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기어이 옛날의 제도를 실행하려 한다면 고대의 법복으로 실낱같이 끊어지지 않고 전승되고 있는 것이 한 가지가 있는데, ‘심의(深衣)’가 그것입니다. 심의라고 하는 것은 존비와 남녀, 문무와 길흉에는 관계없이 통용된 정식 복장인데 유생들로서 도안을 넣고 설명한 사람이 수백 명입니다. 그러나 옛날 제도에 근거하여 오늘날을 생각하고 절충하여 취사선택한다면 어찌 편리하게 적용하는 방도가 없겠습니까?”
위는 《고종실록》 25권, 고종 25년(1888년) 10월 28일 기록으로 유학자들이 입던 겉옷 ‘심의(深衣)’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백세포(白細布, 흰색의 삼베)로 만들며 깃ㆍ소맷부리 등 옷의 가장자리에 검은 비단으로 선(襈)을 두릅니다. 대부분의 포(袍, 바지저고리 위에 입던 겉옷)와는 달리 의(衣, 저고리)와 상(裳, 치마)이 따로 마름질(재단) 되어 연결되며, 12폭의 치마가 몸을 휩싸 심원한 느낌을 주는데 심의라는 말도 이런 뜻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심의의 흰색과 가장자리의 검은색, 복건의 검은 색이 조화를 이루어 학자다운 고귀한 기품을 풍깁니다. 이러한 심의는 철릭(天翼, 무관이 입던 공복(公服)의 하나)ㆍ난삼(襴衫, 생원ㆍ진사에 합격하였을 때 입던 예복)ㆍ학창의(鶴氅衣, 지체 높은 사람이 입던 웃옷의 한 가지)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심의가 유물로 전해지는 것은 없지만, 유형원(柳馨遠)ㆍ서유구(徐有榘)ㆍ이덕무(李德懋) 등의 초상화에 심의를 입은 모습이 전해집니다. 그리고 지난 2016년 당시 문화재청은 ‘의병장 유인석 심의’를 등록문화재 제661호로 등록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