고, 조상의 묘를 가족이 직접 돌보는 것이 중요했다. 오늘날에는 장례식장이 보편화되었지만, 전통적 절차와 예법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특히 상주는 곡을 하며 효와 슬픔을 표현하고, 조문객은 근조(謹弔)하며 고인을 기린다. 장례 이후 제사와 차례를 통해 조상의 영혼을 기리고, 산 자는 조상을 기억하며 삶의 연속성을 확인한다.

 

한국도 불교의 영향으로 죽음은 ‘무상(無常)’의 진리를 깨닫는 계기로 여겨지고, 영혼의 극락왕생(極樂往生)을 기원하는 의식이 함께 이루어진다. 그리고 사십구제(四十九祭), 더 나가 백일제(白日祭), 그리고 백중제(百中祭)를 봉행하여 당 영가들뿐만 아니라 유주무주(有住無住) 고혼(孤魂) 까지 극락왕생하도록 지극히 천도제(天道祭)를 봉행한다.

 

이처럼 한국의 장례문화도 단순한 이별의 절차가 아니라, 삶과 죽음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음을 상징하는 정신문화다. 죽음을 공경하는 의례는 곧 조상을 존중하고 공동체를 지탱하는 정신적 뿌리로 작용해 왔다.

 

이와 같이 장례와 생사관은 단순한 장식적 전통이 아니라, 각 민족이 삶과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를 보여주는 문화적 거울이다. 어떤 문화는 죽음을 끝으로 보지만, 어떤 문화는 죽음을 다른 생의 시작으로 여긴다. 또 다른 문화는 죽음을 공동체와 조상의 세계로 귀환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장례법은 곧 그 사회의 세계관과 종교, 인간관이 응축된 정신문화라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