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밤사이 뉴욕 증시에서 불어온 따뜻한 바람에 힘입어 코스피가 기어이 사상 처음 5,000포인트를 넘어섰다는 기별을 들었습니다. 모두가 기쁨의 손뼉을 치는 이때, 뉴스에서는 "증시가 정상(頂上)에 섰다", "고지를 점령했다"라는 말을 쏟아냅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상'이라는 한자말은 어딘가 딱딱한 느낌이 듭니다. 더는 오를 곳이 없어 내려갈 일만 남은 막막함이 느껴지기도 하지요.
이럴 때, 차가운 얼음 같은 '정상' 대신 살아 꿈틀대는 우리말 '우듬지'라고 불러보는 건 어떨까요?
'우듬지'는 '나무의 꼭대기 줄기'를 뜻하는 토박이말입니다. 산의 정상은 흙과 바위로 된 죽은 땅일 수도 있지만, 나무의 우듬지는 뿌리에서부터 부지런히 길어 올린 물관이 마침내 닿은 생명의 끝자락입니다. 경제 위기라는 숱한 비바람을 견디고 한국 증시가 피워 올린 5,000이라는 숫자는,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선 '정복'의 열매가 아니라 치열한 '성장'의 열매이기에 우듬지와 꼭 닮았습니다.

문순태님의 소설 <타오르는 강>에서 우듬지를 이렇게 나타냈습니다. "얼핏얼핏 고개를 들어 상수리나무의 우듬지 위로 뾰조록이 모습을 내민 산정을 올려다보곤 하였다." 이 문장 속에서 우듬지는 산의 정상(산정)보다 낮을지언정, 살아 숨 쉬며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우듬지에는 또 다른 깊은 뜻이 숨어 있습니다. 나무의 가장 높은 곳이라 볕을 가장 먼저, 많이 받지만, 그와 함께 거센 바람에 가장 많이 흔들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성장 절벽'이라는 걱정 속에서 이룩한 열매인 만큼, 우리는 지금 가장 눈부시지만 가장 외롭고 흔들리는 자리에 서 있는 셈이라고 할까요?
역사적인 날입니다. 모니터 속 붉은 숫자에만 취해있기보다, 우리 기업들이 피워낸 저 높은 우듬지를 바라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서 매서운 바람을 견디고 있을 그 아슬아슬한 균형감각을 응원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주식 투자로 수익을 내거나 한국 경제의 나아짐을 기뻐하는 둘레 분들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보세요. "우리 증시가 참 많이 컸네요. 드디어 5,000이라는 '우듬지'에 올라섰습니다."
단지 높은 곳에 올랐다는 자만심보다는,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않고 계속 자라나겠다는 다짐이 담긴 품격 있는 말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 우듬지 [명사]
나무의 꼭대기 줄기. (비슷한 말: 나무초리, 상목)
(보기: 까치 한 마리가 미루나무 우듬지에 앉아 울고 있다.)
[여러분을 위한 덤]
글을 쓸 때 또는 말을 할 때 "그는 성공의 정상에 섰다"라는 뻔한 말 대신 이렇게 써보세요. "그는 숱한 어려움을 딛고, 마침내 삶의 우듬지에 올라섰다."
'정상'이 딱딱한 마침표 같다면, '우듬지'는 여전히 자라나고 있는 쉼표 같은 느낌을 줍니다. 오늘 코스피 지수 화면이나 맑은 하늘로 뻗은 나무 사진이 있다면, #우듬지 태그를 달아 올려보세요. '떡상'이라는 은어보다 훨씬 더 우아한 '좋아요'가 달릴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