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밤사이 하얗게 눈 세상이 된 곳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일터로 나선 분들은 마냥 낭만을 즐기기 어려우셨을 겁니다. 매서운 찬 바람에 눈발이 이리저리 흩날려 앞을 보기가 힘들었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날씨를 보고 "눈보라가 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보라'라는 말은 어딘가 매섭고, 거세며, 살갗을 때리는 듯한 느낌이 먼저 듭니다. 이럴 때, 거친 '눈보라' 대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쓰시던 좀 다른 느낌의 '눈설레'를 꺼내 봅니다.
'눈설레'는 '눈이 내리면서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 말이 우리 마음을 끄는 까닭은 '설레다'라는 말의 뿌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에 빠져 마음이 두근거릴 때만 '설레다'를 쓰지만, 본디 이 말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자꾸만 움직이다' 혹은 '물 따위가 설설 끓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부산을 떨 때 "왜 이리 설레니?"라고 하듯, 하늘에서 내려온 눈이 땅에 얌전히 앉지 못하고 바람에 떠밀려 이리저리 춤추듯 날아다니는 모습. 그것이 바로 '눈설레'인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밖이 어수선하다면, 그것은 날씨가 사나운 게 아니라 눈과 바람이 만나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설레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거친 눈바람을 뚫고 일터까지 잘 온 둘레 분들에게, 혹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동무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보세요.
"오늘 눈설레가 장난 아니더라. 그래도 따뜻한 집안에서 보면 꼭 눈이 춤추는 것 같아 예쁘기도 해. 눈도 설레서 저러는데, 우리 따뜻한 차 한 잔 하면서 몸 좀 녹일까?"
매서운 추위조차 '설렘'이라는 낱말로 감싸 안는 여유, 기상청의 날씨 예보에는 없는 우리말의 온기입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 눈설레 [명사]
눈이 내리면서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현상.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여러분을 위한 덤]
글을 쓸 때 "눈보라가 몰아쳐서 앞이 안 보였다"라는 뉴스 같은 표현 대신 이렇게 써보세요.
"차창 밖으로 희뿌연 눈설레가 쉴 새 없이 몰아쳤다. 바람을 탄 눈발은 얌전히 내려앉지 못하고, 끓어오르는 물처럼 허공을 맴돌았다."
'눈보라'가 세찬 바람과 함께 귀를 때리는 듯한 소리의 말이라면, '눈설레'는 눈앞에 펼쳐지는 춤을 보는 듯한 눈의 말이라고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