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형뷔페에서는 돌잔치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 돌잔치는 어김없이 돌상이 차려지고 아이가 맨 처음 잡는 물건에 부모들은 물론이고, 잔치에 참석한 사람 모두의 눈이 쏠려 있지요. 보통 돌잡이라고 하는 것으로 먹, 벼루, 책, 실, 종이, 돈, 활, 화살 등을 놓습니다. 그러면 이런 돌잡이가 조선시대에도 있었을까요?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의 그림 가운데는 “돌잔치”라는 것이 있지요. 그 그림은 <모당 홍이당 8첩 평생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물론 이 그림에는 선명치 않지만 조선시대에도 돌잡이를 했습니다. 대신 조선시대에는 사내아이냐 계집아이냐에 따라 돌상에 올려지는 물건이 조금 차이가 납니다. 먼저 책ㆍ붓ㆍ벼루ㆍ먹ㆍ흰실타래ㆍ대추 등은 함께 오르지만, 활과 장도는 사내아이 돌상에, 바늘 가위 인두 따위는 계집아이의 돌상에 올랐습니다. 이때 사내아이가 활과 장도를 먼저 잡으면 무관이 되리라 예측하고, 계집아이가 바늘이나 가위를 먼저 잡으면 바느질 솜씨가 좋으리라 여겼지요.
그런데 이 그림 속 돌잔치에 참석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아이 돌잔치를 좀 더 많은 사람이 와서 축하해줘야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는 요즘 정서에 비추면 아이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높은 벼슬을 한집안의 돌잔치가 이 정도라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지요. 당시는 아이가 태어나서 21일째 되는 삼칠일에 겨우 친척과 이웃에게 얼굴을 보여주고 돌이 되어서도 친척들만 모여 조촐하게 지내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자라서 혼례식을 치르게 되면 그제야 아이가 죽을 고비는 넘겼다고 보고 동네방네에 알려서 큰 잔치를 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