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0 (수)

  • 구름많음동두천 4.6℃
  • 맑음강릉 10.4℃
  • 구름많음서울 4.8℃
  • 구름조금대전 6.0℃
  • 흐림대구 5.2℃
  • 구름조금울산 8.5℃
  • 구름조금광주 6.9℃
  • 구름많음부산 12.3℃
  • 맑음고창 6.6℃
  • 구름많음제주 13.9℃
  • 구름많음강화 5.3℃
  • 구름조금보은 2.7℃
  • 구름조금금산 3.5℃
  • 맑음강진군 8.2℃
  • 구름많음경주시 8.5℃
  • 구름조금거제 9.7℃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이창수의 토박이말 이야기

짙은 어둠 속 우리에게 닿은 한 줌 햇볕

[하루 하나 오늘 토박이말]볕뉘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살갗을 파고드는 바람이 제법 차갑습니다. 옷깃을 여미고 종종걸음을 치게 되는 겨울 추위 속에서, 모처럼 마음의 언 밭을 녹이는 따뜻한 기별이 날아들었습니다. 오늘 아침 기별종이(신문)를 보니, 기별이 끊기거나 돌봐줄 살림이 안 되는 아들딸이 있다고 나라의 도움을 받지 못했던 어르신들의 짐이 덜어진다고 합니다. 그동안 ‘부양비’라는 차가운 제도 탓에 아픈 몸을 이끌고도 병원 문턱을 넘지 못했던 분들에게는 그야말로 뒤늦게 찾아온 봄볕 같은 기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토박이말은 바로 ‘볕뉘’입니다.

 

이 말은 ‘작은 틈을 통하여 잠시 비치는 햇볕’을 뜻합니다. 넓은 마당에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이 아니라, 그늘진 방구석이나 닫힌 문틈 사이로 수줍게, 그러나 뚜렷하게 비집고 들어오는 ‘조그마한 햇볕의 기운’을 말하지요. 

 

이 말의 짜임을 살펴보면 그 맛이 더욱 깊어집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따뜻한 기운인 ‘볕’에, 아주 작은 알갱이나 흔적을 뜻하는 ‘뉘’를 더한 말입니다. 온 누리를 다 비추지는 못하더라도, 어둡고 그늘진 곳에 기어이 닿고야 마는 ‘작은 빛의 알갱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이 말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보살핌이나 보호'를 뜻하기도 합니다. 큰 도움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삶을 떠받쳐 주는 따뜻한 마음을 일컬을 때 이보다 더 알맞은 말은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 속에서도 나옵니다.  남명 조식 선생의 시조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삼동에 베옷 입고 암혈에 눈비 맞아 구름 낀 볕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 서산에 해 지다 하니 눈물겨워 하노라"

 

여기서 '볕뉘'는, 참 햇볕이라기 보다 '임금의 아주 작은 은혜'를 빗대어 나타내는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값진 토박이말을 우리 나날살이에서는 어떻게 부려 쓸 수 있을까요? 먼저, 오늘 기별부터 토박이말로 다듬어 보겠습니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저소득층 혜택 확대"라는 딱딱한 말이 아닌, "그늘에 웅크린 이웃들에게, 이 제도는 삶을 떠받치게 하는 한 줌의 ‘볕뉘’가 되어줄 것입니다"라고 해 보면 어떨까요? 주어지는 돈이나 돈을 받는 길(절차)보다, 사람을 살리는 뜻이 가슴에 더 깊이 와닿을 것입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둘레 사람을 달래는 말에도 이 말을 담아보세요. 깔끔한 풀수(해결책)를 주지 못해 미안해하기보다,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지만, 이 마음이 너에게 작은 볕뉘라도 되었으면 좋겠어." 그 말에 담긴 따뜻한 마음이 듣는 사람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줄 것입니다.

 

또, 창가에 비치는 햇살이나 따뜻한 겨울 바람빛(풍경)을 찍어 누리어울림마당(에스엔에스)에 올릴 때 써도 좋을 것입니다. "온누리가 맵찬 겨울이라 해도, 사람 사이엔 볕뉘가 듭니다. 오늘 여러분의 하루에도 따스한 볕뉘가 깃들기를."이라고 적어보세요. 거친 나날살이에 지친 이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줄 것입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작은 빛은 더 뚜렷하게 빛납니다. 삶이 춥고 팍팍하다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눈빛과 손길이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힘을 주는 ‘볕뉘’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도 누군가의 그늘진 어깨 위에 내려앉는 따뜻한 볕뉘가 되어주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