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방관은 일본말이다?
중소기업청이 중기전용 홈쇼핑 신설에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국정감사에서 강하게 제기됐다. 중기전용 홈쇼핑은 중소기업 제품 판로를 넓히고 판매를 촉진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손꼽히고 있다. 또 기존에 중소기업제품 판매전용 홈쇼핑으로 인가받은 롯데홈쇼핑을 비롯해 국내 대형 홈쇼핑 업체들의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 행위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파이낸셜뉴스, 2010.10.5-
홈쇼핑사업은 일확천금을 낳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여겨진다. 티브이, 냉장고 같은 가정용 전기제품을 비롯하여 컴퓨터, 손전화(핸드폰)는 물론이고 화장품, 등산용품, 프라이팬 같은 공산품에 이어 곰탕, 게장, 오징어불고기 같은 먹을거리도 연일 방송 중이다. 소비자들이야 물품을 주문하면 그만이지만 홈쇼핑 사업에 뛰어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할 듯하다. 이런 곳에 불공정행위가 활개를 칠 가능성이 많은데 감독기관이 뒷짐 진채 ‘수수방관’하고 있다면 참으로 기막힐 노릇이다.
‘수수방관(袖手傍觀)이란 한자말을 풀어보면 소매수(袖) 손수(手) 곁방(傍) 볼관(觀)으로 구성된 말이다. 예전에는 옷에 주머니가 없어서 소매가 옷의 주머니 구실을 했는데 날씨가 추운 날에는 주머니 대신 소매 속에 손을 넣었다. 수수방관은 소매에 손을 넣고 곁에서 바라보기만 한다는 뜻으로 가까운 곳에서 큰일이 일어나도 해결하려 하지 않고 관심 없이 팔짱을 끼고 바라본다는 데서 나온 말로 일본말에서 온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관보 제 13269호(96.3.23)에는‘수수방관’을 일본어투 생활용어로 분류해 놓고 있다. 국어사전풀이를 보면,‘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는 뜻으로, 간섭하거나 거들지 아니하고 그대로 버려둠을 이르는 말. ‘내버려 둠’, ‘보고만 있음’으로 순화’ 하라고 되어있을 뿐그 까닭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일본어사전 <大辞泉>의 ‘슈슈보우깡(袖手傍観), ある事態を目にしながら、成り行きに任せて眺めていること’ 의 뜻은 ‘어떤 사항을 눈앞에 두고 되어가는 상황만을 바라다 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수수방관(袖手傍観)은 동병상련(同病相憐,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김을 이르는 말)처럼 한자말 4자성어다. 이 말은 일제강점기간 훨씬 전인 조선왕조실록에도 59건이나 보인다. 물론 그 뜻도 지금의 수수방관과 같다.
선조 40권, 26년(1593)에 보면, 풍원 부원군 유성룡이 진주성 싸움의 패전 원인을 보고하는 기사에 “사신은 논한다. 외로운 성에 포위가 조여들어 조석(朝夕) 사이에 함락될 지경이어서 성중에서는 외원(外援)을 고대하였건만, 최원(崔遠)·선거이(宣居怡)는 군사를 거느리고서도 수수방관(袖手傍觀)하여 드디어 온 성안의 충의(忠義)로운 장사(將士)들로 하여금 모두 흉적의 칼날에 죽게 하였다. 이것은 실로 근래 기강이 해이하여 군율(軍律)이 엄격하지 못한 데서 연유한 것이니, 군율로 단죄(斷罪)해야지 어찌 용서해서야 되겠는가.
史臣曰: “孤城圍急, 朝夕且陷, 城中苦望外援, 崔遠、宣居怡, 擁兵不救, 袖手傍觀, 遂使一城忠義之士, 盡塗於凶鋒, 實由近來紀綱解弛, 軍律不嚴之故也。 斷以軍律, 寧可容貸乎!.
이처럼 수수방관은 전부터 쓰던 4자성어의 하나일 뿐 일본말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반면 기모(起毛, 보푸라기 옷감) 같은 말은 일본말임에도 스리슬쩍 일본말이 아닌 국어처럼 취급하고 있다. 원칙과 중심이 없는 국어정책에 혼란스러울 뿐이다.
수수방관이 일본말이 아니라 4자성어에서 나온 것이니까 그냥 쓰자는 말이 아니다. 고칠 수 있는 한 최대한 우리말로 고쳐 써야 함은 일본말이든 한자말이든 가려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그 유래 표기에 있어서는 정확성을 기해야 할 것이다.