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캉이나 서양인의 침대나 일본인의 다다미(疊)에서 거처를 하야보앗스나 우리 조선의 온돌처럼 땃뜻하고도 경제적이요 위생적인 것은 업슴니다. 일본 가티 비습하고 중국 가티(특히 北方) 치운 지방에 잇서서 이른 봄과 느진 가을-아즉도 난로, 화로가튼 것을 설비치 안이할 때에는 학생 기숙사 가튼데에서는 참으로 치워서 견듸기 어렵슴니다. 그런 때에 우리 조선 사람은 누구나 온돌을 생각할 것입니다마는 특히 우리 가튼 여자로서는 더욱 간절히 생각이 남니다.”
위 글은 일제강점기 때 잡지 <별건곤> 제12·13호(발행일 1928. 05. 01.)에 실린 북한 정치가 류영준의 “외국에 가서 생각나든 조선 것-온돌과 김치”라는 글 일부입니다. 그는 중국에서 약 6년 동안, 일본에서 약 8, 9년 있는 동안에 많은 고생을 하면서 특히 달 밝고 꽃 필 때에 친척과 동무의 생각도 간절했고 속이 헛헛하고 입맛이 없을 때에는 평양냉면과 닭찜 같은 것도 생각이 났지만 더욱 생각나는 것은 온돌과 김치였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나라의 온돌은 고조선 때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오래 세월 써온 것입니다. 하지만,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온돌을 잊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온돌의 과학성이 재조명되면서 이제 중국, 일본, 독일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지요. 인류 역사상 가장 과학적인 난방방법이라는 온돌,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